호사다마 : 좋은 일 전에 많은 풍파를 겪는다
불혹이라는 40대가 되면서 체감한 것 중의 하나.
호사다마(好事多磨), 호사다방(好事多妨)
좋은 일에는 탈이 많다는 뜻으로, 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이 따른다거나 좋은 일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삶을 돌아보면 때로는 힘든 일들을 겪고 넘어가야 할 인고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꽃길만 걷는 인생이 없기도 하거니와 편하게 살자고 어려운 것을 피하기만 하면 결국 나이 들어서 더 큰 대가를 치르는 경우도 보게 된다. 새벽에 해뜨기 전이 칠흑같이 어둡듯이, 아름다운 도자기를 빚어내기 위해서 뜨거운 가마 안에서 달궈져야만 하듯이 고통의 시간이 지나야 성장하는 법이라는 것을 느끼는 지점이 참 많아진다. 그런 현상을 경험하는 과정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더 좋아지려고 그런 위기가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사람은 환경이 편안하고 바뀌지 않으면 변화되기가 참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단 어떤 사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귀인과 새로운 인연이 오기 전에 내가 인연을 맞이할 역량이 있는지 하늘은 악인을 먼저 보내 시험한다. 이번에 급하게 결정된 미국 여행 일정 때문에 더 급하게 새로운 강아지 시터를 찾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무수한 사건사고의 점들을 하나하나 연결해 시간이 한참 흐르고 이제와 되돌아보니 귀인을 만나기 위해 꼭 겪었어야만 하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 풍파가 있었기에 좋은 인연을 흘려보내지 않고 다시 더 깊게 연결될 수 있게 된 거라는 걸 알게 됐다.
원래 우리 강아지를 2-3년 간 꾸준히 사랑으로 돌봐주던 강아지 시터가 결혼과 취직으로 인해 더 이상 돌봄을 해줄 수 없었고, 나는 구인광고를 통해 또 다른 좋은 시터를 다시 구할 수 있었다. 그날의 기록은 아래 포스팅에 자세히 되어 있다.
https://brunch.co.kr/@vinsmama/21
그녀는 너무나 우리 강아지를 사랑해 줬고, 우리 강아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그녀의 가족에게 적응하며 즐거운 휴가를 보내곤 했다.
하늘의 별이 된 강아지를 그리워하며 힘들어하던 시터에게 우리 강아지는 큰 위로를 주었다고 했다. 그런 그녀는 다시 자신의 강아지를 입양할 용기를 얻었고 강아지를 입양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강아지가 청소년기를 맞이해서 당시 가장 중요했던 사회성을 기르는 시기에 코로나 위기가 발생하여 강아지 학교가 모두 취소가 되었고, 목줄을 하지 않은 큰 개들의 무리로 인해 나와 강아지가 식겁해서 놀랐던 기억, 갑자기 우리 집 안에 들어온 고양이가 집안을 쑥대밭으로 휘젓고 뛰어다니다가 훅 나가버리는 등의 사건을 계기로 우리 강아지에게는 다른 동물에 대한 신뢰가 없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다른 동물이 있을 경우엔 우리 강아지를 맡길 수가 없어서 나는 시터를 다시 구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원래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시터와 우리 강아지와의 합을 살피는 편인데 이번 여름휴가 결정이 급하게 짜여서 그럴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내 불찰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첫 번째 후보 시터는 첫날 만나는 시간 약속에 많이 늦고, 우리 집 강아지가 초반에 짖으니 강아지를 방에 가두려는 제스처를 취했으며, 나에게 자신이 돈이 필요하니 돈을 좀 먼저 달라고 요구했다. 게다가 집에 가보니 정원이 없고 베란다가 있는 2층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계단이 매우 우리 강아지에게 위험해 보였다. 이웃들도 많아 자칫 피해를 줄 수도 있고.. 평소 촉이 좋은 편이라 이 분은 안 되겠다 싶어 잘 말씀드리고 계약하지 않겠다 하니 몇 번씩 전화를 하며 쏘아붙이길래 끝까지 듣고 차분히 좋게 마무리했다. 그러니 미안하다며 사라졌다.
