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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Nov 23. 2024

우리사이, 너와 나 사이에 놓이는 것

행간에 놓인 얘기들이 달라졌으니.


내가 애초에 그리고 싶었던 것은 관계의 파탄이나 단절의 순간이 아니라 어떤 관계가 꽃처럼 피었다가 결국 져버리는 과정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하자면 관계의 생로병사같은 것.

백수린 <시간의 궤적>에서 작가의말 중.



살면서 인간의 뇌는 쓸데없이 많은 감정을 느끼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초로 그걸 느낀 남편의 어머니, 그러니까 시어머니가 돌아겨셨을 때니까 2022년 겨울, 얼마되지 않은 일이다. 내가 40대에 접어들면서 느낀거고 그러므로 젊은 시절에는 알지 못했을 느낌이다. 슬프다, I am sad 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던 남편과, 그옆에서 감정의 전이와 확대, 변형과 축소를 지켜보는 나, 그 후로도 이따금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그와 나. 우리의 마음은 몇몇 어휘나 문장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것들이다. 곁에 없는 사람은 잊는 게 맞다. 뇌리에서도 지우는 게 인간의 진화와 생존에 유리할 것인데, 우리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추모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상념에 잠긴다. 이제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뇌가 시키는 일일지, 마음이 시키는 일일지 알 수 없지만 인간은 지나치게 많은 감정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을 무시로 한다.


https://brunch.co.kr/@inthegarden/54

(어머님의 이야기는 여기)




학창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과 같이 나이들어가며 인생의 노선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을 마주치게 됐다. 우리는 어리거나 젊었던 그 때, 같으면 같아서 친해질 수 있었고, 다르면 달라서 가까워질 수 있었다. 조건같은 게 있을 리 없었고, 동시에 세상을 향한 말랑하고 호기심어린 눈을 하고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 친해질 수 있었던 사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월은 붙잡을 수 없이 흐르는 거였고, 우리는 각자 자신앞의 길을 향해 걸어나갈 뿐이었으니 어디로 갈 지 어디까지 갈 지 아무도 몰랐다. 각기 다른 지역에 살게 되었고, 결혼을 하거나 비혼을 선택했고, 결혼을 유지하거나 이혼을 하기도 했으며, 사별을 하게 된 친구가 생겼고, 직장생활을 유지하거나 퇴직을 하기도 했다. 여러가지 선택이 뻗어나가는 과정은 마치 하나의 좁은 물길에서 동시에 출발했던 작은 배 여러척이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과정과도 같아서 수많은 우연과 경우의 수들로 겉잡을 수 없이 다른 물살을 타게 되었고, 그동안 우리 사이에는 차이라는게 생겼고, 이질적인 것들이 많이도 끼어들게 되었을 것이다.


한 친구가 최근 잠깐동안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지운 글을 내가 보고 말았다. 가끔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신의 평범한 안부를 나누는 지인들이 원망스럽고, 어쩔때는 대놓고 위로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밉다고 했다. 마지막에는 사람들이 이래도 싫고 저래도 미운데, 그들의 호의를 그렇게 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이 가장 싫다는 내용으로 글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친구는 얼마 뒤 글을 삭제했다.


우리는 아무도 겨냥하지 않은 말로도 충분히 누군가를 찌를 수 있으며, 반대로 내가 아무 무기도 들지 않은 무고한 이들에게 찔릴 수도 있는 게 아닐까 한다. 상황이 다르면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었다. 몇년 전 사별을 하고 아직까지도 그런 글을 썼다 지우며 매일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있을지 모를 친구에게 나는 그때도 지금도 양껏 힘껏 내 속마음을 전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다. 친구의 마음을 차마 짐작조차 하기 어려워 얕은 내 위로가 오히려 상처가 될까봐, 혹은 그래서 삼킨 내 말은 무관심으로 여길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고, 세 번 물을 안부를 한 번만 물었고, 두 번 건네고 싶은 인사를 망설이다가 못하기도 했다. 전해지지 못한 내 마음들이 그 친구에게는  어떻게 가 닿았을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동안 섭섭함, 아쉬움, 미안함, 애틋함, 그 이상의 알 수 없는 마음들이 한 데 엉킨 타래들이  우리사이에 놓였고, 이제 예전과 같을 수가 없어진 거였다. 관계가 예전같지 않아지는 데에 그렇게 꼭 큰 기점이나 사건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살다보니, 비혼으로 살아가는 친구에게 남편과의 일상을 털어놓거나, 아이를 낳지 않고 딩크로 살아가는 친구에게 아이사진을 전송하는 일상적인 일조차 무례가 될 수 있었다. 힘들어서 하소연하는 내 직장생활이 누군가에겐 질투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그저 평범하다고 여겨 오픈한 나와 남편의 연봉이 누군가에겐 생각보다 하찮기도, 누군가에겐 선망의 대상일 수 있는 거였다. 그런 일들은 어쩔 수 없이 각자 다른 상황에서 평범하게 일어났다. 그냥 각자의 이야기에는 서로 다른 행간이라는 게 생기게 마련이라 그런거였다. 그런 일들 앞에서 우리는 지나치게 복잡다난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이유로 우리사이는 백수린 작가가 말한대로 생로병사를 거듭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강남으로 이사를 오고 4년여가 흘렀다. 예전보다 타인과 세상을 향한 말랑하고 뽀얀 호기심은 줄었고, 나를 향한 외부의 시선에는 가시돋친 방패를 쥐게 된 나는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도 주저했고,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는 것도 경계했다. 늘 외로웠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외로움을 드러낼 수도, 그렇게 한다고해도 이제와서 누군가와 가까워질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 촘촘하게 쳐둔 마음의 그물사이로 들어와 나를 알아봐준 인연들이 몇 명 생겼다. 처음엔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고, 그래서 마음도 열지 않았다. ‘니들이 나에 대해 뭘 알아? 알고싶지도 않겠지만 알려주고 싶은 것도 없다.’ 하는 시건방진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따위가 뭐라고 그들의 가치를 내맘대로 재단해서는 안되었다. 나를 꽁꽁 싸매고,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았는데도 서로 얼굴을 맞댈만큼 가까이 마주보고 있을 확률은 얼마일까. 곱고 가는 체에 걸러진 인물들은 분명 귀한 인연일 것이었다. 멀어지는 데에 누군가의 잘못이 없듯, 가까워지는 데에도 누군가의 노력이 없었다. 노력이 없었다는 건, 억지로 끼워맞춘다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었음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우연히 알게 된 언니, 둘째 아이의 크고작은 유치원 일정과 행사를 깜빡깜빡하는 나에게 살갑게 말을 걸며 다가와준 둘째아이 친구의 엄마, 남편 친구의 아내라서 알게 되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더 가까워진 동갑내기 친구까지, 내가 멋대로 관계의 경중을 가늠하는 사이  내 옆에 이미 빗장을 활짝 열고 담백하게 나를 맞아준 이들이 있었다.


