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애 낳을까봐"
참치김치찌개 기분 좋게 먹고 마흔을 바라보는 딸이 하는 참신한 헛소리. 하지만 이에 놀랄 엄마가 아니다. 그녀는 이미 산전수전공중전우주전 다 겪은 사람.
"응? 누구 만나는 구만?"
하. 그렇다. 애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지.
"아닌데."
"그럼 애는 어떻게 만들어."
...(음)
"씨만 받으면 되지!?"
"그러니까 누구 씨를 받냐고?"
...(긁적)
"냉동 정자?"
"참나. 어떤 아가 나올지 알고."
"뭐 나 닮겠지."
"야, 그 윗세대를 닮을 수도 있고 그런거야."
"그건 안되는데."
"갑자기 아는 왜 놓는다노."
"음. 애라도 있으면 열심히 살지 않을까? 지난 번에 물어보니까 애 땜에 산다는 사람 많든데."
"아 있으면 집에 꼼짝마라지 뭐. 니가 집에 잘 도 있겠다."
"그래도 그럼 억지로라도 살지 않을까? 나 사는 게 지겨운데."
"뭐????"
"사는 거 너무 지겨워."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세탁기에 피존을 넣으려다 세제를 다시 들이부었고 머리가 아프다며 약을 먹으려다 뜨거운 물에 약을 삼켜 괴로워했다.
"아니, 엄마는 물이 연기가 펄펄 나는데 그걸 그냥 마심 어떡해?"
"아니, 딸내미가 죽겠다는 데 그럼 안 놀라냐?"
"아니, 죽겠다는 게 아니라 살기 싫다는 거지."
"그게 그거 아냐"
나는 괜히 말했다 싶어 식탁 밑에 쭈그리고 누웠다. 엄마는 왜 그러냐고, 말을 해보라고 했다.
"아니, 의미가 없잖아. 의미가. 왜 다들 열심히 사는 거지?"
"사는 게 다 힘들지. 내사 니 보면 니 만큼 살면 재밌겠구만."
"재미 없는데."
"야, 남의 돈 버는 게 쉬운 줄 알아? 다 그만큼은 하지. 니 만치 쉽게 벌면. 회사 다니는 사람들 봐라."
"그러니까 내 말은, 돈 버는 것도 어렵고 죽도록 힘든데, 왜 다들 그러고 사냐 이말이지."
"당연히 그러고 나면 내가 이룬게 있고 그렇지."
"난 이룬게 하나도 안 기쁜데...엄마는 어떻게 참고 살았어? 엄마도 나 때문에 살았지? 자식 때문에?"
"나? 아니, 나는 내가 이렇게 해 놓은 거 보면, 아- 내가 이렇게 했구나. 고생해서 이런 것들을 스스로 해냈구나 하는 희열이 있지. 그리고 돈 버는 재미가 얼마나 있는데. 니는 상상 속에 살아서 큰일이다."
나는 엄마가 자식이 아닌 본인의 돈 버는 희열로 산다는 이야기에 약간 서운했지만 그래도 오히려 그게 낫겠다 싶었다. 돈은 거짓말 안하니까. 돈은 실망이 없으니까. 늘 사람이 문제지.
이 문제를 고민한지 약 한 달 정도가 되었는 데, 다행히 내 글을 읽은 K가 걱정이 되었는 지 먼저 연락을 해왔다. 나는 K에게 지금의 감정을 이야기했고, K는 자신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며 그때 삶의 목적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 새로운 목적을 찾아보라고.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괜찮아진다고.
그러고 보니 나는 지난 2월이후 그냥 발버둥 치고 있었다. 딱히 목적을 두고 여기까지 온게 아니다. 그냥 어쩌다보니 등 떠밀렸고, 여기 서있고, 모든 게 변했다. 핸드폰을 뒤지면 죄 사람들과 나다. 원래 고양이와 나, 커피와 나, 책과 나, 바다와 나 였는데 지금 핸드폰을 열면 사람들 속에 나 서류 속에 나. 이게 정말 난가?
이렇게 살기를 원하는 걸까?
난 내가 잘나 보이고 내가 잘되고 내가 무언가를 해서 행복한 사람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그냥 그런 일로 즐거운 것 같지가 않다. 그럼 뭐가 좋은 거지? 그걸 모르겠네. 하고 싶은 게 많은 데 그걸로 뭔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은 건 아니다. 내 스스로 만족을 찾아야하는 데, 결국 내가 날 안아주지 못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왜 사는 걸까?
태어나서?
그 모든 고통을 참으면서 뭘 기대하는 거지.
정말로 궁금하고 정말로 정말로 모르겠다.
누가 알려주면 좋겠다. 나 스스로 답을 찾기엔 너무 에너지가 딸려.
머리가 먹통이다.
네이버 지식 in에 물어봐야 하나.
역시 애를 낳고 남을 위해 사는 일을 배워야 하나.
도대체 어른은 어떻게 되야 하나.
@클레멘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