첫 번째 후보가 사라지니 시간은 더 촉박하고 두 번째는 미리 만나보지도 못하고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왓츠앱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싸한 느낌을 여러 번 받아서 나는 원래 시터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혹시 근처 사시는 부모님 댁에라도 우리 강아지를 부탁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하필이면 시터랑 우리 여행일정이 딱 똑같아서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의 강아지를 돌봐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새로 연락한 시터에게 맡기는데… 승마장에서 말을 다루는 일을 하는 동거 남녀였고, 가보니 마구간 내 2층 작은 방에서
살고 있었다. (상상도 못 했다 ㅜㅜ) 이전에 맡았던 강아지 주인이 강아지를 찾아가지 않아 동물 보호소에 보낸 적이 있다며 나에게 2주일치 시터 비용을 현금으로 첫날 달라고 요구하였다. 나는 그렇게 했고, 웃는 얼굴로 잘 전달해 주고 왔는데 맡기자마자 문자로 우리 강아지가 소변 실수를 했고 카펫이 지저분해졌으며 20유로라고 말하며 사진을 보내기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은 어쩌면 그리도 틀리질 않는지. 걱정했지만 한 3일간은 연락이 없길래 다행히 잘 지내고 있나 보다, 내 오해였나 보다 했다. 그러나 역시나 그건 큰 오산이었다.
그 시터는 3일 후에 갑자기 화를 내며 우리 집 강아지를 당장 데려가지 않으면 동물 보호소에 보내버리겠다는 연락이 왔다. 자신은 인내심이 없으며, 당장 데려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 집 강아지는 그 집에서 계속 밥도 물도 먹지 않았으며, 목줄을 채우려고 하면 자신을 물었고, 밖에 나가면 목줄을 끊으려는 시도를 했다고 했다. 지난 3년간 다른 시터와는 전혀 없던 일이라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크게 당황했고, 강아지가 너무 걱정되었다. 미국에 있는 상황에서 나는 일단 우리 강아지를 돌봐줬던 두 명의 기존 시터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대책을 마련하는데, 분 단위로 언제 데려갈 거냐며 연락을 해댔다. 그 과정에서 그 시터는 우리 집 강아지를 30분 안에 데려가지 않으면 그냥 마구간 앞 문 앞에 내버려 둘 거라며 협박했다. 나는 그것은 동물 보호법에 위배되는 일이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그렇게 한다면 나는 무척 상처받을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그녀는 동물 보호법만 운운하냐며 개가 자신의 손가락을 물었고 (입질문제 5년 평생 없던 강아지이고 만약 그랬다면 얼마나 공포스러운 상황이었길래 그러나 싶다.), 소변을 눠서 두 개의 카펫이 버려졌으며 그것은 40유로라는 말만 반복하며 쉴 새 없이 문자를 보냈다. 전혀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말을 돌보는 일을 하다니... 알고 보니 그냥 고용된 사람이었고, 승마장 주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런 사람들이 우리 개에게 어떤 해코지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우리 집 강아지가 당신들에게 잘 맞지 않아 미안하고, 우리 지인이 강아지를 데려갈 것이니 그냥 조용히 잘 전달해 주라고 차분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남편 회사 동료분이 우리 집 강아지를 데려와줬는데, 그 집에 가자마자 우리 집 강아지는 허겁지겁 물을 마시고, 밥을 먹는 동영상을 우리에게 찍어 보내주셨다. 내가 그들에게 그 동영상을 보내주자 자기네 집에서와는 매우 다르다며, 원래 아는 사람이라서 그런 거 아니냐는 거다. 우리 집 강아지는 물론 그 동료분을 만난 적이 없다. 우리 집 강아지가 왜 그 시터네서 그토록 공포에 질려, 하울링 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을까. 이 와중에도 강아지가 더럽힌 40유로의 카펫 비용 요구와 자신들이 돌보지 않은 거의 2주일치 시터 비용 환불불가에 대한 입장을 조목조목 따져 말하는 그들에게 나는 나의 변호사와 상담해서 당신에게 다시 연락하겠다고 짧은 답변을 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곧바로 나를 차단하고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돌려받은 강아지 짐에서 못 보던 넥칼라가 나왔다. 아마도 이걸 우리 집 강아지 목에 둘러 씌운 거 아닌가 의심된다. 엄청 크고 무거운 타입이라 나는 처음에 이게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도 몰랐다. 이 무거운 걸 내 작은 강아지에게 씌웠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갑작스러운 부탁에도 우리 강아지를 구출해 준 지인의 집에서 우리의 휴가기간 동안 우리 강아지는 잠도 잘 자고, 산책도 하고 애교도 부리고, “기다려”도 잘했다. 그러나 쇼크를 받은 강아지는 분리불안이 심해져 지인이 없을 때 짖고, 하울링을 하는 문제가 있었고, 원래 너무나 배변을 잘 가렸는데, 배변 실수도 종종 했다고 한다. 다시 집에 돌아온 우리 강아지는 다시 안정을 찾고 원래대로 배변도 잘 가리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게 되었다. 