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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Aug 21. 2023

토요일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소주요. 맥주요. 음식 왜 안 나와요? 족발 추가요! 와사비장 좀 주세요! 사장님 앞치마요."


"네, 소주는 뭘로 드릴까요? 카스. 테라. 켈리 있어요. 음식 나옵니다. 금방 나와요. 와사비 여기 있습니다. 앞치마는 몇 개나 드릴까요?"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배달의 민족 주문! 배달의 민족 주문! 요기요! 요기요 주문! 띠리링 쿠팡! 띠리링 쿠팡!"


손님들이 아우성치고 배달 주문도 아우성을 치던 토요일 저녁 피크 때였다.


"사장님 손님인데 전화 좀 받아보세요!"


"왜?"


"사장님 바꾸라고 하시는데요."


아...... 쌔에에에 하다. 왜 꼭 바쁠 때 하필이면.


"네,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여보세요!"


아...... 불길한 예감은 역시나다. 여보세요에 여의 악센트와 억양만 들어도 전해져 오는 컴플레인의 진한 향기가 내 콧속 아니 내 귓속을 후벼 팠다.


"네, 말씀하세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네."


"아이고 죄송합니다. 혹시 어떤 문제일까요?"


"쌈야채가 안 왔는데요."


"아이고 정말 죄송합니다. 주소가 어떻게 되시나요?"

(난 제발 배달요금 기본 4000원 지역이길 기도했다. 자칫 8000원 지역이면 쌈야채를 포장 중에 직원이 실수로 빼먹은 죄로 수익은커녕 그냥 무료 음식 제공 자원봉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땡땡 아파트고요. 땡땡동. 땡땡호요."


"잠시만요... 배달 목록이... 어디... 보자... 아, 네. 확인했습니다. 아이고 정말 죄송합니다. 쌈야채 금방 보내드릴게요."


"네? 쌈야채를 보내준다고요?"


"네."


"잠깐만요. 엄마!"


다소 어려 보이는 목소리의 여자 손님은 갑가지 엄마를 외쳤다. 그러자 멀리서 점점 수화기 가까이로 다가오며 볼륨을 높여가는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왜? 뭐라는데? 인터넷에 다 올린다고 해라. 리뷰에도 다 쓴다고 해라? 왜? 뭐라는데?"


수화기로 그녀의 엄마인 듯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쌈야채 보내준다는데 엄마 쌈야채 먹을 거가?"


"뭐라고? 쌈야채만 보내준다고?"


", 잠시만 다시 물어볼게..... 여보세요?"


"네."


"아니, 쌈야채만 보낼 거예요?"


"네, 쌈야채를 빼먹었으니까. 쌈야채를 보내드려야죠."


"참내, 아니... 지금 쌈야채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고객이 주문을 했는데 불만족스러워서 지금 화가 났잖아요. 고객이 화가 난 상태면 거기에 따른 매뉴얼이 있을 거잖아요. 그 가게는 그런 매뉴얼도 없이 장사하시는 거예요?"


난 내가 조치를 잘못 취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아니 쌈야채가 안 가서 쌈야채를 보내 드리겠다는데 그게 왜 잘못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혹시 족발은 다 먹어가는데 쌈야채는 이제 따로 필요 없다 뭐 그런 말인가 싶어서 배달완료 시간을 보니 아니었다. 지금 막 음식이 도착한 시간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손님들은 띵동 띵동! 배달주문도 띵동 띵동! 정신이 없는데 마침 계산을 하러 카운터로 손님 한 분도 오셨다. 난 직원에게 손님 계산을 도와드리라고 눈짓으로 신호를 했다.


"왜? 뭐라카는데? 리뷰에 전부 다 쓴다고 똑똑히 말했나.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데?"


수화기 너머로 또다시 그녀 어머니의 목소리 들려왔다.


"저기요. 우리 소주 5개 맥주 3개 먹었는데 계산이 이게 맞아요?"


카운터에서 계산중인 중년 남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직원에게 대뜸 짜증을 냈다.


"네? 아, 소주 5개 맥주 3개에 족발 해서... 79000원이니까. 네, 계산 다 맞는데요. 영수증 드릴까요?"


직원이 차근차근 말했다.


"다 맞다고요? 왜 그렇지? 계산이 안 맞는데...... 혹시 술이 얼만데요?"


"한 병에 5000천 원씩입니다."


"에이, 그러니 계산이 틀리는구나. 근데 무슨 술 한 병이 오천 원씩이나 합니까. 저기 저 골목에 국밥집은 4000원인데......"


나와 손님의 눈이 딱 마주쳐 버렸다.


