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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Mar 18. 2024

메세지로 폭탄이 전송되었습니다

111 짧은 글

아침 6시 40분 즈음 혹은 아주 가끔 아침 8시쯤 되면 항상 카톡이 울린다. 사실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는 것 같기도. 비단 내 폰만 울리는 게 아니라 아빠폰도 같이 울린다. 인천에 있는 오빠폰도 울린다.


알람 아닙니다.

빚 독촉 아닙니다.


바로 큰아버지에게서 오는 카톡 폭탄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휘황찬란한 그림에, 형형색색의 글씨에, 구구절절 맞는 말씀까지. 3박자의 완벽한 조합이 이리저리 엉켜있는 어르신 문안 인사스러운 그림파일이 1년째 죽지도 않고 또 계속 오고 있다.


그것도 한 개 아닙니다 두 개 아닙니다.

큰아빠 기분 좋으시면 하루 10개까지 온다.

그렇다고 무작정 아무거나 보내는 것도 아니고 나름 그날의 온도 습도 기분에 맞게 엄선하신다.



정월대보름.


환절기.


삼일절.


봄.


심지어,

일요일 기념 카톡이요.


복사하기 붙여 넣기를 해서 한 집에 살고 있는 아빠와 나에게 2분 시간차로 보내신다. 인천 오빠, 통영고모, 수원 사촌동생, 시골 사는 언니까지 인터넷이 달린 집이라면 누구나 받아본다. 큰아빠의 연락처에 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카톡 친구목록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다 보내는 건 확실하다.


매일 아무 말씀 없이 저렇게 그림파일만 뙇 보내실 때마다 답변을 해야 하는 건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빠한테 물어보니 그냥 대꾸를 하지 말라고 했다. (응?)

오빠는 너무 답을 안 하면 큰아빠가 서운해 할 수 있으실 테니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인사차원에서 감사하다 감기조심하시라 식사 잘하시라 답을 한다고 했다.


답을 너무 안하면 싸가지없어 보일까 봐 큰 마음먹고 답을 보냈다. 구구절절 쓰기도 이상하고 비슷한 유형의 그림을 보내기도 애매하고 해서 나름 귀엽고 의미가 담긴 이모티콘을 선별해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3일 뒤에 큰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분주 너, 카톡으로 보낸 거 그건 무슨 뜻인가? 무슨 의미가 담긴 그림인가?"


다짜고짜 내가 보낸  이모티콘에 대해 취조하듯 언짢은듯한 말투로 물으셨다.


" 어.. 매번 큰아빠께서 좋은 글귀 보내주시는데.. 감사하다는 의미로 이모티콘으로 답장 보내드린 거예요!"


" 그렇단 말이지.. 난 또 개모양을 보내서 내보고 개소리하지 말라고 그런 줄 알았지 허허."


무슨 말씀이신가 싶어 얼른 카톡창을 열고 내가 뭘 보냈는지 확인해 보니,


왈왈왈.

눈에 하트는 못 보시고 귀랑 이빨만 보셨나 보다

이년이, 감히 개를 보내다니.

보이는대로 믿는 스타일이시네. 눈이 뇌를 지배해버린 상황.



며칠 뒤, 다시 존경의 의미가 담긴 정중한 이모티콘을 보내드렸다.

대단하십니다 큰 아버지.

하루도 빠지지 않은 그 열정에 엄지 척을 드립니다.


그리고는 또 전화가 왔다.


자꾸 이상한 이모티콘 보내지 말라고 하셨다.

나대지 말라는 뜻인가.

큰아빠의 독무대에 발 담그기 실패. 넌 그냥 가만히 앉아서 만 해. 주인공은 나야 둘이 될수없쒀.


숫자 1이 없어진 거 확인되는 걸로 이미 내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어르신과의 대화는 늘 어렵다.









+


오늘 아침에 받은 따끈따끈한 카톡

다들 월요일은 월래 웃는 날이니 웃으면서 신바람 나는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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