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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Feb 23. 2023

나는 연애 못하는 병이 있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맞선 남자들을 보내고,

세 번째 남자는 잘생긴 연예인 닮았다는 엄마의 말에 한번 속는 셈 치고 맞선을 오케이 해버렸다.


엄마의 친구의 남편의 지인의 아들로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는 그는 나보다 4살이 많은 남자였다. 그는 프로필 사진으로 외제자동차 핸들 로고샷으로 설정해 뒀는데 이미 나는 그의 사진에서 허세충 냄새를 맡았다. 틈만 나면 내 얼굴이 보고 싶다고 사진을 보여달라 은근 요구했고 그의 무례함에 약속을 파투내고 싶은 욕구가 목젖을 계속 첬지만 얼마나 잘생겼는지 두고 보자 싶은 마음으로 일단은 참았다.


그는 본인 일이 바빠 늦게 간단하게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느낌상 내가 마음에 들면 2차로 술집이나 음식점을 가고 별로면 차만 한잔 마시고 바로 쌩깔 수 있는 어중간한 시간에 약속을 잡는 듯했다.


커피솝 밖에서 기다리는 그를 딱 보는 순간 어른의 안목과 나의 안목이 매우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미소년 차은우를 기대한 내 눈앞에 (...나도 미쳤네) 눈이 부리부리한 젊은 날의 이만기가 떡하니 서있었다.

-남

당신을 보쌈하러 왔습니다. 


아뿔싸 이만기도 연예인이지 ㅆ발. 누가 봐도 '나 잘 나가는 사업가로 예쁜 여자들만 좋아요 구독 알람 설정 부탁해요'의 젊게 살려고 노력하는 아저씨 느낌이 폴폴 났다.




물론 그도 내가 성에 차지 않았겠지. 그쪽도 속아 박보영을 기대했는데 박완규가 나왔으니 얼마나 빡쳤을까. 우린 서로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매너를 지키며 기본적인 인포메이션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점점 그는 나에게 예전에는 뭐 했냐 무슨 일들을 했냐 연애 많이 해봤냐 돈 많이 모으셨냐 등 나의 과거와 통장내역을 범인 취조하듯 따발총으로 물어댔다.


자기는 코로나 전 마지막으로 프랑스로 한달 휴가를 다녀왔는데 굉장히 좋았다는 식으로 옆동네 놀러 가듯 해외여행를 자주 갈수있는 본인의 재력을 과시했다.


"뭐-, 프랑스도 괜찮았고, 일주일 휴가내서 갔다 온 하와이도 좋았슴돠. 1년에 한 번은 꼭 해외로 나가는데 저를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투자합돠. 돈은 금방 또 벌면 되니까요. 코로나 풀리면 바로 괌으로 나갈까 생각중임돠"

쫘-잔 나 이런 놤좌야.

나란 남자 멋진 남자.


응 그래. 좋겠다 넌.

그의 이야기에 리액션만 해주다가 나보고 외국에 나가본 적 있는지 넌지시 물어봤고 해외여행 다녀온 게 큰 뭐라도 되는 듯이 잘난척하는 게 꼴뵈기 싫고 처음부터 끝까지 잘나가는척 우쭐대는 게 싫어서 다시 안 볼 마음으로 나의 해외경험을 1절에서 200절까지 줄줄 읊어줄까 싶기도 했지만 시간낭비 하는 것 같아 그냥 무난하게 살아서 특별히 이야기 해줄게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나보고 너무 재미없는 삶을 사신게 아니냐면서 껄껄거렸다.


니를 만난 이 순간이 제일 노잼 순간이야 이 새꺄. 셧더마우스. 

...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친구에게 딸 잘못 키웠다고 미안하다고 두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게 될 순간을 상상하니 죄책감에 혓끝까지 나온 말을 그냥 삼켰다.


점점 그 남자에게 정내미가 떨어져 나갈때쯤, 이쯤되면 매너의 1시간을 채웠다싶어 시간을 확인하려는데 핸드폰을 대놓고 보면 안될것같았다. 마침 그 남자가 시계를 차고 있길래 티나지 않게 슬쩍 보려는데 그가 갑자기,


"예-예 맞습니다. 삼성 와치입니다."

응?????

난데스까?


가만, 내가 물어봤었나.

너무 당당하고 뜬금없는 그의 삼성 고백에 말문이 막혔다. 그러면서 그는 본인의 삼성와치가 대단한 천연기념물이라도 되는것처럼 다른 한손으로 시계를 쓰담았다. 어디 감히 삼성 이재용도 안하는 드립을 하다니.


그의 허세 가득한 이야기를 재밌는 척 들어주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장소를 옮겨 사케 한잔 하자고 했다. 이미 충분히 나는 엄마의, 친구의, 남편의, 지인의 체면을 생각에 할 만큼 했다는 생각에 다음날 일찍 유기견 봉사활동 약속이 있다 하고 다음에 한 잔해요 거짓말하고 헤어졌고 집에 가는길에 그 남자 번호를 차단했다.




마지막 맞선으로 엄마 친한 친구의 아들이 나왔다. 이모는 내가 외국에 있을 때부터 본인 아들의 짝으로 나를 소개해주고 싶다고 엄마한테 자리를 마련해 달라 계속 졸랐다고 한다.


는 자동차회사에 다시는 3살 연상으로 이모 만큼이나 괜찮은 사람이었다 다만 너어어어무 긍정적이고 파이팅스러워서 '이 남자 뭐지?'싶은 생각이 자주 들었다. 취미도 비슷하고 나쁘진 않았는데 이상하게 상황에 맞지 않는 긍정적인 파이팅을 자꾸 말해 서서히 질려갔다.


