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저모세모] 2022년 10월호
먹음직스러운 빨간 양념에 쫄깃쫄깃한 떡, 짭조름한 어묵. 순대, 튀김, 김밥, 라면 사리에 볶음밥까지, 매콤달콤한 양념에 안 어울리는 게 없는 마성의 음식 떡볶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좋아해 온 나의 소울푸드다.
떡볶이는 늘 나의 즐거움이었으나 본격적으로 떡볶이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때는 아마 초등학교 3학년. 엄마의 친구분은 일주일에 한 번 그분의 딸을 우리 집에 맡기셨다. 한 살 터울인 우리는 재미있게 놀곤 했다. 그러다 저물녘이 되어 그분이 딸을 데리러 오시면, 우리는 둘러앉아 함께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늘 그분이 좋아하시는 떡볶이였다. 그렇게 매주 먹게 된 떡볶이는 나의 혀에 각인되어, 없이는 못 사는 존재가 되었다. 그때 이후로 우리 집은 언제든 떡볶이를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항상 냉장고에 떡과 어묵을 구비해두었고, 더 이상 그분이 오시지 않아도 일주일에 한 번, 적어도 이주에 한 번은 떡볶이를 만들어 먹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입맛, 떡볶이. 요즘은 떡볶이라는 이름하에 맛과 스타일이 다양해졌다. 모든 떡볶이는 옳지만, 그중에서도 특정 떡볶이 맛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는 무엇인지, 나는 떡볶이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내 취향의 떡볶이를 찾아서!
떡볶이의 근간이 되는 재료, 떡과 어묵. 당신은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은근히 떡파와 어묵파로 나뉘어 물어보는 재미가 있다.
나의 경우 떡파인데, 양념이 잘 배어든 떡의 쫄깃쫄깃한 식감을 좋아한다. 이빨이 떡에 부드럽게 푹 들어갔다 쫀득하게 떨어지는 식감이 재미있다고 할까. 떡은 대개 한 번에 끊기지 않고 여러 번 씹어야 하는데, 떡의 말랑하면서도 두께감에서 오는 폭신함 때문에 씹는 맛이 있다.
그에 반해 어묵의 식감은 좀 재미없다. 보통 떡볶이에 들어가는 판판한 어묵은 두께가 얇아 씹는 맛이 없다. 어묵을 씹을 때면 식감을 느낄 새도 없이 이빨끼리 금방 딱 부딪히고 마는데, 이빨에 가해지는 미미한 충격이 썩 유쾌하진 않다. 가끔 느껴지는 어묵의 뽀드득함도 스펀지 같다. 소스에 퉁퉁 불어버리기까지 하면 아무런 저항 없이 흐물텅하게 씹히는 어묵은 식감에 있어 내게 아무런 흥미를 주지 못한다. 특히 떡볶이에 들어가는 어묵은 떡볶이 소스에 어묵 본연의 맛이 가려져 아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떡볶이에 어묵이 빠지면 섭섭하다. 떡을 계속 먹다 보면 물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떡 자체에 큰 맛이 있는 게 아니라서 양념을 싹 걷어내고 나면 맛이 별로 없다. 또 가끔은 떡 특유의 비린내랄지 밀가루 냄새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중간중간 어묵을 먹어줘야 한다. 떡에서는 씹는 맛을, 어묵에서는 잘 배어든 양념의 맛을 번갈아 가며 느끼다 보면 한 그릇 뚝-딱! 떡이 좋은 것도 어묵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
얇고 긴 떡, 적당한 길이의 통통한 떡, 짤동한 마름모꼴 떡. 다양한 떡의 모양은 그 떡볶이의 특징이 될 뿐만 아니라, 모양으로 쌀떡과 밀떡을 짐작할 수 있다. 쌀떡과 밀떡을 가리지 않지만, 밀떡을 떡볶이 양념의 케첩 맛 만큼 더 좋아한다.
