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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Apr 25. 2024

쓸'모'없는 남편과 '모'자란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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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대머리다.

아니, 아빠 is 대머리 (아빠=대머리)가 아니라 아빠 is becoming 대머리가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아빠 ----> 대머리) 사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아빠의 두발 상태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나에게 아빠는 '아빠' 그 자체다. 주름이 있든 없든, 키가 크든 작든, 나이가 적든 많든, 머리숱이 있든 없든, 나에게 아빠는 언제나 변함없이 어릴적부터 봐왔던 '아빠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우리가족은 아빠 머리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신기하게 아빠는 머리숱이 없는 거에 비해 미용실을 자주 간다. 아빠의 단골 미용실은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허름한 미장원인데 간판조차 눈에 잘 띄지 않는 이곳에서 아빠는 벌써 8년째 충성스러운 고객이 되어 있다. 나는 한 번도 그 미용실 안을 직접 본 적이 없지만, 아빠의 묘사에 따르면 손님은 대부분이 나이 든 남성분들이고 간혹 파마를 하러 오는 할머니들 몇 분 계신다고 한다. 시설도 상당히 오래되었고, 단골이 아니면 절대 들어가지 않을 만큼 촌스러운 분위기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꾸준히 미용실만 고집하는 이유는,  그곳 미용사와 오랜 시간 인연을 쌓아 굳이 설명 없이도 원하는 대로 착착 이발해주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일을 해주시는 분위기도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8년째 바뀌지 않는 커트 가격, 단돈 7천 원이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프렌차이저 커피 한잔이 7천 원인데 기술을 요하는 커트가 7천 원이니, 주머니 얇은 어르신들이 단골이 될만하다.


아빠는 붙어있는 머리카락이 많이 없어 커트 시간도 빠르다. 사실, 아빠 머리에는 머리카락이라는 개념보다는 짧고 굵은 털들이 살짝살짝 돋아나 있는 정도일 뿐이다. 자를 머리카락이 풍성한 것도 아니니... 굳이 오랜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다. 가 느끼는 바로는, 아빠가 이발하러 나가서 들어오는 속도와 엄마가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나오는 속도가 거의 비슷할 정도다.


아빠가 이발을 하러 갈 때마다, 엄마는 아빠가 머리를 자르러 가는 날은 미용사가 돈을 거저먹는 날이라 했다. 아빠는 사실상 미용 의자에 앉았다가 미용사 콧방귀 한번 쐬고 오는 거랑 진배없다고 비아냥대곤 한다. 엄마의 말은 과장이지만, 아빠의 얼마없는 머리숱과 숙달된 미용사의 빠른 손놀림 실력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되긴 한다 헷.



어느 더운 날이었다. 아빠가 계절에 맞게 머리를 쌈박하게 정리해야겠다고 미용실에 갔다. 15분쯤 지났을까? 아빠가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머리는 깔끔해진 것 같은데 아빠의 얼굴에는 평소와는 다른 뭔가 씁쓸한 표정이 감돌아 있었다. 아빠는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앞으로 그 미용실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엄마와 나는, 미용사가 실수로 머리를 잘못 자른 건지 아니면 아빠에게 기분 나쁜 농담을 했는지 걱정스러워 아빠에게 화가 난 이유를 물었다.


"아니 글쎄, 이발비를 6천 원만 달래잖아."


항상 7천 원을 낸 아빠가 6천 원만 주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미용실 커트 비용이 낮아진걸까 아니면 아빠가 올해 칠순을 맞이해서 노인 공경 이벤트로 가격을 저렴하게 해 주신걸까. 오히려 돈을 작게 내서 더 좋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아빠의 답변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앞에 먼저 깎은 사람은 백발노인이었는데  7천 원 받더라고. 왜 나만 6천 원 받냐고 물었더니, 미용사가 '아저씨는 머리카락이 적으니까 6천 원이면 충분해요'라고 하더라고. 이런 젠장."


대머리 할인이 적용됐나 보다.

 

미용사가 양심에 찔려 가위질 몇 번 하지 않은 아빠의 커트비용을 100% 받을 순 없었나 보다. 제 돈 주고 머리를 깎을 수 없는 아빠는 빠져나간 머리카락의 빈 공간만큼이나 헛헛한 마음이었고, 커트비용이 3천 원이 될 날이 조만간이라고 낄낄대는 엄마는 내가 봐도 참 얄미웠다.


