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남의 부탁을 거절하는 법을 모르신다. 누가 뭐든 부탁하면 척척 해결해주시는 모습이 보기는 좋지만, 가끔은 너무 착해서 속이 상할 때도 있다. 사실 나도 엄마를 닮아 남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엄마는 나를 뛰어넘는 경지에 도달하셨다. 남을 돕는 것이 삶의 목표인 양, 누구든 불러만 주면 달려가서 일을 해주신다. 심지어 몸이 아플 때도 예외는 아니다. 엄마의 호구스러움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엄마는 언젠가는 다 되돌아온다며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는, 무슨 정치인 선거 포스터 같은 말만 되풀이 한다. 그래서 그냥 엄마가 하고싶은데로 하게 놔둔다.
얼마전 사촌 이모가 밭일 좀 도와달라는 전화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절로 한숨을 쉬었다. 엄마는 관절염으로 고생 중인데, 밭일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급했기에 엄마에게까지 손을 벌렸을까? 사실 이모는 엄마에게 각별한 존재이다. 어릴때부터 친한것도 있지만, 매년 농작물을 듬뿍 가져다주시니 엄마는 그 은혜를 잊지 못하고, 몸이 아파도 이모의 부탁을 꼭 들어준다. 물론 엄마가 일한 만큼의 일당과 먹고 싶은 만큼 농작물을 가지고 갈수 있다.
이번에 일을 가서 새참으로 준 이모네 고구마가 맛있었는지 엄마는 연신 고구마 맛있다고 이모에게 말을 했다고 한다. 텁텁하고 맛없던 지난 고구마 경험 때문에 고구마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는데, 이모네 고구마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달콤함에 엄마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칭찬을 들은 이모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인심 좋게도 밭에서 마음껏 캐가라고 했다. 엄마는 일마치고 관절이 아픈지도 모른채 우리 가족이 먹을 만큼 열심히 캤다고 한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인 만큼 들고갈수 있다는 생각에 젖먹던 힘을 다 해 열심히 또 열심히 고구마를 캤다.
고
구
마
인간적으로 너무 많이 캤다. 이모네 밭에 심은 고구마를 다 캐온것 같다.
이 정도는 절도죄가 아닌가 의심이 된다.
이모가 이만큼이나 들고온거 아냐고 연신 되묻는 아빠를 보니 많아도 너무 많나보다. 나는 베란다에 널부러져 있는 많은 양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리강박이 있는 아빠는 공장장처럼 순식간에 크기별로 박스에 담았고 대,중 소 사이즈 대신 아빠 본인 만의 사이즈 작명을 지어냈다.
한입 사이즈
한끼 사이즈
흉기 사이즈
성화봉송 사이즈
농작물에 위협감을 느끼긴 처음이다.
올 겨울 내내 고구마만 먹게 생겼다. 이모가 엄마한테 일당 대신 고구마를 들고가라고 한게 아닌가 조용히 의심해본다. 그리고 왠지 이제부터 이모는 엄마에게 부탁을 안할것 같다. 5만원치 일해주고 50만원치 들고왔다.
엄마의 큰 그림인가.
다음날, 큰아버지가 홈쇼핑에서 맛있는 상품을 판매하기에 내 생각이 나서 주문하셨다고 문자를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