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 박해일, 탕웨이 주연
좋아서가 아니라 좋지 않아서 2번 본 영화다. 다들 좋다고 말하는 영화를 나만 폄하했던 영화라서.
명실공히 로맨스 영화라면 <올드보이>나 <박쥐>, <아가씨> 정도가 박찬욱 이름에 걸맞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물론이고 사랑을 유발하는 요소까지 심미적이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헤어질 결심>은 우선 인물부터 미약하다. 게다가 인물과 인물을 잇는 심리적 장치도 미약하다. 그저 애정에 목말랐던 남녀가 첫눈에 서로에게 빠져들어 서로에게 치명적인 사랑이 되어간다는 이야기인데,
굳이? 왜?
어머니의 안락사를 방조하고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한 여자가 담당 형사의 '품위'에 매력을 느껴 한눈에 사랑에 빠져 그와의 밀애를 도모하지만 살해 혐의가 탄로나며 그로부터 내쳐진 다음 오로지 그를 만나기 위해 다음 살해를 도모한다. 다분히 이과적 성향의 아내에게서 해갈되지 않는 섬세한 애정에 목마른 남자가 일 중독으로 결핍감을 메우려 버둥거리다가 맞닥뜨린 미모의 살인 용의자에게서 '꼿꼿함'에 매력을 느껴 한눈에 사랑에 빠져 그녀와의 밀애에 심취하다 여자의 살해 확증을 확보해 괴로워하지만 결국 증거를 인멸해주고 여자의 도주를 사주한다.
사랑을 위해 살인을 불사하는 여자와, 품위와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정작 자기 자신은 말라 죽도록 방치하는 남자의, 그러니까 다분히 자기애일 뿐인 사랑이 로맨스로 포장되어 공감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봐도 사랑이 사랑으로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생각한다.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을 아끼고 위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
사랑의 사전적 정의이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저 자신을 위하고 소중히 여기고 있다. 남자는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바람을 피울지언정 이혼은 하지 않고, 여자는 오매불망 사랑과 조우하기 위해 기다림 대신 살인을 택한다. 내가 기대했던 박찬욱 영화는 이보다는 차원이 다른 관점의 접근이었다. 이건 너무 세속적이다. 특히 산사에서의 연애 장면은 너무 시시해서 못 본 눈을 사고 싶었다.
다만, 예의 박찬욱표 미장센은 여전하다. 살해 순간인 산꼭대기에 흘러넘치던 말러 5번도 탁월한 선택이다. 말러 교향곡들 중에 유일하게 사랑을 모티브로 빚어진 작품. 나로선 어떤 장면보다 각인되는 씬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무난하다. 특히 탕웨이는 용의자가 저토록 미인이면 나라도 무죄라고 믿고 싶겠다, 싶어진다. 원래 예쁜 건 착한 거니까. 대한항공 폭파범이었던 북한 공작원도 예뻐서 용서가 된 우리네 정서가 아닌가.
개인적으로 박찬욱의 나이듦을 실감한 영화였다. 잔뜩 벼린 날로 선뜩선뜩 베던 감독이었는데 보들보들 둥글납작해져 서운했나 보다. 자불자불 말도 많아져 듣기 싫었나 보다.
반찬욱이라고 나이 들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과거의 박찬욱과 현재의 반찬욱이 겉도는 느낌은 그야말로 어쩔 수가 없다. 늘 하던 대로만 하려다 보니 과거의 자신을 감당할 수 없어 뜻없이 장황하다. 베려면 대차게 베고, 안으려면 뜨겁게 안았으면 한다. 그건 나이듦과 상관없는 선택의 문제다.
바다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으로 완성시킨 여자의 헤어질 결심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이 씬 하나만으로도 앞서 쌓인 모든 서운함이 덜어지긴 한다. 가장 박찬욱다운 선택이다.
그리하여 사랑 대신 나이듦에 대해, 그리고 타협에 대해 생각한다. 그 어쩔 수 없음을 어찌 해야 하는지 생각하니, 버림과 비움에 주저함이 없었으면 싶다. 결국 용기의 문제다. 쓰고 보니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