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런 날이었다.
그런데 누나가 오늘따라 안절부절 못하며 방과 거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뺑그이!"
"왜?"
"니 통닭 안 먹고 싶나?"
"통닭? 통닭이야 일 년 내내 먹고 싶지! 왜? 누나 돈 있나?"
"아니 없으니까 하는 소리지. 통닭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먹고 싶은데 무슨 좋은 방법 없겠나?"
난 머리를 요리조리 굴렸지만 도저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와! 좋은 방법 떠올랐다!"
누나가 갑자기 큰소리를 치더니 미친 사람처럼 막 웃으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난 막상 누나가 시킨 대로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려니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과연 나의 연기력이 엄마에게 잘 먹혀들지도 걱정되었다.
"엄마!"
"와?"
막상 엄마의 얼굴을 보니 웃음이 나려 했다. 난 코가 벌렁벌렁거리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
"내 아까 낮잠 잤는데 이상한 꿈 꿨다."
"뭐 꿨는데?"
"꿈에 용이 돼지를 물고 하늘로 날아 올라갔는데 용이 날다가 똥을 쌌다. 그 똥을 내가 다 맞는 꿈 꿨다."
난 웃지 않으려 입을 앙다물었다.
"뭐라꼬? 니 그게 참말이가?"
"어"
엄마는 내 집마련이 평생의 소원이라고 했다. 그래서 주택복권을 매주 사서 밀양도자기 커피잔 세트가 있는 찬장 구석에 사기그릇으로 덮어서 숨겨두었다. 누나가 그걸 노리고 시나리오를 짠 것이었다.
"하이고 무시라 무시라. 세상에 이 일을 우짜면 좋노. 니 그거 누구한테 말했나?"
"아니,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니 그 꿈 엄마한테 팔아라. 하이고 지갑 어디 갔노 지갑."
구두쇠 엄마가 놀랍게도 내게 만 원을 덜컥 주었다.
"엄마가 니 꿈 산 거다. 맞제? 내 분명히 니한테 돈줬데이!"
"우와 내 이걸로 누나랑 통닭 사 와도 되나?"
"하이고 되고 말고 니 돈인데 니가 쓰고 싶은데 써야지! 호호호"
누나와 나는 대문밖으로 나와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서 통닭집으로 달려갔다.
"페리카나 치킨이 찾아왔어요 정말 맛있는 치킨이 찾아왔어요 페리페리 페리카나!"
돌아온 일요일
엄마는 당첨금이 1억 5천만 원인 주택복권을 손에 꼭 쥐고 복권추첨 방송을 간절한 눈으로 보았다.
예쁜 누나들이 앞으로 나란히 자세로 뺑글뺑글 돌아가는 과녁 앞에 쭉 서 있었다.
"자, 모두 함께 준비하시고 쏘세요!"
복권추첨 방송 MC 아저씨가 외치자 누나들이 손에 쥐고 있던 버튼을 눌렀고 화살들이 일제히 과녁으로 날아가 '촤악!' 소리를 내며 꽂혔다.
"자, 조 단위입니다. 조 단위."
MC 아저씨가 말하니 조 단위 과녁 앞에 서 있던 누나가 과녁으로 걸아갔다. 흰 장갑을 낀 손으로 화살을 위로 들어 올려 숫자가 잘 보이도록 하면서 하얀 치아도 잘 보이도록 방긋 웃었다.
"자, 행운의 조 번호는 9조입니다. 9조!"
엄마의 등이 움찔했다.
복권을 보고 모니터를 번갈아 보더니 엄마는 모니터 앞으로 더 바짝 당겨 앉았다.
"자, 다음은 십만 자리입니다. 십만!"
누나가 내 뒤통수를 때렸다. 난 고개를 휙 돌려 누나를 노려보았다. 누나는 내게 조용하라고 검지를 입술에 대더니 손을 저으며 따라오라는 수신호를 했다.
누나와 나는 도둑고양이 두 마리처럼 살금살금 까치발로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일요일이 오기까지 엄마는 괜히 웃었고 괜히 콧노래를 불렀다. 내게 다정하게 말할 때마다 날 따뜻한 눈으로 볼 때마다 이것도 먹어보라고 밥 위에 맛있는 반찬을 올려줄 때마다
닭뼈가 목에 걸리는 기분이었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구나를 배웠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