공허한 아빠 머리 면적만큼이나 공허한 아빠의 눈빛.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가 없다.

천원 할인에 자존심이 상한 머머리 김씨 아저씨.





미용실 대머리 할인적용 사건 이후로 아빠가 달라졌다. 인터넷 검색창에 '머리 나는 법' '대머리 탈출법' '모발모발''머리가 안 나요'등 온갖 키워드를 검색하며 남아있는 희미한 머리카락을 지키고, 텅 빈 두피에 다시 모발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탈모예방에 좋은 음식을 검색한 뒤, 장날에서 볶은 검은콩을 한 봉지 가득 사 와서는 한입 가득 매일을 오물거렸다. 다행히 검은콩이 입맛에 맞았는지 검은콩 한 되를 몇일만에 먹어치우고는 장날마다 가서 또 검은콩을 한가득 사 왔다. 며칠 굶은 비둘기처럼 어찌나 검은콩을 쪼사먹던지. 영양제 털어먹듯 검은콩 알알이 쇼듕하게 삼키는 아부지. 벼락치기 탈모 예방법을 보고 있던 엄마는,


그 많은 검은콩을 먹어 머리카락이 자라게 하는 속도보다

검은콩에 본드를 발라 머리에 붙이고 다니는 게 더 머리숱이 많아 보이겠다

은장도보다 날카로운 말로 아빠 콩맛을 뚝 떨어드렸다.

저 ㅓㅓㅓㅓㅓ 놈의 여편네.

탈모의 원인이 스트레스라던데, 탈모의 99.999%는 당신이여.




엄마 탓인지 검은콩이 질렸는지 아빠는 또다시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두피 자극하기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에 의하면, 정수리를 빗으로 톡톡 두드리면 두피가 자극되어 모발이 다시 자란다는 무슨 심폐소생술과 비슷한 맥락의 유언비어를 접한 아빠는 "오호, 이거다!"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집에서 가장 두꺼운 빗을 찾아내 아빠는 망설임 없이 머리를 콩콩 두드렸다.


'자라나라 머리카락 용사들이여ㅕㅕㅕㅕ

어서 두피 불모지를 뚫고나와 함께 빛을 보자꾸나.'


아빠의 모습을 본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말렸지만, 아빠는 "머리카락만 다시 자란다면 백날천날이고 두드릴수 있다!"라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였다.


'두드려라, 그럼 (모발구멍이) 열릴것이다'의 간절함으로 아빠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빗으로 머리를 두드렸다. 그 모습이 꼭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는 것 같아 덩달아 내 마음도 경건해졌다.


며칠을 반복적으로 같은 자리를 두드리다 보니 아빠 두피가 살짝 빨개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카락이 자라는 고통은 아기를 낳는 고통과 비슷하지."라고 참으며 아빠는 꾸준히 실천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아빠의 머리에는 변화가 없었다. 아빠는 아무래도 빗이 얇아서 효과가 없는 것 같다고 엄마에게 두피가 자극될 만한 걸 찾아달라고 주문했다. 엄마도 아빠의 간절한 대머리탈출극에 감동을 받았는지 웬일로 비아냥대지 않고 아빠의 말대로 두피를 자극시킬 수 있는 물건을 대령했다.



"분주아부지,

이건 어때요?"

두피뿐만 아니라 전두엽도 자극될 것 같은데.

원래 농작물을 잘 키울라면 밭부터 골고루 골라야 되는거여. 

탈모 방지와 치매 예방이 동시에 되는 일타이피 개이득.


* 위 제품은 허벅지 롤러로 셀룰라이트 분해나 승모근 뭉친데 사용됩니다. 그 누구도 머리에 사용하는 걸 본 적이 없을뿐더러 머리에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용도와 다른 사용은 사고를 유발합니다.



아따 저게 뭐시여. 모발 대신 혹이 자랄것같은디.

저 ㅓㅓㅓㅓㅓ 놈의 여편네 또 시작이구만.



아빠는 엄마와 집에 사는 이상,

평생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날 것 같지 않다고 말하고는 문을 쾅 닫아버렸다. 닫힌 두피만큼이나  굳게 닫혀버린 곧 대머리 김씨.



아무래도

아빠의 탈모원인에 엄마의 지분이 99% 있음에 분명하다.










요즘 아빠의 최애 친구들.

자라나라 모발들이여!







※ 노트북 고장으로 글을 정상적으로 올리지 못한점 사과드립니다. / ('-')/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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