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의 축사(축구와 사람)#6
유럽 5대리그를 모두 제패한 카를로 안첼로티(레알 마드리드), 유로2020에서 정상에 오른 로베르토 만치니(이탈리아 대표팀), 그리고 최근 세상을 떠난 잔루카 비알리. 안토니오 콘테(토트넘 핫스퍼) 등등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축구 강국이었다. 그 배경에는 명장들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난 좋은 지도자들은 유럽, 그리고 세계무대를 주름잡았다. 이탈리아 축구는 지난 카타르월드컵에선 본선에도 오르지 못하는 등 불운했지만 앞서 유로2020에선 정상에 올랐다. 아리고 사키 감독이 고안한 4-4-2는 지금도 세계 축구 전술의 밑바탕이 된다.
원동력이 있다. 현 이탈리아 대표팀 사령탑 만치니 감독은 '코베르치아노'를 나왔다. 그가 쓴 졸업 논문은 꽤나 유명하다. 논문 '트레콰르티스타(IL TREQUARTISTA)'를 썼다. 이 '트레콰르티스타'는 스트라이커와 미드필더 사이 위치하는 기술 좋은 선수를 일컫는다. 포지션명으로도 쓰는 사람들도 있다. 이탈리아는 유독 이 자리에서 특출난 선수들이 많았다. 그냥 큰 틀에서 보면 로베르토 바조, 알렉산드르 델 피에로 등이 그렇다. 사실 이 포지션은 프랑스의 판타지 스타 지네딘 지단을 유벤투스가 공격적으로 잘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다. 그런 면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 포지션이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것은 맞다. 만치니 감독은 이런 선수들을 문화적, 축구적, 역사적, 통계적인 관점으로 논문을 썼다.
축구지도자가 논문을. 이색적이다. 이탈리아 축구감독들 대부분은 좋은 논문을 많이 썼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을 학구적이라고 하기도 한다. 대부분 코베르치아노에서 썼다. 이 양성소를 졸업하려면 논문을 반드시 써야 한다. 이탈리아에서 축구 감독이 되려면 이 곳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유럽에서는 손꼽히는 감독 교육기관이다. 이른바 '축구계 옥스포드'.
코베르치아노는 입학부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매년 단 스무 명만 입학한다. 이탈리아 국적이거나 이탈리아에서 최소 2년은 살아야 하고 선수시절 어디에서 얼마나 뛰었느냐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고 지도자로서 과제를 수행하며 일반 학업, 면접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졸업할 때는 논문을 써야 하는데 안첼로티 레알 마드리드 감독은 '4-4-2 포메이션에서의 공격수 움직임'을 썼고 일본 대표팀을 맡았던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은 '지역', 이탈리아 프로축구에서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알베르토 말레사니 감독은 '유로1996을 통한 일반적 고찰'을 썼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 코베르치아노의 까다로운 학업 이수에 대해 불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현지에서 있다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있기에 이탈리아 감독들이 강하고 이탈리아 축구가 또 강한 것 아닌가 한다. 이탈리아는 떨어지더라도 곧 올라오는 힘이 있다. 그 힘의 원천이 이런 것 아닐까.
언젠가 우리 여자축구대표 골키퍼 출신 문소리씨가 이탈리아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왔다고 해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이탈리아 코치 연수는 언어의 장벽은 물론이고 그 내용이 매우 세세하고 어려웠다고 들은 기억도 난다.
우리 축구협회도 지도자 자격증 연수과정을 운영하고 골든에이지 시스템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탈리아처럼 학업 이수를 어렵게 만들자고 하는 것은 좀 그래도, 논문 등 뭔가 끝에는 남기는 무언가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해본다. 논문 같은 것은 그 감독의 생각과 축구 철학이 담겼다. 그가 어떤 방향으로 지도자가 될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연령별 축구대표팀 감독을 선임하고자 할 때 좋은 지표가 될 수 있다. 감독 후보들의 논문들을 보고 우리가 필요한 지도자를 골라낼 수 있을테니 말이다. 프로축구 클럽들도 마찬가지.
동시에 우리 축구를 이탈리아 장인들에게 맡겨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이탈리아는 축구 전술의 본고장이다. 유럽 주요리그를 경험해 본 조제 무리뉴 감독은 자신의 전술 대부분은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다고도 했다. 프로축구 전북 현대의 선택은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로베르토 디 마테오 전 첼시 감독을 기술고문으로 영입했다. 전북은 현 코치진이 전술을 짜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디 마테오는 전북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우리 축구대표팀도 같은 행보를 보이길 바래본다. 이탈리아 명장들 중 무직인 지도자들이 적지 않다. 그들을 잡으려면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