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민 Feb 01. 2023

홍명보는 우리 축구의 유일한 희망인가

김형민의 축사(축구와 사람) #9

홍명보 감독에 관해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우리가 기대하는 판타지 스타. 그런 면모를 분명 갖고 있다. 하지만 유리멘탈. 주변의 평가와 비판에 크게 흔들리는 약심장.


사실 카타르월드컵이 끝난 후 홍 감독도 차기 사령탑 후보로 조용히 거론됐다. 대한축구협회가 이미 그를 낙점했다는 소문도 취재 중에 들었다. 하지만 의심할 수밖에 없는 풍문이었다. 홍 감독은 한 차례 대표팀을 맡아 월드컵에서 탈락의 쓴 맛을 봤다. 상처가 다 아물었다고 해도 그런 무리한 선택을 협회가 하지는 않았을 거 같았다. 그래서 쓰지 않았다. 결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은 새로운 판이 짜여 백지상태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홍 감독도 프로축구 울산 현대 사령탑으로 새 시즌 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분위기다.


언젠가는 홍 감독이 대표팀에 다시 복귀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우리 지도자들 중에서는 꽤 그릇이 큰 사람이다. 축구 전술, 경기 운영 능력 등에서는 좀 미흡하지만 확실한 리더십이 있다.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홍 감독을 울산 현대에서 수 차례 선수들을 강하게 휘어잡는 리더십을 보여줘서 눈길을 끈 바 있다. 울산 구단은 홍보 차원에서 홍 감독의 라커룸 연설을 촬영해서 온라인에 올렸다. 군기 바짝 들게 하는 상사의 불호령을 달갑게 보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울산의 저조한 경기력에 화가 나 있는 축구팬들에겐 속 시원하게 느껴질 만한 영상이다. 폭력을 쓰진 않았으니, 불호령이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데 효과 만점이었다면 그 역시 괜찮다고 생각한다. 홍 감독이 소리치자 베테랑 이청용, 김영권이 선수들을 독려한다. 팀 전체가 감독의 외침을 받아들일 준비가 늘 돼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홍 감독의 호령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홍 감독의 라커룸, 벤치 리더십은 2012년 런던올림픽을 준비하던 23세 이하 대표팀을 이끈 시절에도 도드라졌다고 한다. 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경기 도중 측면 수비수 홍철이 교체 투입 전 몸을 풀지 않고 딴짓을 하던 모습을 홍 감독은 경기 촬영영상에서 발견한 일이 있었다. 그날 경기는 홍철이 부진해서 무승부를 거뒀던 걸로 기억한다. 경기 후 팀 미팅에서 홍 감독은 말없이 홍철의 딴짓 영상을 선수들 앞에서 틀어준 후 한 마디만 하고 미팅을 끝냈다고 한다. "똑바로 하자."


홍 감독을 따르는 선수들이 꽤 많다. 런던올림픽 동메달 주역들을 비롯해 그 동년배들 중에는 홍 감독이 부르면 늘 달려 가는 선수들이 많다. 홍 감독도 그들을 알뜰살뜰히 챙긴다.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탈락과 함께 온갖 비난을 받았던 '의리 축구'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감독이 자신이 선호하는 선수를 쓰는 것은 뭐라 할 수 없다. 그만의 권한은 존중돼야 한다. 다만 결과가 나빴을 때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선택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홍 감독도 브라질월드컵 후의 비판을 잘 받아들였으리라 본다.


의리 축구를 비춰 돌아보면 홍 감독은 사람을 멀리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도 같다. 축구인들로부터 그에 대한 평판을 들어보면 돈을 잘 빌려주고, 또 잘 빌려가는 사람이다. 지인들이 형편이 어렵다고 하면 100만 원 정도는 쉽게 빌려준다고 한다. 그런 걸 감안하면 브라질월드컵 후 의혹이 제기된 '땅 투기'는 아마도 악의는 없었던 것 같다. 누군가 좋은 땅이 있는데 홍 감독에게 투자하라고 꼬드겼고 그는 많은 고민 없이 돈을 투자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성격이 감독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는 있으리라 본다. 홍 감독은 또한 외부의 시선과 평가에 대해 굉장히 민감해한다고 한다. 그는 브라질월드컵 대표팀 감독 시절 온라인에 올라온 대표팀 관련 기사의 댓글들을 수시로 봤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선수 선발 등에 대해서 고집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도 속으로는 여론을 크게 의식했던 것이다. 홍 감독은 돌아보면 엘리트 코스를 그대로 다 밟았다. 한때 축구 대표 선수로 가는 지름길이라 했던 고려대에서 축구선수를 했고 비교적 어린 시절부터 대표팀 선수로 뽑혀왔다. 2002년 한일월드컵 대표팀에도 발탁돼 4강 신화 주역에 올라 부와 명예도 얻었다. 그랬던 그에게 주변의 비난이나 의심은 생소한 것들로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브라질월드컵이 끝난 지 이제 7년. 홍 감독은 좀 달라졌을까. 그는 울산 현대 감독으로 지난 시즌 정규리그에서 우승했고 올해 정상을 사수하기 위해 나선다. 홍 감독이 축구 전술과 지도력을 더욱 끌어올리고 강심장을 가진다면 차후에는 우리 대표팀을 다시 맡길 만큼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는 평소 축구 경기영상을 자주 분석하고 선수들의 역할과 기술에 대해서 세밀하게 지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습관이 계속 유지된다면 전술, 지도력의 성장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브라질월드컵 때의 홍명보 감독 [사진=연합뉴스]

우리 축구는 좋은 지도자가 없어 늘 고민하고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의 후임도 외국인 지도자가 유력해진 현실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박항서 전 베트남 대표팀 감독은 "우리 지도자들도 협회가 잘 지원해 주면 좋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 확언을 증명할 수 있는 국내 지도자들 중 한 명이 홍 감독이다. 울산이 현대중공업의 투자를 받아 어느 팀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기량이 좋고 수준 높은 선수들로만 구성돼 사실상 홍 감독이 정규리그를 우승할 수밖에 없도록 환경이 조성됐다는 지적도 있다. 누가 감독을 해도 울산이 우승한다는 것이다. 홍 감독이 좋은 감독이어서 우승하는 건 아니라는 의심의 눈초리다. 이런 가운데서도 홍 감독이 자신의 능력을 잘 증명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는 있다.


이전 09화 다시 외국인 감독 유력… '통역 리스크' 줄여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