쫄깃하고 쫀득한 식감의 쌀떡. 가끔은 쫜-득하기까지 하다. 밀도가 높은 쌀떡은 가끔 씹기 힘들고 양념이 잘 배지 않아 아쉽다. 그에 반해 밀떡은 식감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적당히 쫄깃하다. 밀떡이 입안에 들어오면 양념의 촉촉함과 밀떡의 야들야들함이 느껴지면서, 씹을 때면 떡의 말랑말랑함을 거쳐 쫄깃함을 느낄 수 있다. 씹는 느낌 또한 한층 가볍다. 쌀떡이 단단한 쫄깃함이라면 밀떡은 부드러운 쫄깃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금은 미끄덩하다. 기분 나쁜 미끄러움은 아니고 미끄럼틀 같은 즐거운 미끄러움이다. 미끌미끌한 밀떡은 은근슬쩍 이빨을 피해 다니는데, 그렇다고 안 씹힐 정도는 아니다. 결국은 항상 이빨에 손쉽게 잡혀주며, 그저 양념을 입안 여기저기에 퍼뜨릴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양념이 안까지 잘 배어있다. 이러한 이유로 밀떡을 아주 조금 더 좋아하지만, 모든 떡볶이 떡들이여 내게로 오라!
떡볶이의 짝꿍은 순대일까 튀김일까? 일단 내가 아는 냠냠학교의 분식반 떡볶이 학생의 짝꿍은 순대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은 떡볶이를 순대와 함께 먹어와서 그렇다. 입안에서 굴러다니며 터져 나오는 당면과 쫄깃하면서 간간한 돼지의 맛을 좋아한다.
순대가 떡볶이의 옆자리라면 튀김은 떡볶이의 뒷자리라고 할 수 있다. 자주 뒤돌아보긴 하지만 가격 때문에 다시 앞을 봐야 한다. 같은 가격이면 튀김은 몇 조각인 반면 순대는 한 접시기 때문에 어린 내 눈에 순대가 훨씬 합리적이어 보였다. 게다가 모둠 튀김에는 내가 선호하지 않는 튀김이 섞여 있다. 눅눅해진 김말이와 질깃질깃한 오징어, 가공품 특유의 맛이 물씬 나는 속이 별로 없는 만두까지. 그렇다고 새우, 단호박, 고구마튀김을 단품으로 시키기에는 비싸다. 또 튀김을 떡볶이와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밀당을 잘해야 한다. 떡볶이 국물에 튀김을 너무 짧게 담그면 떡볶이 양념 맛이 금방 사라지고, 그렇다고 양념을 골고루 묻히느라 너무 오래 담그면 튀김옷이 눅눅해져 버린다. 바삭함과 양념의 맛을 동시에 취하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런 면에서 떡볶이 국물에는 튀김보다 순대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순대는 떡볶이 국물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매콤한 국물로 인해 돼지 잡내는 가려지고, 순대의 맛이 극대화되는 면에서 떡볶이와 순대는 환상의 짝꿍인 것 같다. 뭐 내가 아는 냠냠학교 분식반의 경우가 그렇다는 거고, 각자가 아는 분식반의 상황은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떡볶이라는 이름을 공유하고 있지만 어디서 파느냐에 따라 그 맛은 천차만별이다.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나의 최애는 학교 앞 분식집 떡볶이. 내 머릿속 떡볶이의 원형이자 고향이다. 하굣길 500원짜리 컵볶이를 들고 친구와 재잘거리며 걷던 즐거움을 잊을 수 없다. 최근 이 글을 쓰기 위해 학교 앞 분식집을 찾았다. 아쉽게도 어린 시절 먹던 분식집은 없어진 지 오래라 친구네 학교 앞 분식집을 방문했다. 처음 간 곳인데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먹던 떡볶이와 동일한 맛이 났다. 분식집마다 조리법도, 비율도 다를 텐데 어떻게 이렇게 똑같은 맛이 날 수 있는지 신기했다.