 어릴적부터 알고지내 나의 모든 허물과 과정을 알고 있는 친구들은 여전히 소중하다. 나에 대해 가장 많은 걸 알고 있고, 인생의 가장 고귀하고 반짝이는 시기를 함께 지나 친구들. 지금도 그 친구들을 만나면 당당한 한편 수줍고, 순진하면서도 용감했던 그때의 우리로 빠르게 돌아간다. 그녀들과 함께 보냈던 숱한 밤들과 그 밤에 우리가 나눠마신 술잔의 온도는 복기해내지 않아도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그때의 기억으로 각자의 인생을 헤쳐나가는 데 여념이 없는 지금의 그녀들을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옛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꿈꾸듯 들뜬 소녀였지만 현실로 돌아와선 선뜻 말을 보태거나 빼기를 주저했다. 꽤 긴 시간에 걸쳐 달라져버린 토양위에 각자 발을 딛고 서 있는 한, 옛날과 지금은 다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 같은 생각이라면 좋겠고, 변하지 않는 우정을 맹세하고싶지만 달라진 환경앞에 우리는 그저 쓸데없이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들일 뿐이다.




“언니, 우리사이에 뭘 그런 걸  미안해해.”


참 심플하다. 둘째 아이 유치원 하원시간에 데리러 가려다가 늦게 되었을 때, 둘째 친구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미안해하며 잠깐 둘째를 맡아줄 것을 부탁했더니 동생에게서 돌아온 대답이다. 그간 특별한 사연이나 계기, 알고지낸 긴 시간도 없었는데도 우리사이라고 선뜻 말해주는 그녀가 좋다. 고맙다. 그녀에게 우리사이라는 말을 들을 때, 나는 내가 그녀에게 베푸는 것에 대해서도 계산기를 끄게 된다. 방패를 걷고 얼굴을 드러내게 된다. 몇 번쯤은 밑져도 되는 관계, 내가 더 많이 줘도 아깝지 않은 관계, 그건 함께 지내온 시간과 비례하는 게 아니었다. 관계가 심플하다고 가벼운 건 아니라는 걸 이동네에서 차츰 알아가는 중이다. 옆에 좋은 사람들을 두는 법,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어디서든 유효하다는 생각을 하니 사람사는거 다 거기서 거기고 내가 이동네에 와서도 틀리진 않았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생긴다. 여전히 배워가고 있다고 믿는 요즘, 나에게 선뜻 다가와 가까워진 인연도 소중하다.


의리, 우정, 인지상정, 운명, 이런 것들이 인간관계의 전부라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시절인연’ 이라는 말을 제일 싫어했다. ‘손절’을 그럴싸한 말로 포장한 게 시절인연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노력하는데, 네가 이렇게 좋은 사람인데, 우리가 서로 마음이 통하는데, 평생 친구가 되어야지 시절인연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점점 나이들어가며 애써도 되지 않는 게 있다는 걸, 노력으로도 붙잡을 수 없는 게 존재한다는 걸, 칼이 없이도 서로 베고 베일 수 있다는 걸,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바로 그런거라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또 한편으로 노력없이도 가까워지는 관계가 있다는 걸, 애쓰지 않아도 내옆에 오게 되는 이들은 귀하고 또 귀하다는 걸, 지금 내옆에 있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배워간다.


쓸데없이 많은 감정을 지나치게 다양하게 느끼는 우리는 그 자체로 매우 모순적이며, 약하디 약한 존재들이다. 그렇게 감정에 휘둘리고 약한 인간에게 그래서 신은 복잡한 감정의 이면에 ‘망각’ 이라는 무기를 하나 더 두신 모양이다. 시절인연이란 그런 의미일 것이다. 당분간은 그저 시간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사이에서는 조금은 물러나서 관망해보는 것, 그래도 안될 때는 보내줄 줄 도 아는 것, 그러다가 돌아오게 되면 반갑게 맞이해주는 것, 마지막으로 지금 내 옆의 사람들에게 잘 하는 것. 그게 관계의 생로병사 안에서 감정에 취약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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