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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우 Jun 01. 2023

[순우여행노트 16] 캠프벨농원의 정경

    

  윌슨(Jermy Wilson)씨의 초대를 받아 방문한 그의 집은 보통의 도시주택이 아니라 캔버라(Canberra) 시내로부터 약 30여 Km 거리의 한적한 시골에 자리 농원이었다. 사전에 이렇다 할 이야기를 듣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뜻밖이 아닐 수 없었다. 

     

  윌슨씨의 퇴근 편 승용차에 동승 해서 농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여섯 시쯤. 관목의 숲이 무성한 뒷산 너머로 바로 해가 진 뒤, 저녁의 고요가 깃들이기 시작할 무렵의 시간이었다. 앞뒤의 산자락 사이 놓여있는 평지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한 주택은 물씬 전원풍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자연 그대로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 나무 기둥과 지붕, 커다란 통유리의 앞 창문, 집 주변을 감싸고 있는 꽃밭과 언덕 아래의 텃밭. 집 앞쪽으로 약간의 내리막 언덕이 있고, 그 언덕 건너로는 관목의 숲이 시작되는 완만한 경사의 야산이었다. 야산은 무게 있는 자태를 간직하고 있는 캠프벨산의 산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캠프벨산의 산자락 아래에 자리한 아늑한 저녁 시간의 농원은 모든 것들이 적당히 가꾸어져서 자리가 잡힌 전원의 공간으로 잘 채색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우리들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때마침 현관밖에 나와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던 윌슨씨의 부인은 활짝 웃으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런데 각각 여덟 살, 여섯 살, 네 살인 크리세너, 셔피, 그리고 질리 등 세 어린이의 어머니인 그녀의 모습이 의아했다. 아주 자연스러운 맨발 차림이 아닌가. 이를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윌슨씨는 농장을 가꾸는 중의 일상적인 차림은 맨발이라는 것을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땅거미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는 시간 우리는 곧이어 도착한 윌슨씨의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빌 훌리에(Bill Hullier)씨(빌은 환경전문가로 호주의 원조 기관인 호주원조개발국 AIDAB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한동안 나의 연수 지도를 담당하기도 했다)의 가족과 함께 거실에 앉아 큼직한 통유리로 훤하게 내다보이는 농원의 앞쪽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데 다른 어느 것보다도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거실 유리창 바깥쪽 바로 가까이에 다투듯이 피어있는 꽃들의 모습이었다. 모두가 정성스레 가꾸어진 화초도 있고 들풀도 있었던 것 같다. 유리창 가까이에 발아래 바로 잡힐 듯한 위치에 어느 것들은 잔잔하기도 또 다른 것들은 무성도 하던 그 꽃과 풀들의 모습이 지금까지도 아주 생생한 기억으로 내게 각인되어 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야트막한 집 언덕 앞쪽의 농원 모습은 창가의 아기자기한 풀꽃 뜨락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었다. 약간의 평평한 농지에 연이은 경사진 언덕에 들어차 있는 관목과 나무숲은 암갈색의 단순한 색조의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풀꽃 뜨락이 잘 가꾸어진 친숙(親熟)의 공간이라면 농원의 다른 부분은 자연 그대로의 숨결이 숨 쉬는 야생(野生)의 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먼 숲 쪽으로는 다소 짙은 어둠이, 가까운 관목 근처에는 옅은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멀리 내다보이는 켐프벨산의 모습은 마치 캔버라 시내의 자리 잡고있는 'Black Mountain' - 캔버라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캔버라 시내 전체를 조망해볼 수 있는 이산이 검은빛을 띠고 있다고 해서 '검은 산' Black Mountain이라고 부른다 - 과같이 검은 자태를 간직한 채 이곳의 농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캠프벨Campbell) 농원. 이곳을 이렇게 이름한 것은 윌쓴씨의 전원풍의 목조주택과 농원이 자리해 있는 작은 마을의 이름이 캠프벨(Campbell)서 내가 그냥 '캠프벨농원'이라고 불러본 것이다. 윌슨씨의 말로는 'Hobby Farm', 즉 취미농장이라고 하지만 그 면적이 40에이커, 약 5만 평 규모의 면적으로 우리의 기준으로 보아서는 무척 넓은 면적이 아닐 수 없었다. 윌슨씨의 농원은 항상 좁게만 살아온 나에게는 신천지나 다름이 없는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대부분이 관목의 숲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농원에는 라디(Rady)라는 이름의 말 한 마리와 23마리의 양을 방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노닐거나 거니는 모습은 좀체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망원경으로 농원 앞쪽의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피고 있던 빌이 캥거루의 출현을 발견해냈다. 바로 이런 어스름이 내릴 때쯤 가끔 집 근처에 그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이 윌슨씨의 설명이었다. 새끼를 데리고 집을 찾아가는 듯한 캥거루는 짙은 어둠이 내린 숲속으로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어둠이 점점 깊어지면서 농원은 창밖에서 들리는 새와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에도 불구하고 고요가 더욱 깊어지는 것만 같았다.


