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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May 05. 2024

너의 외로움이 나를 부를때,

그때가 바로 달아날 때

결혼하고 싶은 상대와 연애를 하는 기간, 조상신은 우리가 알아차리든 그렇지 못하든 나를 보우하시고  온우주의 기운을 모아 도망칠 결정적인 기회를 주기도 하는데 사실 눈에 콩깍지가 씌이면 그걸 알아채지 못할 때가 많다. 인간이 굉장히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것 같지만 실상 인생을 살다보면 인간이 얼마나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존재인지 깨닫게 될 때가 있다. 수억짜리 집을 사거나, 입사후 매순간 가슴속에 한장쯤은 품고다녔던 사직서를 책상위에 냅다 던져버리는 순간 같은 큰 결정은, 그 크기가 커질수록  놀랍게도 무언가에 눈멀었을 때나 살짝 미쳐있을 때 하게된다. 결혼역시 그러하다. 경험상 그랬다. 가장 잘 살펴야하는 배우자의 면모를 등잔밑에서 놓치는 경우가 허다한데, 반드시 도망쳐야 하는 신호는 분명 있다.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얘기할 때, 가장 위험한 대답중 하나가 '외로워서' 라는 건 결혼을 하고나서야 알게된다. 해보고나서야 결혼안해도 외지만, 했어 외로운거라는 사실을 알게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혼자들이 다시 태어나면 결혼을 절대 안하겠다라든가, 혼자살고 싶다거나 너는 결혼하지말고 자유롭게 혼자살라고 하는 푸념들이 가진자의 여유가 아니라 사실 진심어린 조언이다.


본론으로 돌아가, 아가페적인 인류애와 에로스적인 연인간의 사랑을 구별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그 둘을 구별하지 못한다. 착한사람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만 그럴것 같지만 실은 누구나가 착각한다. 본인이 상대방의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을거라고 오해하고, 상대가 내 외로움을 나눠줄 수 있을거라고 오인한다. 연민이나 동정은 사랑이 아니다. 과거의 가정환경이나 성장과정때문에 현재에 결핍이 있거나 원초적인 외로움이 있는 사람과는 절대 그 사람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한 결혼 결심을 해서는 안된다.


보통 외로운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결혼하면 배우자와 모든 걸 같이하고 싶어하거나, 혼자 동굴로 숨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다. 취미생활도, 식사는 물론 운동과 산책 등 한몸처럼 움직이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어떻게 배우자와 취미생활과 대화, 생활방식을 공유하고 대화할 줄을 몰라 혼자 방으로 , 혹은 밖으로 침잠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본인 기분내킬때는 모든걸 같이 하고 싶어하다가 불화나 갈등이 생긴 순간 도망가 버리는, 그러니까 위의 케이스가 둘 다 있는 최악의 경우도 있다.


전자의 경우 연애시절에도 물론 모든 걸 같이 하자고 했을 것인데, 그 때는 둘이 같이 사랑에 눈멀고 불타 나도 거기에 동조했을 것이다. 일주일에 팔일을 만나고, 1년 365일중 370일을 붙어 있는데도 연애할 시간은 늘 모자라기만 했고 그래서  결혼을 결심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결혼생활이 시작되면 누구나 혼자 생각해보고 충전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가족이라서, 부부니까 공유해야 하는 부분과 한 인간이 독립적인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지켜져야 하는 존엄, (이라고까지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타인과 관계를 맺는 사회적인간으로 자리매김하기위해 반드시 필요한 혼자만의 영역과 충전시간)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의 외로움도 혼자있는 시간 속에서 컨트롤하고 잠재울 줄 알아야한다.

그런데 외로움을 다룰줄 모르고 혼자 해결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하니까, 내가 필요할 때 내 옆에 있어줘, 사랑하니까 내가 원할 때 이걸 해줘, 그래야 사랑하는거야. 이 무적의 논리를 사용한다. 사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너의 외로움을 채우는 도구로 나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고 그 외로움이라는 건 아무리 옆에서 챙겨주고 맞춰주고 돌봐줘도 채워지지 않는 밑빠진 독과도 같은데, 그 빌어먹을 무적의 논리 때문에 본인의 잘못이 무엇인지 이들은 모른다.


