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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민 Jan 16. 2023

공격, 날 것, 물러섬 없는… 신태용 축구  

김형민의 축사(축구와 사람) #7

"그 돌대가리는....."


2018년 6월13일쯤이었던 것 같다. 우리 축구대표팀이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베이스캠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입성하고 첫 공식훈련을 하려 할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월드컵 취재차 출장을 갔던 나 역시 그곳에 있었다. 선수들과 신태용 감독이 둥글게 모여 섰다. 신 감독은 두 귀를 의심케 하는 표현을 썼다. 돌대가리. 우리와 첫 경기를 할 스웨덴 대표팀의 얀네 안데르손 감독을 일컫는 말이었다.


신 감독은 오스트리아 레오강에서 한 전지훈련 때부터 안데르손 감독에 대해 신경이 곤두서있었던 것 같았다. 서로 전력을 탐색하는 것을 두고 날 선 대응을 했다. 신 감독이 김신욱을 스웨덴을 속이기 위한 '트릭'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과정에서 나왔다. 그래도 돌대가리는 뭐랄까, 너무 날것의 말이었다. 대한축구협회 홍보팀 직원은 급하게 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방금 신 감독의 말은 들으셨더라도 흘려주세요."


신 감독은 돌아보면 독특한 지도자였다. 때론 사이다 같기도 한데, 때론 선을 넘기도 한다. 프로축구 성남 일화(현 성남FC) 사령탑 시절에도, 20세 이하 축구대표팀이나 리우올림픽 대표팀을 맡았을 때도 비슷했다. 상대와의 기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즐기기도 하는 것 같다. 어느 언론이 그를 '아시아의 무리뉴'라는 별명을 붙여 더욱 그렇게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는 포르투갈 출신 명장 조제 무리뉴 감독은 '신경전'의 대가다. 빅게임을 두고 상대 감독을 흔들어 원하는 결과를 얻는 그만의 전략이다. 신 감독도 이를 닮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최근 아세 축구선수권 대회에서 신 감독이 베트남의 박항서 감독과 설전을 한 것도 과거를 돌아보면 이해가 된다. 물론 박 감독과의 설전에는 오해가 있었다. 현지 기자들의 "박 감독이 이렇게 말했더라"는 식의 전달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말의 본질을 빼고 뒷말만 골라서 전달하면서 오해가 생겼다고 한다. 신 감독으로선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맞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을 공격하면 피하지 않고 맞받아친다.


오랜 열등감 때문이라 하기는 조금 모호하지만, 그가 자신의 자리를 지켜 온 방식이라 생각된다. 신 감독은 영남대 출신이다. 그가 선수를 할 때는 연고대 출신 선수들이 득세했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신 감독은 자신을 극도로 방어하고 과감하게 공격하지 않고서는 자리를 지키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랜 연차의 선배들로부터 들은 신 감독은 기자들에게 늘 친근했다. 기자가 묻지 않았는데도 자기가 다친 부위를 보여주며 부상을 당했다고 실토한 적도 있다. 모두 그에 대한 관심, 지지가 끊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말들이었을 것이다.

신 감독은 축구에서도 이런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공격축구를 지향한다. 언젠가 파주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만난 그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을 때가 있었는데, 그건 '백패스 금지'였다. 전방에 내 동료 옆에 상대 선수가 붙더라도 과감하게 패스하라는 지론이다. 이런 패스가 습관이 되면 공격축구가 완성된다고 신 감독은 봤다. 당시 기자와 만난 신 감독은 "언제까지 우리가 세계무대에서 물러서는 축구를 할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의 남다른 철학인데, 한편으론 약점도 명확해서 문제였다. 공격에 온 신경을 쓰는 그의 축구는 늘 수비가 약했다. 20세 이하 월드컵, 리우올림픽, 러시아월드컵에서 그가 이끈 대표팀은 모두 수비가 문제였다. 2골을 먹더라도 3골을 넣으면 된다는 신 감독의 축구는 분명 존중받을 만한 구석이 있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우 피곤하다. 수비를 단단히 하면서 안정된 축구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우리에겐 잠재적으로 심어져 있다. 이에 맞춰 보는 신 감독의 축구는 늘 비판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우승을 하려면 수비가 강해야 한다는 모든 스포츠 종목에 통용되는 원리도 그를 공격하는 근거가 됐다.


러시아월드컵을 취재할 때 나 역시 신 감독의 축구에 의문을 많이 제기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스타일의 감독도 우리 축구에 필요하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다. 다만 그가 축구대표팀 감독으로서의 그릇이 되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이 있었을 뿐이다. 신 감독은 인도네시아에 가서 자신의 축구를 마음껏 펼치는 것으로 보인다. 좌우 풀백이 공격적으로 나선 신 감독의 인도네시아는 대회 4강까지 올라 태국을 괴롭혔다.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다. 앞으로 더 강한 팀들을 만났을 때도 인도네시아가 이런 공격력을 보여주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월드컵 예선에 나갔을 때 신 감독과 인도네시아가 과연 수비적으로도 단단해질 수 있는지는 두고 봐야 한다. 과제는 있다. 그래도 신 감독은 이제 인도네시아에서 제대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앞으로 신 감독과 인도네시아의 축구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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