  농원은 곧 바깥의 모습을 거의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어둠이 쌓였다. 박깥의 사방이 온통 어둠인 전원 공간에서의 저녁 식사. 빌의 아내의 도움을 받아 윌슨씨 부인이 준비한 저녁 메뉴는 농원에서 재배한 채소로 만든 채소 샐러드, 보리빵, 램 스테이크... 메뉴는 아주 간소한 듯했지만, 이런저런 얘기와 웃음거리들을 가지고 함께 식사를 즐겼다.


  호주를 찾아 캔버라지역으로 이민을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원봉사 영어교사를 하고 있다는 윌슨씨의 부인은 손님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는 듯 아주 넉넉한 기분을 갖게 해주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또 다른 기억 중의 하나는 식사가 끝나갈 무렵 윌슨씨가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가서 손수 가져온 것은 그리크 파이(Greek Pie)다. 식사 손님을 초대하면 반드시 윌슨씨가 책임을 진다는 후식. 그날 저녁의 파이는 특히 맛있게 익혀진 듯하다면서 기분 좋아하던 윌슨씨에 대한 기억도 떠오른다.     


  저녁을 마치고는 이슥한 밤이 되기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캔버라 시내에서 사는 빌의 승용차에 편승해서 내가 머무르고 있던 호주국립대학교 기숙사에 되돌아온 시각은 거의 자정 무렵. 어찌 생각하면 극히 자연스러워서 쉽게 잊히어졌을 법도 한 윌슨씨 농원의 방문은 내가 마치 송두리째 마음을 빼앗긴 한편의 동화를 읽은 것처럼 나의 머리와 가슴속에 매우 깊은 인상과 느낌을 남겨 주었다.     


  그 이후 귀국을 한 뒤에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윌슨씨의 캠프벨농원에 대한 기억과 인상은 아마도 나의 시골 농원에 대한 꿈을 갖게 하는 모태가 되었던 것 같다. 바로 그것이 모태가 되어 나는 몇 년 전 강원도의 어느 시골 산촌에 윌슨씨의 농원과도 같은 분위기의 농원 하나를 마련했다. 그리고 그 농원의 이름을 그곳의 마을인 '나래실'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나래실아침농원'이라고 지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해 초, 내가 직무연수를 받고 있던 사무실의 내 멘토가 되어주었던 직원이 해준 초대가 이렇게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는 것이 새삼스러울 따름이다. 그 초대로부터 받은 느낌으로부터 농원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고 오래도록 꾸어온 그 작은 꿈이 이루어낸 셈이니 말이다.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캔버라 특별시구역을 벗어나서 뉴 사우스 웨일(New South Wales)주의 한적한 시골길로 접어들어서도 꽤 오랜 시간을 달려 도착할 수 있었던 캠프벨농원. 퀸빈(Queanbeyan)이라는 작은 도시를 지나 구공(Googong)이라는 이름의 댐을 끼고 길을 달렸던 어느 오후의 기억이 오롯이 되살아나며 또다시 캠프벨농원의 정겨운 모습이 살포시 떠오른다. 윌슨씨의 캠프벨농원에 대한 추억은 내가 외따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산촌의 나래실아침농원에서 주말이면 꽃과 나무들을 돌보는 시간 중에 가끔 되찾아 떠올리는 즐거운 추억의 하나가 되고 있다. (2000. 9. 3.) 


캠프벨 마을 중심 지역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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