"거기가 사장이오?"


"아, 네......"


"술값 이래 받으면 손님 다 떨어진다. 무슨 술 한 병에 오천 원씩이나 받노."


"아, 네. 근데 이 근처 가게들은 다 5천 원씩 받은 지 좀 됐는데요."


"아니, 여기 골목 위에 가면 국밥집 있는데 사장님도 알 건데 여기 한 블록 위에......"


난 눈은 중년 남성을 보고 있었지만 귀는 전화기에 집중된 상태라 중년이 뭐라고 하는지 귀담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충 다 짐작이 가는 내용이라 죄송한 표정을 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난 중년 남성에게 눈짓으로 전화 때문에 지금 곤란하다는 듯이 찡긋거리며 가볍게 목례를 하면서 무언의 양해를 구했다.


"네, 제가 그 화나신 거 충분히 알겠고요. 그러면 저희 가게 측에서 어떻게 조치를 좀 취해 드리면 화가 좀 풀리실까요?"


난 지금 이런 주문 피크 시간에 자칫 응대를 불손하게 해서 리뷰에 쌈야채와 상관도 없이 족발에서 냄새가 난다. 맛없다. 족발을 먹었더니 배가 살살 아프다. 그래서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중이다. 뭐 이런 리뷰가 달리기라도 하면 당장 주문수가 뚝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또 이런 경험을 실제로 당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손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장사하는 사람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걸 우리 입으로 일일이 말해야 돼요? 아니 무슨 고객 컴플레인에 따른 매뉴얼도 없이 장사를 하세요? 리뷰에 전부 다 쓸까요? 다 쓰기 전에 알아서 좀 조치하세요!"


알아서라... 내 머릿속에 띵동 띵동! 띵동 띵동! 여러 개의 벨들이 혼란스럽게 울리는 듯했다.


"사장님요! 화장실 비번 뭔데. 문이 안 열린다. 에이씨, 오줌 마려워 죽겠구만. 빨리 가서 화장실 문 좀 열어주소."


상가 화장실 도어록을 잘 열지 못하는 어르신 고객들이 가끔씩 있기는 한데 왜 하필 꼭 이렇게 정신없을 때......라는 생각이 또 들었다.


"손님, 7000번요. 7000번 누르시면 열립니다."


"내가 분명히 그렇게 몇 번이나 눌렸는데도 안 된다니까. 아따마 진짜로!"


"잠시만요. 잠시만."


난 다시 수화기에 귀를 기울였다.


"저기요. 가게가 지금 바쁜 거 같은데 그래도 지금 손님이 항의를 하면 전화에 집중하셔야지 도대체 뭐 하자는 거죠?"


"아이고 죄송합니다. 지금 손님이 뭘 물어봐서요."


"저기요. 환불까지는 됐고 오늘 먹은 메뉴 그대로 구성품 제대로 다 챙겨서 다음에 다시 한 번 더 보내세요. 일단 오늘은 넘어가겠어요."


쌈야채가 안 간 것에 따른 컴플레인의 조치로 손님은 음식을 무상으로 한 번 더 제공받겠다고 했다. 순간 한숨이 새어 나오려는 걸 난 간신히 참았다. 그 한숨을 들은 고객의 여파는 가게에 꽤나 큰 피해로 다가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눈앞에 어르신 고객이 오줌 마려워 죽겠단 표정으로 날 노려 보고 있었다. 띵동! 띵동! 또 벨이 울렸다. 직원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손님들은 술을 마시면서 웃으며 잔을 부딪히고 어떤 손님은 족발뼈를 들고서 신나게 뜯고 있었다. 모든 장면에 순간적으로 슬로우가 걸리면서 이 가게에 나만 혼자 일시정지가 되어진공상태의 공중에 붕 뜬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얼른 정신을 차렸다. 고객과 계속 이야기하는 건 싸우자는 소리밖에 안 되겠고 빨리 매듭을 지어야 바쁜 다음 일들이 원활해질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문 전에 미리 알려주시면 그렇......"


뚜뚜뚜뚜......


난 수화기를 귀에서 뗐다가 다시 붙였다가 다시 떼면서 수화기를 멍하니 보았다. 고객은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화장실 문 좀 열어라니까!"


"아이고 맞다. 죄송합니다. 저랑 얼른 같이 가시죠."


난 어르신 손님과 복도를 걸었다. 뒤따르는 어르신 손님은 자기 집 도어록 얘기를 중얼중얼하면서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걸 자꾸 어필하시는 중이셨다.


"띠리리릭"


화장실에 칠 천 번을 누르고 도어록 커버를 내리자 잠금해제 멜로디가 났다.


