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폐 Dec 17. 2023

어느 날들의 불편한 동거

산골 일기

생쥐가 고생했던 화장실

깊은 밤, 화장실에 갔다. 보일러 분배기가 있는 곳에 있던 생쥐가 쪼르르 나오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놀래서 다시 분배기가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나는 얼른 나오면서 문을 꼭 닫아버린다.

"내일 아침에 보자~"


아침이 되었고..., 문을 못 열겠다. 또 재빠르게 쪼르르 어디론가 도망칠 녀석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무지 모르겠다.

정말 너무 작아서 1센티가 안 될 듯싶은 으로도 잘 다닌다.

얼마 전 쓰레기봉투 안으로 들어갔기에 바깥으로 잘 내보냈는데 어떻게 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벌써 보름은 넘었을 듯한 이 불편한 동거를 어떻게 마쳐야 할지 녀석을 만날 때마다 머리가 하얘진다. 정말 약까지는 쓰고 싶지 않은데...,




녀석은 온 방을 다 돌아다니는 건 물론이고 부엌 구석구석도 다 헤매고 다니면서 흔적을 남겨놓아 아침마다 흔적 닦는 게 일이다.

문제는 찜찜하다는 것. 오는 이들 마다 '꺄아악ㅡㅡ!' 하는 것도 그렇지만 위생을 생각해서라도 같이 살 수는 없는 일.


참다가, 화장실 문을 한참 두드리고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어랏, 안 보인다. 어디로 갔지? 어디에 구멍이 있나? 에효, 아무리 둘러봐도 안 보인다.

볼일을 보려고 변기로 다가갔다. 옴마야!

변기물에 빠진 생쥐가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아고야, 참말로...! 널 어떻게 하면 좋다니?


볼일이고 뭐고 얼른 돌아서 나온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카카오로 아침마다 글을 올려주시는 스님께 변기에 생쥐가 빠져있는데 대략 난감이라는 하소연 글을 올린다.


나도 참..., 내가 그렇게 빠졌거나 내 가족이 물에 빠졌으면 어떻게 하였을까! 이렇게 문자를 올릴 생각이 날까!


스님은 집게로 건지라 신다.

아, 맞다. 집게.

먼저 튼튼한 비닐 팩을 준비하고 그 안에 또 다른 비닐봉지를 넣고 떡조각도 넣고, 집게를 들고 변기로 간다.

물에 빠진 생쥐는 그 안에서 나오려고 여전히 바둥거리고 있었다.


에효, 너도 참...!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볼 때마다 얼마나 무섭고 공포스러웠겠니? 산만큼 커다란 덩치의 괴물이 자기를 잡으려고 하는 걸 알면서도 나갈 곳을 못 찾아 여기저기 쪼르르 거리며 다니다가 괴물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꼼짝도 못 하고 바들바들 떨어야 했을 테말이다.




집게로 생쥐를 집어서 비닐 팩에 넣고 비닐봉지를 살짝 오므린 뒤 차에 오른다.

5리 밖 가 갈대밭에다 놓아준다. 털이 아직 젖어있는 생쥐는 비틀비틀 풀숲으로 들어간다.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 쪼르르 내달리지도 못하고 비실비실 사라졌다.

풀섶에 가지고 간 떡조각을 놔두고는, "두 번 다시는 안 보길 바래~~ 잘 살어~~~"


어쨌든, 생쥐를 죽이지 않게 되어서 고마운 날이다. 생쥐야, 버텨줘서 고맙다~~ (2021, 11월 27일 일기)

이전 17화 죽을 뻔하다 살아난 은행나무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