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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Jun 11. 2024

미움의 여정

기로에 선 마음 <웰컴투 삼달리>(feat. 우리들의 블루스)

은희경 작가는 <새의 선물>에서 이런 얘길 했었다.

”좋아하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정까지 들지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정보다 미운정이 훨씬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고운 정은 그 이유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는 훨씬 질긴 감정이다. 미운 정이 더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춰야만 완전해지는 게 사랑이다“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괴롭힐 심산으로 어딘가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거나, 컴플레인을 제기하는게 실은, 굉장히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처음 화가날 때에는 그래, 내가 널 지구끝까지라도 따라가서 괴롭혀줄게, 인생의 불맛한번 보여줄게, 하는 마음이지만 화가 조금만 누그러들어도 알게된다. 마치 연진이의 추락과 나란한 곳에 동은이의 타락이 있었듯 그이를 겨누는 칼끝에 제일 먼저 나가 떨어지는 게 나라는 사실과, 가장 힘들고 피곤한 것도 나라는 사실을. 그래서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건, 그만큼의 나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 된다. 그럼 그만하면 될 일인데, 사람이라는 게 내가 사랑하고 관심을 줬던만큼 아니 그 이상도 미워하게 되는거라, 계속해서 미워하다보면  끝끝내 미워하고 말 것인지, 돌고돌아 다시금 사랑을 하게 될지 가릴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건, 원래 그 사람과의 관계가 어떠했는가, 에 달려있는 문제일 것이다.  


<웰컴투 삼달리> 는 삼달이와 용필이의 로맨스지만, 실은 그 둘을 주인공으로 위장한 조상태(용필이아빠)를 위한 드라마다. 정확히 얘기하면 ‘조상태의 미움의 여정’ 에 관한 드라마다. 제주의 풍광과 예쁘고 잘생긴 주인공 둘은 이용당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상태의 외로움과 미움에 관한 이야기였다. 상태가 가진 미움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려면, 삼달이와 용필이의 사연이 필요하고 또 이건 그 둘의 엄마 얘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용필이 엄마와 삼달이 엄마는 둘도없는 친구사이였다. 해녀였던 둘은 물질을 하러 동시에 들어갔다가 삼달이엄마만 살아서 돌아오게 된다. 혼자 살아돌아온 삼달이엄마를 보고 자신의 아내를 대신해 살아돌아왔다며 아내가 죽은 이유를 삼달이엄마때문이라고 믿어버리는 상태. 그래서 삼달이엄마를 향한 상태의 미움은 끝간 데를 모르고 내닫는다. 숨쉬듯 어릴때부터 서로밖에 없는 천생연분 용필이와 삼달이의 사랑과 결혼을 반대하는 가장 굳건한 훼방꾼도 상태다.


한편 <우리들의 블루스>에 보면 호식이랑 인권이 에피소드가 나온다. 둘은 한때 소울메이트, 둘도없는 형과 동생이었지만 어떤 계기로(드라마에서는 호식이에게는 씼을 수 없는 상처가 된 인권이의 말실수로 묘사하고 있다) 보기만 하면 으르릉대는 앙숙이 됐다.  둘에게는 각각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는데 고3이면서 같은 학교의 전교 1,2등인 자녀 둘이 혼전임신으로 결혼을 선언하게 되면서 으르렁대던 앙숙은 서로를 잡아먹겠다고 달려든다.


이 두 드라마에서 보면 용식이 아빠 상태나 호식이, 인권이는 정말 지랄염병, 난리부르스라는 말이 아니고서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상대를 물어뜯는다. 상태가 삼달이 엄마를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거나 욕하는 건 기본이고, 홀아비가 된 상태가 맘에 걸려 챙겨준 반찬이며 찌개를 삼달이 엄마가 보는 앞에서 쏟아버린다. 인권이와 호식이는 길바닥에서 개처럼 달려들어 싸우고, 하필 또 위아랫집에 사는 통에 매일 서로를 향해 저주를 파붓는다.


나는 이 얘기들이, 결국은 따뜻한 이야기라서 좋다. 끝까지 미워만하다가 끝나버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미워하지 않기위해 발버둥치는 얘기라서 마음이 간다. 미움이란 그런 것이다. 미움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하게 되든, 타협해서 양보를 하든 결국 바닥까지 가봐야 끝이 있다. 맨처음 상대방을 미워하고 그 다음 미워하는 자신을 자책하다가 순차적으로 이런 상황을 원망해본다. 울다가 웃다가 어르다가 달래다가 화를 내고 미쳐서 환장하다가 이러다가 정말 환장을 하는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 때쯤 마침내 미움의 찌꺼기, 감정의 불순물이 다 소진되는 데 이르르는 것을 이 드라마에서 보여준다.


결국, 미움의 종착지는, 다시 처음이다. 상태에게 더없이 소중했던 첫사랑이자 끝사랑인 용필이엄마.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의 가장 친한 친구를 미워하던 자신과 지난날을 놓아주고 삼달이엄마를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의 부모로 새롭게 보고 받아들인다. 그동안엔 미워하느라 보지 못했던 지켜야 할 아들과 새로운 사랑이 될 가족들이 눈에 들어온다. 상태는 과거를 떠나보내주고 미움을 정리하면서 실은 그동안 본인이 남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고독과 어둠속에 갇히게 했고 자신을 괴롭힌 것이 다름아닌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권이와 호식이 역시,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누군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다짐이나 결심을 한 것도 아니다. 분노하다가 오열하다가 체념하다가 그냥 그렇게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화해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면서 둘은 잊고있던 젊은시절속에 둘이 서로에게 얼마나 보석같이 반짝이는 존재들이었는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고 그렇게 더 깊고 진한 사이가 된다. 친구이면서 사돈으로 평생 서로에게 든든할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상태도 호식이와 인권이도 은희경이 말한 고운정과 미운정이 더해진 완전한 사랑에 이른게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어가니 해피엔딩이 좋다. 숨막히는 복수극, 치밀한 스릴러와 피튀기는 법정공방도 좋지만, 이제는 마음을 졸이면서 몰입하고 피폐해지는 드라마보다 천천히 흘러가는 제주의 밤풍경같이 더깨가 앉아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아기돌보듯 돌봐주는 드라마가 좋다. 이미 해피엔딩으로 흘러갈 것을 알지만 그래서 또 같이 천천히 흘러갈 준비가 되어 있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끝에 깨달은 마음 하나, 사실 미움이란, 사랑의 다른이름일 수도 있다. 끝까지 함께갈 내사람, 내인연을 가리기 위한 마지막 관문쯤에 미움이 버티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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