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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민 Feb 21. 2023

'지도자 기성용'에 걸어 보는 기대

김형민의 축사(축구와 사람) #10

난 축구 현장을 가면 믹스트존을 애용했다. 당장 궁금한 내용을 선수들에게 묻기에 딱 좋았다. 선수, 감독들이 지나가는 통로와 기자들이 있는 구역을 나눈 빨간 리본을 사이에 두고 자유롭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대표팀에서도, K리그에서도 기성용을 가장 많이 찾았던 것 같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건 기자로서의 본능이었던 것 같다. 기성용은 믹스트존 인터뷰를 한 번도 거부한 적이 없다. 팀이 지거나 경기력이 좋지 않았을 때도 피하지 않았다. 그가 내뱉는 답은 때론 직설적이고 강했다.


2016년 10월 그는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대표팀 훈련을 하고 라커룸으로 들어오는 길에 잔디 문제를 제기했다. 그때 나와 타사 기자 두 명만 현장에서 이야기를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표팀은 카타르와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세 번째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잔디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기성용은 "우리 홈경기인데, 잔디 상태가 엉망이어서 선수들도 당황스럽다. 이런 환경에서 경기하는 것은 마이너스"라고 했다. 기성용은 K리그 FC서울로 돌아온 이후에도 잔디 문제를 수시로 제기했다. 그의 말은 평온했던 그라운드에 바람을 일으켰다. K리그 구장들의 잔디를 다시 보게 했고 몇몇 곳은 변화도 생겼다.


대표팀 경기에서 드리블하는 기성용 [사진=아시아경제]

기성용은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주변에선 기성용을 문제를 촉발시키는 '이단아'로 보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주장'에 걸맞은 선임 선수로 평가한다. 그는 어렸을 적 호주에서 축구를 배웠다. 이후에는 영국에서 선수 생활 대부분을 보냈다. 오랜 외국 생활로 몸에 베인 개방성, 자율성, 그리고 강해진 개성과 고집 등이 그에겐 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과감하게 나선다. 그런 행동이 조직 생활에선 좋지 않게 보일 수도 있지만 변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기성용에 대한 세간의 엇갈긴 평가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최강희 감독을 저격한 SNS 글 논란은 별개다. 그 글은 절대 올리지 말았어야 하는 문제적 언사였다.


2018년 우리 대표팀이 러시아월드컵을 준비할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주장이었던 기성용은 신태용 감독과의 면담에서 "스리백을 쓰지 말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신 감독은 우리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수비 지향적인 경기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 수비를 강화할 방안으로 스리백을 고려하고 있었다. 다만 그 스리백은 기성용을 위아래로 움직이게 하는 '변형 스리백'이었다. 기성용은 선수들이 스리백 전술을 어려워하고 있으니 대회에선 포백 전술로 나가야 한다고 가감 없이 말했다. 신 감독은 고민 끝에 이 의견을 받아들였다는 후문이 있다.


FC서울에서 뛰는 기성용 [사진=연합뉴스]

그런 기성용이 감독이 되면 어떨지 최근 더 궁금해졌다. 그는 지난해 연말 영국 웨일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유럽축구연맹(UEFA) B급 라이선스 과정을 이수 중이라고 한다. 향후 2~3년, 길게는 4~5년 더 선수생활을 한 다음 기성용은 그라운드를 떠날 것이다. 그 이후는 지도자의 삶을 꿈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성용은 일본 가고시마 전지훈련 중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축구는 여러 철학, 전술이 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감독이나 코치가 바라보는 것과 선수가 바라보는 게 다른 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느끼고 싶었다"라고 했다. 또 "요즘엔 지도자가 선수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가 중요하지 않느냐. 그런 것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지도자 연수 때 느낀 소회를 말했다.


감독의 전술은 보통 자신이 경험한 감독의 전술을 따라간다고 한다. 돌아보면 기성용도 좋은 지도자들 아래서 축구를 했다. 닐 레논, 라파엘 베니테즈, 미카엘 라우드럽 등등. 조제 무리뉴 등 몇몇 명장들이 기성용 영입에 관심을 보인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적과 만남까지는 이뤄지지 않았다. 선수 경력을 돌아보면, 기성용은 감독이 됐을 때 패스를 많이 하는 축구를 선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패스를 많이 하고 점유율을 높여서 상대를 압박하는 축구에 희열을 느꼈다고 과거 인터뷰한 적도 있다. 지도자가 선수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를 언급한 것은, 자신이 팀에서 생활할 때 선수와 지도자 사이에서 전술에 대한 소통이 부족했을 때 나타나는 오해나 괴리감 등을 느낀 적이 있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기성용은 여러 무대에서 선수로선 쉽게 접하기 힘든 좋은 경험들을 많이 했다. 월드컵도 3번 나갔다. 그랬던 그가 좋은 감독이 될 수 있다면 우리 축구의 자산이 될 수 있다. 선수로서 기성용이 가진 능력도 독보적이다. 선수들은 기성용의 패스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기성용의 강점은 좌우 측면으로 향해 전달하는 긴 패스다. 좌우에 있는 윙어들에게 기성용은 후방에서 패스를 뿌린다. 이 패스는 매우 정확하게 배달된다. 때문에 상대 좌우 수비수들은 기성용의 패스 방향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차단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기성용이 지도자로서 직접 '제2의 기성용'을 배출하는 그림도 기대해 볼 만하다.


기성용은 축구 외적인 문제와 여러 논란들이 아직 마무리되진 않았다. 농지법 위반 혐의를 최근 벗었지만 아직 수사 중인 사안들이 좀 있다. 이는 차후 그의 경력에 리스크로 작용될 여지는 있다. 스스로 잘 마무리해야 한다. 그래야 기성용의 제2의 도전에도 날개가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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