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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섬 Jul 02. 2024

슬픔의 삼각형

지배 피라미드의 재배열

Could you relax the triangle of sadness?


인터뷰어가 패션 모델들에게 양극의 두 브렌드를 몸으로 표현해달라고 요구했을 때 핵심은 웃음이었다. H&M과 발렌시아의 발현이 웃음에 있을 줄이야. 도도한 무표정이 귀족을, 웃음 띤 얼굴이 서민을 표상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그리고 시작된 패션쇼 오디션에서 짐짓 도도한 무표정의 모델에게 오디션 책임자가 요구한다.


Could you relax the triangle of sadness?


슬픔의 삼각형을 좀 펴면 안 되겠니?

응, 물론 안 된다. 나는 그저 나밖에 될 수 없고, 나로선 그럴 수 없기에.


1부, 슬픔의 삼각형은 미간과 콧대 사이의 삼각존을 일컫는 미용 용어이다. 스스로를 사회 지배 구조 피라미드의 밑면이라고 여기는 남녀 모델의 피라미드 꼭지점을 향한 몸부림이 조명된다. 그들은 그들 처지로는 턱없이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뒤 누가 식사 값을 내느냐를 놓고 설전을 벌인다.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게 돈인지 자존감인지 갸웃해지는 가운데, 그게 뭐든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몰입한 그들이 소유한 것이라고는 상대적 박탈감뿐이다. 그렇기에 미간이든 사회 구조이든 슬픔의 삼각형은 애초부터 그들의 것이었다.


2부, 피라미드의 꼭지점이라고 믿고 믿어주는 자들의 크루즈 사회가 조명된다. 크루즈 선박이라는 대형 슬픔의 삼각형에는 가장 밑면인 지하실에서 일하는 기계공, 바닥을 청소하는 청소부 들이 있고, 선박 곳곳을 누비며 승객의 안전보다는 두둑한 팁을 위해 승객의 비위를 맞추는 승무원들이 있고, 최종 꼭지점에는 막대한 자산을 보유한 자산가 승객들이 있다. 이들 승객은 과도한 풍요 끝에 다다른 권태를 버티느라 저마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들의 재벌 의식은 서열의 기준이 돈이라고 믿는 계층에 의해 극도로 존중되지만, 인간도 기껏해야 자연의 일부라고 믿는 폭풍우 앞에서는 더 가져서 더 먹은 만큼 더 토해내는 수모를 양산할 뿐이다.


3부, 섬에서는 그들이 믿어왔던 피라미드의 기준이 파괴되고 재편됨으로써 우리가 믿는 사회 기준의 안녕을 묻는다. 풍요와 권태의 정점에서 무질서와 혼돈의 대가로 크루즈 선이 난파되고, 목숨만 건진 무인도에서 지배구조는 재편된다. 그 섬에서 가진 자의 의미는 돈이 아니라 재능이다. 배에서는 화장실 청소 담당자였던 여자가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는 고유한 재능으로 섬 생활의 새로운 선장이 되고, 자산가들을 위해 런웨이에서 몸을 써왔던 남성 모델은 새로운 선장을 위해 한밤에 몸을 쓴다. 선장이 누가 되고 기준이 뭐든 피라미드의 반복이다. 아무도 저항하지 않는다. 


 3부에 걸쳐 개인과 사회, 사회의 재구성까지  어디를 조명해도 슬픔의 삼각형은 반복된. 믿는 만큼만 보이기 때문이다. '가진 것'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 질서가 파괴된 상황에서도 다른 형태의 출구나 가능성은 모색되지 않는다. 그들을 가둔 건 돈도 재능도 섬도 아닌 스스로의 믿음이다. 자진해서 떠안은 믿음에 대해 가끔씩은 의문을 가져야 한다. 갇혀 있는 곳이 구조인지 생각의 틀인지, 따르고 있는 기준이 나인지 내가 원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 없이 그저 걸어간다면 방향이나 보폭과 무관하게 제자리걸음만 반복될 뿐이다. 가끔씩만 웃기고 대체로는 역겨운 이 영화가 보는 이의 미간까지 찌푸리게 만드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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