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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민 Jan 02. 2023

박항서 신화, 그 배경에 수원 삼성

김형민의 축사(축구와 사람) #4

해외에서 성공했다고 평가 받는 박항서(베트남), 최강희(중국) 등 감독들의 공통분모가 하나 있다. 바로 수원 삼성이다. 포털사이트에 오른 프로필상으로, 박 감독님은 1997~1999년 삼성 2군코치, 최 감독님은 1995~1997년 삼성 트레이너, 1998~2001년 삼성 1군코치로 일했다.


박항서 베트남대표팀 감독

박 감독은 지금 베트남 대표팀을 이끌고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일렉트릭컵(미쓰비시컵)에 나가 승승장구 하고 있다. 박 감독이 베트남 사령탑으로 나가는 마지막 대회다. 최 감독은 2019~2021년 중국 다롄 이팡, 상하이 선화에서 좋은 성적을 남기고 그만 둬 현재는 무직이다. 최 감독이 전북 현대 사령탑으로 우리 프로축구에 남긴 족적이 굵직하다. 축구대표팀 감독으로도 일한 적도 있다.  


표면적으로만 놓고 보면 이때의 경험들도 두 감독님의 현 성공에서 아주 작게나마 영향을 미쳤을테다. 그때의 경험이 좋았든, 싫었든 말이다. 


그때만 해도 삼성은 축구에 투자를 많이 했다고 한다. 지도자들은 구단의 호주머니를 걱정하지 않고 축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됐을 것이다. 선수 수급을 비롯해 내가 그리는 팀 구성과 축구색깔을 구현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지금의 박 감독, 최 감독이라는 좋은 지도자를 만들어낸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수원삼성이 유럽행을 불허한 공격수 오현규

예전의 수원 삼성과 지금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은 모두가 다 느끼고 있다. 수원 삼성은 지난 시즌 승강플레이오프까지 밀리는 등 강등 위기에 놓였다가 간신히 벗어났다. 우리 축구의 기대주로 떠오른 공격수 오현규의 유럽 진출도 막았다. 그가 팀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유럽행을 막았다고 수원 구단은 밝혔다. 선수수급이 어렵고 예산도 부족한 사정 탓에 오현규 정도의 공격수를 다시 확보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밑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선수의 바짓가랑이를 잡을 정도로 팀이 어렵다는 것이다. 하나 덧붙이면, 오현규는 현재 우리 축구판에서 잠재력을 높이 평가 받고 있다. 


삼성이 스포츠에 씀씀이를 줄인 것은 최근 몇년 사이의 일이긴 하다. 그래서 이제는 별로 새롭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야구도 최근 선수들 연봉 지급 지출을 줄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흐름이면 아마도 올 4월쯤 되면 또 한번 '위기의 스포츠명가 삼성'이라고 대문짝만하게 각종 신문에 실릴지도 모르겠다. 최근 몇년간 계속 본 기사다. 이제는 연례 기사라고 해도 될 것 같다.


한때는 대기업 총수들이 스포츠 투자에 열을 올릴 때가 있었다고 한다. 故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비롯해 故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故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이 경쟁하듯 축구구단을 지원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왜 대대적으로 투자했는지에 대해서는 당시 정치와 경제 상황, 사회적인 인식, 아니면 정말 축구가 좋아서였는지 그런 것은 잘 모르나 무언가 동기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 동기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하지만 기업, 그러니까 구단주가 돈을 풀지 않는다고 뭐라 할 수는 없다. 구단, 또 크게는 모기업이 경영을 하는 데 투자처를 정하는 일은 자유다.


인기 예능 '뭉쳐야 찬다'의 감독이자 축구해설위원, 안정환씨는 모 인터뷰 프로그램에 나와서 "요즘 구단주들은 축구구단들을 기업홍보용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 구단들이 홍보용으로만 생각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동기를 만들어줘야 할테다. 그럼 이걸 구단이 나서서 할 수 있느냐. 결국은 경기인 것 같다. 축구를 재밌게 하면 그나마 그런 동기를 만드는 길이 조금이나마 되지 않을까.


기업총수가 스포츠에 빠지면 엄청난 영향력이 생긴다는 건 다른 종목들을 보면 안다. 최태원 SK회장은 핸드볼에 대해 애정이 깊다. 일반종목 중 핸드볼을 취재할 때, 우린 경제지다보니 거의 대한핸드볼협회에서 최 회장의 핸드볼 관련 행보만 묻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최 회장은 아침에 경영관련 보고를 받을 때 핸드볼 보고를 따로 받는다고 했다. 귀로만 확인했을 뿐이었는데 정말 그런 것도 같았다. 남자실업팀이 해체되려 하자 청주에 있는 SK하이닉스를 동원해 SK호크스라는 구단을 하나 새로 만들어서 선수들이 계속 핸드볼을 할 수 있게 했다. 꼭 올림픽만이 아니라 핸드볼대표팀이 세계대회에 나갈 때면 선수들을 찾아가 격려했다. 괄목할만한 성적이 나면 불러서 함께 식사를 했다. 수원에서 여자대표팀이 친선경기를 할 때도 만사를 제쳐두고 경기장에 가서 경기를 직관하고 선수, 코치진을 만나더라. 계속 소식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행보들이었다. 정말 내가 기자를 그만두기 전에 기회가 된다면 최태원 회장과는 꼭 핸드볼에 대해 인터뷰를 해보고 싶다. 최 회장이 최근 비난을 받는 이혼문제, 기업경영 문제 이런 거는 제쳐두고. 오로지 핸드볼에 대해서만. 지금도 그런 그림을 혼자서 그려본다.


축구에도 이런 회장님들, 구단주님들은 언제쯤 나타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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