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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Feb 02. 2024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만 난 안 귀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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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수 경상도 혈통의 사람이다. 


현재는 통영으로 불리는 옛 충무 출신의 경상도 아빠와 삼천포 시골 출신인 경상도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스무 살이 되던 날까지 그 두 도시의 중간인 소도시에서 자랐고, 그 후로는 부산과 외국을 오가며 살아왔다. 조부모님, 증조부모님, 그 증증증조부모님때부터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셨고 그들의 피를 물려받은 난, 소위말하는 순수 로열 찐 경상도 여자다.


고등학생 때까지 나 스스로는 사투리를 쓴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우리 가족들과 내 친구들, 선생님들, 동네사람들 심지어 상인들조차 나와 같은 말투를 사용했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들과 내가 같은 억양과 말투로 말하고 있다고 믿어왔기에 나도 표준어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방송에서 '사투리'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린 내가 생각한 건 '했시유' '했당께' 정도의 충청도 사람들의 고유 말투나 '혼자옵서예''맨도롱 또똣' 정도의 제주도 방언, 그리고 '내레 아오지 탄광에서 왔습니다'정도의 이북 말투 정도가 사투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핸드폰이 막 처음 보급화되던 시절인 고등학생 때, 친구가 사진인 줄 알고 버튼을 눌렀다가 실수로 동영상이 촬영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내가 말하는 걸 듣게 됐는데, 내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내 말투와 실제로 들리는 내 말투는 정말 달랐다.


내가 생각한 나의 말투는 "뭐야~ 부끄럽게 왜- 사진 찍어, 거지같이 나오잖아~ 그만해 이제 그만! 헤헷" 이렇게 상냥하고 부드럽고, 도시적인 찐한 향수가 느껴지는 세련된 현대인의 말투였는데, 핸드폰 화면 속에 담긴 나의 말투는 막걸리 몇 통을 말아먹고 걸쭉하게 취한 우리 삼천포 할머니 같았다. 


"뭐꼬, 쪽팔리그로 만다고 사진찍노, 걸베이 맹키로 나온다이가, 치아라, 확고마."

사투리로 밝혀진 경상도 유전자 데칼코마니.


... 아.

나 오지게 사투리를 쓰고 있었네. 전지현이랑 나랑 같은 말투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네.

고독하지만 세련된 도시여자 되기는 글렀다.




미술대회 때문에 난생처음으로 서울에 간 적이 있다. 학교 선배랑 서울 지하철을 타려고 했는데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노선도를 보고는 영혼이 가출하여 선배랑 같이 둘이서,


오데로 가노.

이기 맞나.

니가 마따캣다 아이가.


옥신각신 다투고 있는데, 연두색 조끼를 입으신 어르신이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조금 멀찍이 서서는 우리 대화를 가만히 들으시고는, 도와주시려는 듯 다가오셔서 친절하게 한마디 건네셨다.

영화 명량

쓰미마셍. お手伝いしましょうか? (도움이 필요합니까?)

지하철을 못 타고 헤매는 불쌍한 일본인 중생들이여, 내가 구원해 주겠노라. 이순신 만세.


선배와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너무 놀랐고 어르신의 일본어 공격에 당황한 나머지, 속에 있는 황당스러움을 입 밖으로 꺼내버렸다.


"머라카노."

*'지금 당신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의 경상도 사투리


우리의 말을 들으시고는 어르신은 다시 한번 정중하게 말씀하셨다.


"니혼진데스까?" (일본인이십니까?)

웰컴 투 코리아다 이것들아.


... 아니요. 지방사람인데요.

도와주세요. 우리를 제발 홍대로 보내주세요.


그렇게 우리는 지하철 천사어르신을 만나 무사히 홍대까지 갈 수 있었다.




외국에서 여럿 서울사람들과 친분을 쌓았다. 그들과 지내다 보면 나도 자연스럽게 서울말을 구사할 수 있겠지 하는 기대도 있었다. 외국인과 지내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영어가 느는 것처럼, 서울사람들과 소통하고 부딪치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효리, 김혜수처럼 말할 줄 알았는데, 몇 개월 후 오히려 그 친구들이 나에게서 사투리를 배웠다 그것도 어쭙잖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억양의 경상도 사투리.


"언↗니↘야→, 이거 해도 되는 거 맞↗↘는↘감?"

"이제↗ 으디로 → 가는건가잉↗?"


서울말+경상도 사투리 = 0개 국어


... 듣는 내가 숨 막히고 눈치 보이는 이상한 방언은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이여 방구여. 외국에 있을 때 단기간에 영어를 배우고, 일본친구랑 어울릴 때는 대충 하고자 하는 말을 띄엄띄엄 구사했던 자칭 언어천재인 내가, 서울말은 1%도 따라 하지 못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만큼 전파력 강하게 서울 친구들에게 경상도 사투리를 전파시켰다. 전 세계언어 중에 서울말이 나에게 가장 어렵다. 나를 처음 만나 대화를 한 사람들은 나와 두 마디를 나누고 나면 항상 나의 고향에 대해 맞출 정도로 나에게 있어 기침과 사투리는 숨길 수 없나 보다 힝.









* 경상도 사투리 문제!


얼마 전 대학병원에서 엄마와 의사 선생님이 나눈 대화입니다.


의사: 환자분, 좀 어떠세요?

엄마: 슨생님, 아직도 쫌 모독찮습니다.

의사:....(뭔 말이야)


여기서 엄마가 말한 '모독찮다'는 무슨 뜻일까요?

1) 모욕스럽습니다.

2) 목욕하고 싶습니다

3) 편하지 않습니다

4) 못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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