수년 동안 시터가 휴가 때마다 봐줬는데 이런 문제없이 사랑으로 돌봐줘서 그동안 내가 인복이 참 많았었구나 다시 깨닫는 사건이었다. 두 시터의 공통점은 자신의 개를 16년 키우고 하늘의 별이 되어 많이 강아지를 그리워하고, 또 오랜 시간 사랑으로 키워본 경험이 있는 개인 가정이었다는 점이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와 기존 시터들은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고, 함께 분개했다. 그들은 이것은 우리 강아지 잘못이 절대 아니며, 강아지의 반응은 살려달라는 외침이었다고 하며 가슴 아파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또 다른 좋은 시터를 다시 구하기 전에 이미 나의 강아지가 충분히 신뢰하고 있는 예전 시터와 새로 입양한 강아지 Lenni와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을 가지는 노력을 해보기로 했다. 우리 시터의 친정과 시댁은 모두 시터네 근처에 거주하고 계시는데, 우리 강아지가 다른 강아지나 동물에 대해 경계심이 있고 짖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모두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시터 시아버지네 집 개는 아주 큰 검은색 라브라도 개인데 이름은 Valko, 그와 먼저 천천히 산책하는 연습을 했고, 큰 개에게 트라우마가 있는 우리 집 강아지는 신기하게도 너무나 잘 산책을 해줬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우리 강아지는 이전 시터와의 교감을 단번에 기억해 냈고, 편안하게 지내며, 심지어 시터 어머니댁의 길도 정확하게 다 기억하고 있었다. 강아지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것이 너무 명확해졌다. 시터 어머니는 코지가 겪었던 일을 들으신 후 눈물을 흘리실 정도로 안타까워하셨다.
예전에도 이것을 시도해 보기로 했었지만 당시에는 시터가 새로 입양한 Lenni가 너무 어린 강아지였고, (예방접종도 다 완료하지 않은) 그래서 만약 우리 집 강아지가 Lenni에게 짖거나 안 좋은 기억을 주게 될까 봐 나는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새로운 시터를 구하려고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 Lenni는 충분히 컸고, 남자 강아지라 그런지 우리 집 강아지보다도 덩치가 커졌고 땅 파기를 매우 즐겨하는 명랑한 성견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용기를 내어서 두 강아지의 접촉을 천천히 시도해 보기로 한 것이다.
우선 각자의 영역인 우리 집과 시터의 집에서 보지 않고, Cozy와 Lenni가 모두 알고 있는 시터네 친정 엄마댁에서 두 강아지의 만남을 가지기로 했다. 우선 Lenni 없이 우리 집 강아지가 시터네 집에 가서 레니의 냄새를 맡고 익숙해지게 한 후, 다른 이미 성견이 된 차분한 헬퍼독들과 산책하는 것을 배운 후에 레니를 만났다. 둘은 같이 간식도 먹고, 산책도 했다. 다른 강아지를 싫어하고 짖던 우리 강아지가 함께 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큰 개가 아닌 비슷항 강아지와는 함께 산책을 했었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것도 도움이 된 거 같다. 하지만 첫 만남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아직 우리 집 강아지가 다른 강아지를 쉽게 받아들일만한 상황이 아니라 도망가기도 하고, 레니도 아직 어려서 마구 다가오니 둘 다 사회화와 친밀함을 쌓는 과정이 더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 2주에 한 번씩 점차적으로 신뢰를 쌓는 만남을 지속하기로 했다.
https://m.blog.naver.com/petitbonheur720/223599232405
나는 상상한다. 우리 집 코지와 시터네 집 레니가 서로를 알아가고 만나고, 신뢰하고, 함께 노는 미래를. 그 아름다운 장면을 위해 나와 코지는 다소 힘든 경험을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만나야 할 운명이었던 이 두 강아지는 서로 함께 하지 못했을 테니까. 물론 강아지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고 둘이 잘 안 맞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을 키우지 않는 은퇴한 노부부와도 연락하며 천천히 서로를 알아갈 계획도 세웠다. 가장 중요한 건 강아지가 스트레스 없이 견생을 잘 살아가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니까.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어려운 과정을 꼭 겪어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싶다. 문제없는 꽃길만 걷는 인생은 없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담대하게 대처하고, 지불해야 할 배움의 값이 있다면 기꺼이 지불하고, 미래에 더 좋을 일을 현명하게 결정하면서, 그리고 책임을 지면서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배우게 되었다. 또 한 뼘 성장한다.
https://brunch.co.kr/@vinsmama/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