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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없는 투구게를 왜 인간은 못 잡아서 안달일까?

파란피의 투구게

투구게 (영어: tri-spine horseshoe crab, 학명 Tachypleus tridentatus)는 절지동물이다. 이름에는 ‘게’가 들어가 갑각류일 것 같지만, 실은 삼엽충에서 진화한 생물로, 전갈이나 거미와 같은 협각류 절지동물에 속한다. 약 4억 5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종(species)이 큰 변화 없이 현존하여 살아있는 화석으로 알려져 있다.

투구게 2.jpg 투구게는 게지만 집게발이 없다. 딱 봐도 살이 없어 보이는 것이 맛과는 거리가 멀 것 같다.

투구게의 혈액은 파란색이다. 아마 상상하기 어려울 텐데, 투구게의 피를 모으면 정말 딱 스머프 (Smurf) 색깔이 된다. 척추동물의 적혈구는 철(Fe)을 기반으로 적혈구인데 반해, 투구게는 구리(Cu) 기반의 혈색소(hemocyanin)를 이용해 산소를 공급한다. 투구게는 동물이고 곤충이기 때문에 면역체계는 가지고 있으나 아주 원시적인 형태이다. 자가(self)와 비자가(non-self)만을 구별하는 백혈구가 있고, T 세포나 B 세포는 없기 때문에 자가이면서 비정상적인 세포와 면역기억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실은 대부분의 곤충들이 원시적인 형태의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다. 면역학에서 선천면역(innate immunity)과 관련한 실험은 초파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여름이면 과일향을 따라 나타나는 초파리는 선천면역에서 외부의 분자를 인지하는 톨 유사 수용체가 (TLR: Toll like receptor) 매우 발달해 있다. 뿐만 아니라 초파리 같은 경우 개체의 수명이 짧고 유전자 정보도 복잡하지 않아 실험동물로 매우 적합한 여러 가지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투구게의 백혈구에는 외부 인자를 인식하는 톨 유사 수용체 중 그람 음성 박테리아 (Gram negative bacteria)를 감지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람 음성 박테리아의 외벽에 있는 세균내독소(LPS: lipopolysaccharide)를 검출할 수 있다. 이 세균내독소에 대해서는 원시 동물부터 척추동물, 그리고 유인원과 사람에게까지 진화적으로도 매우 잘 보존된 (conserved) 면역반응을 유발한다. 정확히 말하면 TLR4라는 수용체 (receptor)가 인지하여 우리 몸에 나쁜 물질이 들어왔음을 경고 (alarming) 하게 된다. 이 경우는 염증반응으로 심각한 경우 패혈증(sepsis)을 유발할 수 있다.

투구게 3.jpg 투구게의 꼬리 부분을 잘라, 무균실에서 수집하면 파란색이다. 이는 철 대신 구리 기반의 혈색소 때문이다.

그럼, 혈관으로 직접 맞는 수액이나 혈관 주사용 약물에 세균이나 세균내독소가 있으면 어떻게 될까? 패혈증이 유발되면 미생물의 전신 감염으로 인해 주요 장기의 장애를 유발하거나 저혈압이 동반되어 패혈성 쇼크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이 투구게의 혈액을 이용하여 그람 음성 박테리아의 검출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즉, 무균상태여야 하는 치료제나 의학용품의 출하 전, 투구게의 혈액을 활용한 검출 (Assay)를 진행해서 식약처나 FDA에 제출해야 한다.

세균은 어디에나 있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실험했던 경험에 의하면, 비누에서도 세균이 검출이 되었다. 비누는 염기성으로 세균들의 항상성(homeositasis)을 무너트려 세균을 죽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염기성에 강한 특정 세균이 비누에 붙어 있는 것이다. 혹시, 미생물학자에게 인간이 지닌 물건 중 가장 세균이 많은 것을 고르라고 하면 다들 입 모아 핸드폰이라고 할 것이다. 손이 인체에서 가장 더러운 부분이라는 것은 누구든 알 것이다. 그 손이 하루에도 수 십 번을 왔다 갔다 하는 핸드폰은 정말 각종 세균의 온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수술실이나, 무균 실험을 할 때 핸드폰은 소지 금지 품목이었다.

그럼, 투구게의 혈액은 어떻게 세포 내 독성이나 그람 음성 세포가 있음을 검사할까? 약물이 출시되기 전에는 Random으로 몇 개를 뽑아 사람 몸에 주입해도 되는지 몇 가지 실험들로 품질 유지 (Quality control,. QC)을 한다. 이 중 필수는 LPS, 즉 세포내독성 (endotoxin) 검사를 포함하고 있다. 그럼, 이 세포내독성은 어떻게 진행하는가? 우리는 투구게의 피를 이용한다. 소량의 약물을 투구게의 혈액에 넣으면 투구게는 혈액을 응고하는 방식으로 외부 물질에 대해 면역반응을 한다. 물론, 이 투구게의 혈액을 수집할 때에도 무균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투구게 4.png 투구게 혈액 채취 공정 과정. 무균실을 유지하기 위해 작업자들도 수술복과 같은 차림이다.

이렇게 수집된 투구게의 혈액으로 세포내독성 여부를 알아보는 것을 생물학적 내독소시험 (LAL, Limulus amebocyte lysate assay)라고 한다. 즉, 비교적 단순한 면역 체계를 가진 투구게의 백혈구의 TLR이 LPS를 인식하고, 이에 따라 푸른 혈액이 점점 굳게 (clotting) 되는 것이다. 이렇게 치면 투구게의 혈액이 인간의 의약품 생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혈관 주입 약물이나 주사제에서 필수로 해야 하는 검사(assay)이다. 그러니 수많은 투구게의 혈액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최근 논문에 따르면 LPS도 세균의 종류에 따라 분자 모양이 달라지고 투구게의 혈액을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합성하고 있는 추세이다. 제발 투구게가 인간의 의해 멸종하기 전 뭔가 획기적인 검사법이 나오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과학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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