추억을 더듬어, 그리고 최근 방문한 기억을 살려 분식집 떡볶이에 대해 논해보자면, 분식집 떡볶이는 맵지 않고 달짝지근하다. 케첩 맛이 느껴지기도 한다. 초등학생을 상대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주 잘 졸여져 양념이 쫀쫀하다. 내가 분식집 떡볶이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인데, 이 졸인 맛을 이길 자가 없다. 졸이고 졸아 양념이 잘 배어든 떡에 추억 한 스푼이면 내게 최고의 떡볶이가 된다.
자극적이고 비싸지만 당기는 날이 꼭 있는 프랜차이즈 떡볶이. 떡볶이 가격을 올려놓은 장본인으로 조금 원망스럽지만 맛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프랜차이즈 떡볶이는 보통 MSG가 가득가득한 맛이라 자주 먹긴 질리지만 가끔 강렬히 원하게 된다. 아쉽게도 주변에 프랜차이즈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고,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아 잘 먹진 못한다. 로제 떡볶이, 크림 떡볶이, 마라 떡볶이 등 떡볶이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점을 응원한다.
어린 시절 친구들의 ‘떡볶이 먹자’라는 말의 떡볶이가 즉석 떡볶이를 가리키는 걸 깨달을 때면 항상 실망하곤 했다. 즉석 떡볶이의 맛과 분식점 떡볶이의 맛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조리 시간과 재료에서 온다. 즉석 떡볶이는 끽해야 15분 정도 졸여지기 때문에 국물이 묽고, 다 먹을 때쯤 돼서야 내가 좋아하는 농도가 된다. 각종 채소에서 나오는 물 때문에 졸여지는 시간은 더욱더 오래 걸린다. 어린 나에게 떡볶이가 졸여지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양념이 안배인 떡볶이를 먹기 일쑤였다. 그래도 즉석 떡볶이집의 묘미는 볶음밥 아니겠는가! 송송 썬 김치 넣고 김 가루 솔솔 뿌려 참기름 휘휘 둘러 볶은 뒤, 눌어붙은 볶음밥까지 긁어 먹고 나면 배도 빵빵 마음도 뿌듯하다.
편의점 떡볶이 또한 자주 실망하는 떡볶이 중 하나이다. ‘이 제품 맛있대’라는 소문에 속아 몇 번 사 먹어봤지만 언제나 결론은 한결같았다. 편의점 떡볶이의 떡에서는 가공품 향과 특유의 신맛이 나고, 떡볶이를 졸이지 않아 떡과 양념이 따로 논다. 하지만 해외여행 중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편의점 떡볶이만큼 고마운 게 없다. 비상식량으로 가져간 편의점 떡볶이로 떡볶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 게 몇 번이던가!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한국을 나선 순간 이것만큼 고마운 녀석이 없다.
대망의 집 떡볶이! 날 떡볶이에 중독시킨 장본인! 하지만 놀랍게도 어린 시절의 나는 집 떡볶이의 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떡에 양념이 충분히 배어있지 않을뿐더러 아무런 조미료도 넣지 않은 정직한 맛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파는 떡볶이 보다 집 떡볶이가 당기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집 떡볶이의 매력은 비교적 건강함과 커스터마이징 아닐까. 매운 게 먹고 싶은 날은 고추장을 조금 더, 달달하게 먹고 싶은 날은 올리고당 반 바퀴 더, 부드럽게 먹고 싶은 날은 모차렐라 치즈 추가, 건강하게 먹고 싶은 날은 각종 채소 추가. 이제는 조미료 하나 들어가지 않은 그 맛이 좋다.
이로써 떡볶이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생존을 위해 매일 영양을 섭취해야 하는 인간으로서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는 것은 인생의 큰 즐거움이자 축복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떡볶이를 좋아하는지, 좋아한다면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혹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떤 점을 안 좋아하는지, 그렇다면 어떤 음식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도.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이만 나름의 떡볶이학개론을 마친다.
해당 게시글은 2022년에 쓰인 글로,
네이버 블로그에 포스팅한 게시글을 브런치에 재업로드 한 것입니다.
2023년은 홀수 해를 맞이해 홀수달에 발행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