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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May 26. 2023

새들은 새들답다

산골 일기


새들은 새들 답다


해마다 이맘 때면 창고에 마음대로 마음 놓고 드나들기 어려워진다. 봄과 함께 찾아드는 새들 때문이다.


땅심이 풀리고 연둣빛이 움트고 고운빛들이 산들을 수놓을 때면 곳곳에서, 곳곳의 생명들이 새 생명을 품고 한 해 삶을 일구느라 여념 없다.


낮기온뿐만이 아니라 아침저녁 기온도 포근해질 때면  창고 안팎이 요란하다. 어미새가 알을 품고 있다가 먹이를 먹으러 간 사이 내가 창고로 들어갈라치면 멀리서 보고 있던 어미새가 포르르 창고로 들어오면서 짹짹거린다. 행여 자기가 낳은 새끼를 해코지할까 싶어.


어느 때부턴가 엄마 아빠새가 수시로 드나든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이.

보송보송한 털에 눈도 뜨지 못한 아기새들은 엄마(또는 아빠)가 먹이를 물고 오느라 토도독거리면 앞다투어  둥지보다 더 높이 고개를 빼고 빨리 달라는 듯 주황빛에 가까운 부리를 딱딱 벌리고 있다.

창고 지붕 틈새로 먹이를 물고 들락거리며 아기새들을 키우는 엄마 아빠새의 지극 정성에, 창고에 볼일이 있어도 모았다가 하루에 한 번 정도 낮에만 가면서, 혹 누군가 창고문을 벌컥 열까 봐 안내문까지 써붙여 놓는다.


아가새들이 있어요. 놀라지 않게 살살 여닫아 주세요~~ ^ ^


일주일도 안 되어 보송하던 털이 빳빳한 깃털로 바뀐 아가새들은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이곳저곳을 포르르 포르르 날아오르며 창고를 떠나 자연의 품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힘껏 날갯짓을 하면서 날아오르다가 중간 어느쯤에 떨어져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내려오면 다시 포르르르, 날갯짓으로 날아올랐다 잘못 내려앉아 미끄러지기를 거듭거듭하던 아기새들, 며칠 뒤 드디어 엄마 아빠가 드나드는 창고 지붕밑 틈새까지 날아올랐다.


아기새들이 날아오를 때마다 '잘했다' 칭찬하는 건지 엄마 아빠새는 연신 이쪽저쪽 날아다니며 지줄거린다.




'아, 이제 떠나겠구나!'

생각하면서 구경과 응원을 겸하는 데 떠나지 않고, 새들 가족이 창고 천장 난간에 쪼르르 앉아 계속 뭐라 뭐라 하고 있다. (그렇게 보였다)

그러자 아래 구석 어디선가 대답하듯 재재 거리는 소리가 다.

살금살금 두리번두리번 살펴보니 다른 아기새들보다  더 작아 보이는 새가 있었다. 날갯짓이 약해 보였다.

먹이를 충분히 얻어먹지 못했는지 보송한 털도 아직 많이 남았다. 


엄마새는 아기새가 어서 날아오르기를 바라고 기다리며 교육 중인 듯 보인다.

다른 아기새들은 엄마를 따라 자유롭게 여기저기로 포르르거리는데 작은 아기새는 창고 안 이런저런 물건들 위로 날아올랐다 툭 떨어지고 날아오르다 미끄러지고 또다시 날아오르다 공구상자로 툭!

떨어지고 날아오르다 미끄러지고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아직은 날기보다는 종종종 걷는 게 쉬워 보였다. 


하지만 온 가족(새들)이 보기엔 날아오를 게 가능해 보였는지 난간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재재 재재재 지줄거리고 있다. 응원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며칠 뒤,  창고는 고요해졌고 새들은 모두 떠나없었다. 새들이 떠난 자리에는 예쁘게 지었던 집은 온데간데없고 빈둥지만 흐트러진 채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마침내 모두들 훨~훨~ 날아올라 모두 떠나간 것이다.

새들 답게.


요즘 [~~답게.. 답다]라는 말이 사무치게 그립고 아쉽다.

부모답게, 부모답다.

아이답게, 아이답다.

어른답게, 어른답다.

......,

대통령답게, 대통령답다.

국민답게, 국민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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