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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에의 그리움

by 글섬


단단했던 담장 사이로 바람이 든다. 나를 고양해주던 외로움이 뜯겨져 덜컹덜컹 나를 흔든다. 그게 그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뭐 별로 먹고 싶지도 않은 음식물들을 울컥울컥 삼킨다.


내가 헐거워진다.


온종일 허기를 느낀다. 기억해야 하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오만 가지 하찮은 일들로 뛰어 다니는 와중에도 배가 고프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확인해보면 그럴 리 없는데도 진짜만 같은 허기였다. 위장을 꺼내 쓰다듬고 싶다. 아니야, 괜찮아.


아침 클래식 에프엠에서 슈만 피아노 4중주 3악장의 바이올린 주선율이 흘러넘치자 콧날이 시리다. 고팠던 건 다정이었다.


300년이 넘은 예일대는 유리창이 깨져도 새 유리로 교체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다. 수백 년이 넘은 건물에 현대식 새 유리를 사용하면 이질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깨진 유리를 그대로 두고, 금이 간 부분에 원래의 유리 프레임과 같은 재료로 보강하는데, 강한 증기를 쏴서 유리를 부드럽게 하면서 프레임을 덧붙이는 섬세한 공정이 요구된다고 한다.


참조 사진에서 금이 간 채로 웅장하게 서 있는 예일대 건물 창이 아름답다. 존재로 인해 약해져 금이 간 존재에 연화 작용을 통해 강화된 유리가 정체성을 고양한다.


아마 나는 금이 간 건지도 모른다.

아마 그 아이는 금이 간 건지도 모른다.

이미 여러 차례 그러했듯, 원형이 아니다. 원형으로 살아지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바람이 들고 헐거워지고 파손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살았던 게 아니다. 거기 존재했던 게 아니다.


다정이 힘으로 변환되는 수리의 과정을 생각한다. 연약해졌다가 강력해져 남다른 아름다움이 되는 과정을 상상한다.

바로 그렇게 새로이 아름다워지는 과정에 있다고,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외로움에 취향을 잃지 않고 그리움에 빛을 빼앗기지 않고, 나 자신이 다정이 되면 되겠다고,


다정한 아름다움. 단정한 아름다움.

아름다움과 다정을 생각한다.

그 길 위에서 바람과 파손을 감당하는 존재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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