그렇다면, 동굴로 숨어드는 후자는 어떨 것인가. 이런 이들은 보통 연애때부터 상대와 함께 하고싶은 것이나 가고싶은 곳도 없고 해본 것이 없어 상대를 리드하거나 헌신하는 연애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집에서만 데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를 사랑하긴 하는데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공유해야하는지 모르고 딱히 취미도, 하고싶고 먹고싶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사람은 외롭고 고독해보인다는 그 이유로 이성에게 아가페적 사랑을 불러일으키거나, 어딘가 처연해보이는 그 부분때문에 매력적으로 상대에게 어필하게 된다. 문제는 이들도 그걸 바꾸고 싶은 마음과 의지가 전혀 없다는 데 있다.


외로움을 나에게 기생하면서 해결하려 하는가, 혼자 숨어서 외로움을 옴팡 뒤집어쓴 채 그저 있고싶어 하는가,  그 중간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정상적 외로움의 스펙트럼안에 있는 사람을 찾는 일, 물론 어렵다. 아주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점때문에, 그런 사람을 찾는 일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를 지치게 하는 외로움을 가진 사람을 반드시 걸러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원초적인 외로움을 가졌거나, 그 외로움을 혼자 해결할 줄 모르는 사람은 끊임없이 나를 어른스럽게 행동하도록 강요한다. 어른도 배우자 앞에서는, 부모 앞에서는 어린애가 되고 싶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다음으로 조건이 없다는 남녀간의 사랑은 내가 어떻게 굴어도 나를 바라봐주고 지지해주고 위해주는 사랑에 다름아니다. 하지만 외로운 배우자는 나에게 배우자, 애인, 부모, 친구, 아이들의 부모, 멘토 역할까지 바라기때문에 나는 늘 어른스러워야 하고, 혼자 놔두지 않는다는 점이나, 혼자만 놔둔다는 점 때문에 어린애가 될 여유를 허락되지 않는다. 그런 배우자와의 결혼생활은 늘 고달프고 서글프며, 정작 혼자서도 잘 지내던 내가 부칠 데 없이 점점 외로운 사람이 되어갈 수 있다.


먼저, 꾸준히 집에서‘만’ 데이트하길 원하는 사람, 무계획‘만’으로 데이트에 임하는 사람, 나한테 간절함이 없는 사람을 재껴라.

또 한편, 연애할 때 동성친구와 연락이 끊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인물들은 위험하다. 상대가 나아닌 다른 사람이나 생활에 몰두하는 것을 두고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이런 이들은 상대에게도 모든 주의와 관심을 본인에게 집중하도록 강요한다.

마지막으로 아무런 취미도,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흥미도 없는 건조한 인간도 피해라. 이런 이들은 원초적으로 외로운 사람이라서 본인이 외롭다는 사실조차 모르며 사랑을 누군가와 나눌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혼자서도 잘 살고 잘 지내는 사람이 결혼해서도 잘 산다. 상대의 외로움에 내 곁을 내어줄 줄도 알고 내 외로움을 적절히 위로받을 줄도 안다.


너의 외로움이 나를 부를 때, 비로소 사랑이 완성된다고 믿는 이들이 많을 줄로 안다. 그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두 막대기가 거로 기울여 지탱하고 있는 ‘人’ 사람인이라는 한자처럼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채워주고싶어하고 누군가로부터 내 빈 곳이 채워지길 바란다. 그렇지만 결혼은 인류애로 하는게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에로스로 하는거다. 철저히 나의 행복을 위해, 불행하지않기위해 하는 선택이다. 그가 외로움만으로 너를 부를 때, 빤스런해야할 때일 수가 있다.



ps 한번도 그런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면 진지하게 의심하는데 내가 그런 사람일 수 있다 . 결혼시장에서 일순위로 재껴지는 최악의 외로움러가 나는 아닐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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