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by 늘푸른

드라마 ‘눈이 부시게’ (연출-김석윤, 극본-이남규)에서 나이가 갑자기 들어버린 혜자와 25살의 친구들의 대화가 가슴에 남는다.


혜자는 나이가 들어 친구들과 똑같이 뛸 수가 없고 친구들은 즐겁지 않은데도 즐거운 척을 하는 것 같다며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런 혜자에게 친구들은 길을 가다가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하라며 쉴 수 있는 자리를 맡아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10분이고 20분이고 너 쉴 동안 우리가 기다리면 되잖아.”

“우린 스물다섯의 혜자가 필요한 게 아니고 그냥 혜자 네가 필요한 거야.”


인생을 긴 마라톤이라 생각하면 친구들과 처음에는 같은 출발선에 섰지만 친구들은 벌써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나만 아직도 출발선에 서 있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간이 가고 나이는 먹는데 크게 달라진 것 없이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 또한 혜자처럼 저 멀리 달려가는 친구들의 뒤를 따라가기 힘들고 버겁게 느껴진다.


인생의 속도가 비슷한 친구들과 만나면 서로 고민거리도 비슷하니 대화가 더 잘 될 것 같다고 한 친구에게 말을 한 적이 있다.


친구는 나를 만나고 싶어서 만난 거고 내 얘기를 듣고 싶다고 꼭 인생을 비슷하게 살 필요는 없다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좋다고 한다.


나란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뿐이고 길도 여러 갈래의 길이 있듯이 서로의 인생길도 다른 거라며 꼭 똑같이 갈 필요가 없다고 그냥 있는 그대로 내 자리에서 그렇게 있어주면 좋겠다고 그냥 그럼 된다고.


인생의 낙오자는 없다. 비슷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고 해서 낙오자가 되는 건 아니다. 인생을 다르게 살아가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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