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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민 Jan 30. 2023

다시 외국인 감독 유력… '통역 리스크' 줄여야

김형민의 축사(축구와 사람)#8

말 한마디는 칼, 총보다도 강하다. 천 냥 빚을 갚기도 한다. 목숨줄을 좌우할 수도 있다. 축구 지도자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 그런 면에서 우리 축구대표팀을 지휘했던 외국인 감독들에겐 늘 리스크가 있었다. 바로 '통역 리스크'.


통역에 관해선 가장 먼저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이 떠오른다. 그는 독일인임에도 우리 축구대표팀을 지휘하고 관련 일정을 소화할 때 스페인어를 썼다. 스페인에서 선수생활한 영향이 있어서였던 걸로 이해됐다. 그의 언어를 우리말로 바꿔주는 통역관도 스페인어에 밝은 인물로 배정됐다. 하지만 슈틸리케 전 감독이 스페인어로 얼마나 정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의문이 남는다. 사실 기자들 사이에서도 통역이 제대로 번역을 하고 있는지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그의 스페인어를 한국어로 바꿔 들었을 때, 썩 매끄럽게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슈틸리케는 망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이란과의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원정경기에서 0-1로 진 뒤 경기내용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우리 팀에는 소리아(카타르) 같은 선수가 없다"는 희대의 망언을 던졌다. 그 말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정말 액면 그대로, 슈틸리케 감독이 소리아를 최고의 선수로 평가해 그런 발언을 했다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그가 정말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독일어가 아닌 스페인어를 쓴 울리 슈틸리케 감독 [사진=연합뉴스]

슈틸리케가 모국어인 독일어를 썼다면 상황은 달랐을까. 확실친 않지만 그랬을 가능성은 있다. 선수들과 훈련하고 경기를 운영할 때도 모국어를 쓰는 것이 더 나았을 거란 것은 자명하다. 그건 어느 감독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 대표팀을 카타르월드컵에서 16강에 올린 파울루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 사람이지만 영어를 썼다. 항간에는 대한축구협회가 포르투갈 통역인을 뽑았는데, 실력이 시원치 않아서 그냥 벤투가 영어를 사용하기로 조율했다는 후문도 있다. 문제는 벤투 감독의 영어가 완벽치 않다는 데 있다. 벤투 감독의 기자회견을 들어보면 비교적 쉬운 영어 단어들을 활용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이렇다 보니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세밀하게 전달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카타르월드컵 본선에 가서 벤투의 언어가 달라진 것이 이를 증명한다. 월드컵에서는 공식 기자회견에서 번역기를 쓴다. 대회조직위에서 제공하는 번역기는 월드컵 참가국 언어 모두를 번역해 줄 수 있다.  헤드셋을 착용하고 그곳에 달린 마이크에 말을 하면 실시간으로 통역돼 언어가 전달된다. 벤투는 월드컵에서 모국어인 포르투갈어를 썼다. 그의 기자회견의 메시지는 이전의 것들보다 더 명확하고 힘이 실렸다. 모국어의 힘이 발휘된 것이다.


포르투갈어가 아닌 영어를 쓴 파울루 벤투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든 거스 히딩크는 네덜란드인이지만 영어를 잘했다. 그래서 문제가 없었다. 통상 네덜란드 사람들은 영어를 꽤나 잘한다. 히딩크 역시 그랬다. 반면 이전 외국인 감독들이 통역을 거쳐 가는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켜 대표 선수들과의 불화가 있었기도 했다. 통역이 중간에서 이간질했다는 소문까지 날 정도였다. 데트마르 크라머(독일), 아나톨리 비쇼베츠(러시아) 등이 대표팀을 이끌던 시절 이런 통역 문제로 시끌벅적했던 경험이 우리에게 있다.


리 축구는 다시금 외국인 감독을 새 사령탑 후보로 찾고 있다. 호세 보르달라스(스페인),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아데노르 레오나르도 바치(브라질), 바히드 할릴호지치(유고슬라비아), 토르스텐 핑크(독일), 도베르트 포르시네츠키(크로아티아) 등이 직간접적으로 거론됐다. 마르셀로 비엘사(아르헨티나) 등도 물망에 올랐다. 대부분 우리 축구협회가 외국인 감독을 찾을 때 추천을 구하는 나라들과 연관돼 있다. 협회는 스페인, 독일, 크로아티아 협회와 상호 교류하기로 협약을 맺은 바 있다. 대표팀 감독을 물색할 때도 각 협회 측에 좋은 지도자를 추천해 달라고 연락하곤 한다. 에이전트들에게도 조언을 구한다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나온 후보들이다.


이번에도 외국인 감독이라면 '통역 리스크'를 없앨 수 있는 철저한 지원, 통역관 배치 등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대표팀 전술이 바뀌고 선수들의 움직임이 달라지며 경기력과 결과도 좌우된다. 크게는 우리 축구도 달라진다. 이런 점을 고려하고 각성해 언어에 관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협회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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