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분을 다독일 수 있어야 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2>를 본 후, 아마 우리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캐릭터는 ‘불안이’ 일 것이다.
인사이드 아웃은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감정들을 각각의 캐릭터로 표현한다. 그중 이번 시즌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불안이’는 이름과 같이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불안에 시달린다. 불안이는 앞으로 일어날 수많은 상상을 밤마다 한다. 한 장면씩, 한 장면씩 모든 불안을 그려낸다.
우리가 생각이 너무 많아 잠이 들지 못할 때처럼.
영화 속 주인공은 13살이 된 라일리다. 라일리의 감정들은 이제 막 사춘기 소녀가 된 라일리의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라일리가 사춘기가 되며 새롭게 나타난 불안이는, 사춘기 성장기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다. 불안이의 컨트롤에 따라 라일리는 서툰 모습도, 한편으론 잘못된 행동도 보인다. 물론 불안이는 모두 라일리를 위해서 한 행동이라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옳은 행동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춘기를 거쳐, 그렇게 성장하고, 또다시 배워왔다.
<인사이드 아웃2>를 보고 나서, 내 사춘기 시절이 떠올랐다.
학창 시절 나는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선 매일 같이 시험장에 들어서지 못하는 꿈을 꿨다.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온갖 불안함에 휩싸였다. 하루는 시험 당일에 화장실에 갇히는 꿈, 하루는 시험 당일 버스를 잘못 타는 꿈, 하루는 시험 과목을 착각해 다른 공부를 해버린 꿈. 별의별 꿈들은 머릿속 불안이가 나를 잔뜩 괴롭히고 있어서였을까. 그렇게 들들 볶이는 나는 시험 기간엔 참으로 예민했다. 아마 가족들 모두가 나로 인해 참 많이 고생했을 거였다.
난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내 머릿속의 불안이는 매일 같이 바쁠 것이다. 아마 기쁨이 보다도 더욱?
나에겐 불안한 것은 늘 많다. 그래서 나는 늘 방어적이다. 이직 면접 결과를 기다릴 때도, 늘 ‘안 될 거야.’, ‘기대 안 해.’라는 생각을 품고 산다. 정말 못 봐서, 정말 안 된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합격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나는 늘 나를 방어한다. 괜한 기대에 실망할까 봐, 괜한 설렘이 오히려 내게 독이 될까 봐.
영화 속 불안이처럼 내 머릿속의 불안이도 매일 밤 수많은 상상을 한다. 이렇게 하면 잘못될까? 저렇게 하면 어떤 것이 잘못될까? 나이가 들수록 생각할 것은 더 많아지는데, 모든 생각이 모두 불안을 상상한다. 갈수록 머리는 터져 나간다.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리가 너무 아프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사춘기 때와 가장 달라지는 건,
그럼에도 내 머릿속 불안이를 끄집어내지 않는다는 것.
불안함은 지속되고, 그로 인해 밤마다 수많은 상상을 하며 나를 괴롭히지만. 불안이는 내 머릿속에만 있다. <인사이드 아웃2>의 라일리처럼 우리는 이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어른이 될수록 이성은 또렷이 생기고, 어른이 될수록 불안함을 애써 다독이는 연습을 한다. 최종 면접까지 본 후 떨어질까 봐 혼자 전전긍긍해도, 주위 사람들에겐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만을 으쓱한다. 나의 예민함으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려 하지 않는다. 기분이 태도가 되게 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어쩔 수 없지.'
'그때 가서 생각하자.'
어른이 된 우리들은 수많은 불안이들을 애써 다독인다. 애써 외면하고, 애써 담담해진다. 아마 머릿속의 불안이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대로 폭발해 버릴지도 몰라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쌓이고 쌓인 경험치들이 이 정도로는 불안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일까? 스물 후반. 곧 서른을 바라보며 예전의 나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생각을 요즘 한다. 저 위의 세 문장은 내가 내 불안이를 잠재울 때 하는 말이다.
사춘기 시절의 ‘나’도, 스물 후반의 ‘나‘도.
나는 참으로 모순적이게도 불안이가 제일 바쁘다.
불안이는 나를 제일 갉아먹는다.
하지만 그만큼 나에게는 불안이가 너무나 소중하다. 불안이가 생각하는 그 수많은 경우의 수로 인해 미래를 방어할 수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사춘기 시절과 어른이 된다는 것의 차이는,
수많은 불안이의 상상을 마음속에만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