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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게 오는 말들

내가 좋아하는 나

by 글섬

사는 게 뭐야.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무럭무럭 자라는 딸아이가 자주 하는 질문이다. 오늘도 빡세다는 푸념의 인문학 버전이다. 어느 날은 농담처럼, 어느 날은 하소연처럼, 어느 날은 한숨처럼 반복되는 무차별 질문에 시의적절하게 응수한다. 뭐긴 뭐야, 설거지지. 먹고 사는 문제라는 게 그렇고, 그러느라 내가 어질러놓은 것들을 치우는 과정이라는 게 그렇고, 매일 끼니마다 반복된다는 점이 특히 그렇지.


거실 창으로 하늘이 펼쳐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환기를 위해 창을 열며 하늘을 맞는다. 클래식 에프엠으로 실내를 채우고 찬물 한 잔을 마신다. 현관문을 열어 신문을 들이고 그라인더에서 원두가 분쇄될 즈음이면 시작된다. 쑥쑥이(베란다 반려 식물 이름이다)는 저러다 머리가 천장에 닿는 날이 오겠군 마침내, 바람이 제법 부네 오늘은... 재잘재잘 온종일 쉬지 않고 나와 놀아주는 생각의 싹들이 움트기 시작한다. 한 번 움을 튼 싹은 온종일 여기저기로 가지를 뻗는다. 물만 먹는 쑥쑥이가 저리 쑥쑥 자라는 동안 온갖 걸 다 먹는 나도 저쯤은 자랐으려나 보이지는 않아도, 원래 보이지 않는 게 제일 힘이 세, 겨우 창 하나뿐인데 창밖으로 부는 바람은 온전히 들일 수 없어 그러니 바람을 맞으려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해 바람 없이는 자랄 수도 없으니까, 라는 식으로.


그리고 매일 하루만큼씩 부던히 밀어올린 생각의 가지들이 자라 나라는 나무가 된다.


산다는 건 들쭉날쭉한 나를 울며불며 조립하는 일이다.

아침에 눈을 뜨기만 하면 새로이 건네받은 오늘이 갖은 얼굴로 건네 오는 말들을 채집해 나에게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렇게 오늘의 나를 책임지는 일이다.


가끔씩 나의 하찮음에 흠칫한다. 아니, 이토록 쓰임새가 없어도 돼? 응, 된다. 나름이지만 잘만 살아진다. 오히려 너무 하찮아서 찾아드는 행복이 더 많다. 애초에 아무것도 아니었고 지금도 꾸준히 아무것도 아니라서 겨우 평범해지기 위해 애를 쓰며 사는 내가 좋다. 대단한 목표나 밥벌이를 원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것들도 나를 원하지 않을 거지만. 내게 행복은 적당한 결핍과 도전으로 말미암은 소소한 결과물이다. 그저 적당하기 위해, 그 소소함을 위해 하루하루 나에게로 귀를 쫑긋 세운다. 소소함이야말로 애를 써야 얻어지는 평온이고 평온이야말로 가장 도달하고픈 성공이다.


갖가지 말들로 조립된 오늘로 다정을 저축한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살다가 힘이 들어 귀가 닫히는 어느 내일에 오늘 저축해둔 다정이 나를, 혹은 우리를 일으켜줄 거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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