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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Jul 03. 2024

시어머니는 며느리 단속반

며느리 바람도 시어머니 하기 나름이래요


남편은 나와 평생을 살아도 내가 바람피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시어머님이 그동안 아무도 모르게 나를 단속해 놨으니 남편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나는 신혼 때, 1년 동안 시댁에서 살았다.

가족들이 아침을 먹고 모두 일터로 나가고 나면, 나는 집안일을 하고 시어머님의 잔심부름도 하며 살림을 배웠다.


어머님은 새벽이나 해 질 녘에 논, 밭의 일을 하셨고 마을에 있는 노인당(마을 회관)에 잠깐 다녀오시는 일 외에는 하루 종일 나와 함께하며 1년의 시간을 보냈다.

이 시기에 우리 고부는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으며 진짜 가족이 되어갔다.


하지만 이후에 따로 살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리 애틋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

그 비결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밤에 있었다.


설령 서운한 일이 있어 마음이 상했더라도 밤이 되면 없던 애교도 짜내 하는 다급함이 바로 어머님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있어야 해결이 되었다.


캄캄한 어둠 속을 뚫고 나가야 했던 마당 구석에 있는 화장실.

바로 그 화장실을 나 혼자서는 절대로 갈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아는가?

시골에는 밤도 일찍 찾아온다는 사실을.


그 일만은 남편 내게 도움이 돼 주지 못했다.

일도 많았던 데다 자동차 엔진 작업에 재미를 느끼며 루가 멀다 하고 새벽에 들어왔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겁 많은 며느리의 부탁에 밤마다 화장실 앞에서 보초를 서 주시니 내 입장에서 고운 정이 안 생긴다면 이상할 일이다.

마루에 나와 기다리는 어머님이 혹시라도 혼자 들어가실까 봐 나는 자꾸만 어머님을 불러댔다.

"어머니, 거기 계신 거 맞죠? 들어가신 거 아니죠?"


어머님은 마루에 앉아 졸린 눈을 비비고 하품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으셨, 매나 어디 안 가고 여기 있노라고 대답해 주셨다.

뭐가 무섭냐고 하면서도 남편이 따라와 줘야 하는데 당신이 대신해 주는 것이 오히려 미안다고 하셨다. 


그러고 나면 이미 잠이 깨버린 어머님이나 남편을 기다리며 잠들지 않는 나나 양쪽 다 눈이 말똥말똥 해졌다.

죄송해서 참아 보려고 해도 의지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어떤 날은 초저녁이었고, 어떤 날은 한밤중이었다.

어머님은 그 당시를 떠올리면 힘들었다고 하시겠지만 내게는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이미 잠에서 깨버린 어머님과 내가 마루에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고부의 정이 쌓였던 시간이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화장실 보초 임무를 친절히 끝내신 어머님이 마루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고 계셨다. 전에 없던 심각한 얼굴이었다.

나는 내내 친절하던 어머님이 내게 화가 나신 것 같아 긴장하며 사과드렸다.

"어머님 죄송해요. 괜히 어머님까지 잠도 잘 못 주무시네요." 했다. 그랬더니 어머님 하시는 말씀이

"왜 머리를 다 안 말리고 그러고 있는 거냐? 그러면 절대 안 돼! 얼른 가서 머리 말려라. 막둥이 오기 전에 얼른 말려!" 하시는 거였다.

"네! 머리요? 기다리다 보면 금세 마를 텐데요."

"안돼! 얼른 지금 가서 말리고 와!"

나는 어머님의 기세에 눌려 얼른 머리를 말리고 다시 돌아와 어머님 곁으로 가 앉았다.

머리를 말리면서도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감기 걸릴까 봐 걱정돼서 그런다기에는  심각하 않았나 싶어서였다.

내 짐작은 맞았다. 어머님이 화나신 건 그런 일반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여자가 머리 안 말리고 남편 옆에서 자면 여자가 바람나!"

아, 어머니.

나는 잠깐 동안의 긴장이 풀리면서 어머님 앞에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런 미신은 어디서 듣고 며느리 바람 단속을 하시는 건지 안 그래도 작은 체구의 어머님이 너무 귀여웠다.

어머님은 머리는 꼭 말리고 잠자리에 들겠노라는 다짐을 받고서야 심각한 표정을 풀어 주셨다.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골목 어귀를 들어서는 남편의 자동차 소리가 들리 어머님은 속 시원한 듯 잘 자라는 말씀을 끝으로 먼저 으로 들어가셨다.

'아이고 어머님, 어머님 덕에 저는 절대 바람은 안 피우겠네요.'

별이 총총 뜨고 달빛은 환하게 비추던 어느 기분 좋은 밤이었다.


분가해서 살고 있던 어느 날, 아파트에 놀러 오셨던 어머님은 다시 한번 내게 바람 단속을 하셨다.

 구경 중에 베란다 화분에서 잘 자라고 있던 복숭아나무를 순식간에 뽑아버리면서

"이거 복숭아 나무지? 집 안에서 복숭아나무 키우면 여자가 바람 나서 못쓴다! 다시는 심지 마라!"

맛있는 복숭아를 사 먹고,  그 씨앗을 심었더니 고맙게도 싹이 나고 나무가 되어 주었던 내 첫 복숭아 나무는 그렇게 뽑히고 나는 다시 한번 어머님께 다짐했다.

다시는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겠다고.


어머님은 심각하셨어도 자꾸 웃음이 나오게 만들어 주셨던 추억들을 생각하면, 올봄 코로나에 걸리신 후 부쩍 말이 없어진 어머님이 나는 요즘 더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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