"에잇! 칠천 번을 누르고 덮개 내리라고는 말 안 했잖아! 난 그것도 모르고 한 번은 별표 누르고 한 번은 이거 눌러보고 혼자서 오줌 마려워 죽겠는데 생쇼를 하고 있었네. 에이 참말로! 저리 비켜요!"


어르신은 손가락으로 # 버튼을 가리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은 볼 일이 급한지 오징어처럼 몸을 꼬면서 날 한 번 쏘아보고는 이주일처럼 걸으며 얼른 화장실로 들어갔다. 난 아이고 숨을 몰아쉬고 다시 불구덩이 같은 가게로 들어가는 한 마리 불나방처럼 가녀린 날갯짓을 하며 복도를 유유히 비행했다. 복도 끝 기역자로 꺾인 부분을 돌아서면 시공간이 순간 이동해서 내  매트리스가 나타나고 그 위에 우리 집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고 나를 반겨주었으면 좋겠다는 쓸데없는 상상을 했다.


팔뚝으로 이마를 덮고 조금만 누워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요즘 장사는 좀 어떠냐고 엄마가 물어서 진상 손님들 때문에 못해 먹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하이고 세상이 어디 다 내 마음 같겠나. 별난 손님들도 있고 속 썩이는 손님들도 있고 그런 거지. 자고로 가게는 잔도 깨지고 싸우고 시끌시끌해야 된다. 썰렁해가지고 손님이고 뭐고 개미 한 마리도 없어봐라. 그때 되면 그 별나고 속 썩이던 손님들도 하나하나 다 아쉬워지는 거라. 일단 누가 찾아준다는 게 고마운 거다. 그래도 손님은 손님이다. 내가 억울하고 분해도 죄송합니다 하고 내가 백 번 옳아도 손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고 죄송합니다 하면 화내던 손님들도 돌아서서는 미안해진다. 그러면 어디 가서 가게 얘기 나오면 그래도 거기 사장 착하더라 친절하더라 뒷말은 안 하지. 내 성질대로 하고 내 기분대로 하면은 뒷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 없는 말도 지어낸다니까. 하이고 그 집 사장 하는 짓이 여우라더라. 손님들한테 꼬리 살살 치면서 하는 짓이 얄궂다더라. 하이고 알고 보니 어디 숨겨놓은 애가 있다더라. 그 끼가 어디 가나. 이래 없는 말도 생긴다니까. 그러니까 장사하러 가게에 갈 때는 간이고 쓸개고 잠시 집에 두고 간다. 그래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타. 나 죽었소 자존심 잠시 버리면 밤에 잘 때 발이라도 편하게 뻗고 자지 손님한테 큰소리치고 나면 밤에 찝집하니 발도 못 뻗고 잠도 올케 못 자는 거라. 장사돈은 개도 안 물어간다는 말이 왜 있겠노. 하이고 그러니 내가 니 커서 고생하기 싫으면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제? 와 엄마 시키는 대로 공부 열심히 안 하고 호호호. 하이고 마 꼬시다. 이제 정신이 좀 번쩍 드나? 어? 말해 봐라. 말해 봐라. 야가 말을 안 하노. 즈그 아빠랑 똑같노. 지 불리하면 말 딱 안 한데이 하이고 세상 사는데 남에 호주머니 돈 빼는 게 그래 쉬운 줄 알았디나. 니 장사 안 돼가지고 고생했던 거 한 번 생각해 봐라. 그때 생각하면 참...... 하이고 그때보단 지금이 훨씬 안 났나. 그래도 속 썩는 일 좀 생겨도 북적북적한 게 훨씬 더 안 났나. 그러니 함부로 손님한테 큰소리치지 마라. 알겠나. 음식만 맛있다고 다 음식 장사가 아닌 거다. 장사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나도 다 안다 나도 다 안다고! 됐고 밥이나 도! 빨리 묵고 또 가야 된다."


밥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맞다. 장사하는 사람에겐 손님 하나 없는 가게에 휑뎅그렁 앉아 있는 게 가장 큰 고문이다. 그보다 더한 고문은 없다. 좋은 손님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짓궂은 손님이 등장하더라도 당황하지 않아야겠다. 내가 손님에게 당장은 져 드리지만 그건 진 것이 아니라 훗날의 나에게 승리를 안겨줄 결과물로 돌아올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웃으면서 고개를 숙여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밥을 푹푹 퍼 먹었다.


그후 그 모녀 손님에게 무상으로 음식을 다시 제공하였다. 이런 일이 설마 있을까 싶지만 이런 일은 실제로 심심찮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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