" 분주씨 내일 뭐 하실 계획이세요?."

" 저 내일 친구랑 선풍기 사러 가려고요."

" 아... 바쁘시구나 에어컨 보다는 선풍기의 서늘한 바람이 . 좋은걸로 고르시길 바래요 파이팅."

"....(응?) 네 감사합니다 ."


" 일은 할 만하세요.?"

" 힘든 부분도 있고 보람되기도 하고 그래요. 저랑은 잘 맞는 것 같아요."

" 역시 아이들을 상대하는 게 쉽지 않죠. 하지만 그러면서 분주씨가 성장하는게 아닐까요  파이팅."

"....(뭐지?) 네 감사합니다."


" 그쪽은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 앗 저는 웬만한 건 다 좋아합니다. 요즘 마라탕에 꽂혀서 1일 1 마라탕 하고 있죠."

" 아 저 아직 마라탕 안 먹어봤는데, 한번 먹어봐야겠어요."

" 고기 듬뿍 넣으면 더 맛있어요. 좋아하실거예요. 파이팅."

".... (그..그만해) 네 감사합니다."


ㅆ발. 뭐 말만 하면 파이팅이래. 대화 도중에 화장실이 가고 싶었으나 화장실 갔다 온다고 하면 또 파이팅 할 것 같아서 꾹 참았다. 대화의 반절은 이미 파이팅으로 도배됐고 이쯤이면 파이팅 틱 증상이 있나 의심이 들기도 했다.


파이팅 넘치는 건 좋지만 저렇게 정말 입으로 파이팅 하는 건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물론 그 사람이 좋았으면 파이팅도 좋게 들렸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의 파이팅을 감싸주기엔 아량이 넓지 못했다.


1시간가량 이야기를 하고, 파이팅요정이 집까지 태워준다는 거 부담스러워 정중히 거절했다. 왠지 다음 약속을 잡을 것 같은 분위기에 이거마저 거절해야 하나, 한 번 더 만나봐야 하나 싶은 선택의 기로에 서있게 됐을 때, 지금 이 순간부터 이 남자가 앞으로 파이팅을 3번 이상 말하게 되면 이 남자도 차단해 버리자는 마음으로 속으로 카운트 준비를 했다.


" 저는 저기 정류장에서 버스 타고 가면 돼요."

" 아 제가 태워드려야 되는데 분주씨가 부담되실 것 같으니.. "

" (오 웬일, 파이팅 안 했어) 버스 타고 가면 쭉 직진이라 이게 더 빨라요."

" 아... 그렇구나.. 버스가 더 빠르겠구나... 파이팅."

"... 네 (두 번 남았다)"


먼저 집에 도착해서 씻고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그에게서 문자가 아닌 전화가 왔다.


" 분주씨, 집에 잘 도착하셨나요? 오늘 즐거웠습니다. "

" 네 아까 도착했어요 저도 즐거웠습니다. 집에 도착하셨나요?"

" 네 지금 막 도착해서 전화드렸습니다. 피곤하시죠?"

" 아니요.. 어차피 내일 늦은 오후 약속이라 늦잠 자면 돼요."

" 그러시구나, 파이팅."

"... 네 감사합니다. (파이팅 총알 한발 남았습니다)

" 일단 씻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이 남자가 왜 자꾸 파이팅 거리나 생각을 해보니 대화하는 게 어색해서 그런 건지, 상황이 민망해서 그런 건지 도저히 그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민이 깊어가고 있던 차에 파이팅요정에게서 문자가 왔다.


" 늦은 시간이라 메시지 보냅니다. 오늘 피곤하셨을 텐데 나와주셔서 감사하고 다음에 또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 네 시간 봐서 한번 봬요."

" 어서 주무시고요. 또 연락하겠습니다 파이팅."

".... 예에- 파이팅"



어이쿠 이런, 엄마 친구의 아들, 연쇄 파이팅마여, 

사요나라.


결코 긍정적이지 못한 파이팅은 나에게 짜증을 유발했고, 엄마에게는 파이팅요정이 이성같이 느껴지지 않고 성격이 안 맞는 것 같다고 이모한테 미안하다고 전달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마음에 들어했다. 이모는 엄마를 통해 나를 꼬셔달라 부탁했으나 나의 확고한 고집에 엄마도 중간에 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눈치만 봤다. 마음에도 없는 사람을 몇 차례 더 만나본다고 없던 감정이 생길일은 만무하니까.


더군다나 앞으로 몇 번 만나면 귀에 파이팅 귀딱지가 내려앉을것 같아 도저히 못만날것 같다고 확실하게 엄마에게 선을 그었고 본인의 아들이 까인 것에 대해 존심이 상했는지 이모도 서서히 엄마와의 연락을 줄여갔다. 그렇게 엄마는 나 때문에 50년 지기 친구와 멀어졌다. 



이모도 사요나라.



그렇게 나는 맞선남들의 단점만 쏙쏙 골라 확대해석한 뒤 원샷원킬로 번호를 차단해갔다. 어쩜 상대방을 거절할 적당한 이유를 찾아 차단할 변명들을 만든게 아닐까. 나는 역시 혼자가 편한가보다. 엄마 말대로 나이가 찰수록 점점 맞선자리가 줄어들텐데 정말 혼자 늙어죽을까봐 걱정은 되지만서도 여전히 연애는 먼 미래의 일 인것 같다.



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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