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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Apr 24. 2024

이쪽이 아니라 저쪽이요

 처음 식당 알바를 했을 때 수저를 모두 의자 기준 왼쪽에 세팅한 적이 있다. 맡은 구역을 준비를 끝내자 매니저는 뭔지 모를 이상함에 테이블 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몇 초가 흐르고 매니저는 말했다. “지수야, 여기 왜 수저가 다 왼쪽으로 세팅된 거야?” 지금까지 주변사람들은 내가 놓은 수저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기에 그 차이를 미처 인식하지 못했었다. 머리를 숟가락으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의 방향이 일반 기준과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어렸을 때 선생님은 밥 먹는 손을 기준으로 왼손과 오른손을 구분하도록 가르쳐주셨다. 유치원이었는지, 초등학교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은 우리에게 밥 먹는 손을 들어보자, 그 손이 오른손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밥 먹는 손이 오른쪽, 그쪽이 동쪽이라고 알려주었다. 밥 먹는 손이 왼손인 나는 그렇게 방향치가 되었다.


 오른쪽은 ‘내가’ 밥 먹는 손의 반대쪽이다. 그래서 오른쪽, 왼쪽이라는 방향을 배울 때 ’내가‘ 밥 먹는 손에 힘을 한 번 주고 그 반대쪽인 오른쪽을 인식했다. 왼손은 밥 먹는 손의 반대손이라고 배웠지만 나에게는 밥 먹는 손이었기에, 왼쪽으로 이동하라는 체육 선생님 목소리에도 왼손으로 연필을 잡는 손 모양을 쥐고 이동하였다. 왼쪽, 오른쪽을 구분할 때 나에게는 왼손에 주먹을 한 번 쥐고 구분하는 메커니즘이 생겼다.


 이 메커니즘으로 인해 가장 힘들 때는 방향에 순발력이 요구될 때이다. 예를 들어 지나가는 행인이 길을 물어볼 때, 차 조수석에서 방향을 알려줘야 할 때이다. 길을 빠르게 말해 주고 싶어 왼쪽, 오른쪽이 아닌 이쪽과 저쪽으로 알려주게 된다. 모르는 사람이 방향을 물어보면 긴장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나의 메커니즘이 완벽하게 붕괴되기 때문이다. 또한 급변하는 교통상황에 맞추어 빠르게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해야 하는 순간에도 이상하게 밥 먹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큰 난관은 운전을 배울 때였다. 위의 경우에는 방향을 구분하는 일에만 주의를 기울이면 되지만, 운전할 때 방향 구분은 집중해야 할 무수한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 일에서 동생(운전을 알려줬다)은 좌회전과 우회전으로 방향을 알려주었고 나는 운전을 하며 좌우를 구분해 낼 감당이 안되었다. 차라리 건물 상호나 손가락으로 가르쳐줬으면 더 좋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장롱면허가 되었다(사실 이 이유만으로는 장롱면허가 된 것은 아니다).


 다행히 기술의 발전으로 방향치는 왼쪽, 오른쪽 구분에서 조금 자유로워졌다. 네이버 지도를 열면 내가 보고 있는 방향을 화살표로 알려주고, 내비게이션은 점점 더 세밀하게 가야 할 길을 말해준다. 그리고 아르바이트하던 식당에서는 얼마 안 되어 그릇과 수저의 영역이 나눠진 테이블 세팅지를 깔기 시작했다.


 왼손잡이가 천재 아니면 바보인 이유는 다른 기준으로 한 단계의 순간이 필요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기술과 환경의 발전이 바보 영역을 서서히 가려주지만 여전히 나는 좌우를 구분할 때 왼손 끝에 살짝 힘을 주게 되고, 이쪽과 저쪽이라는 지시 대명사를 사용한다. 이렇게 방향의 영역에서는 나는 바보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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