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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라이브러리 Feb 02. 2024

냉장고에 커피 있다.

ISFP 동생 이야기 #4


아빠와 내가 함께 한 40년간

아빠가 한결같이 보여주신 삶의 태도는


자식을 그저 사랑으로 대하는 것.




내가 비대면 강의가 있는 날엔

아이들이 있는 우리 집은 시끄러워 강의가 어려우니

나는 조용한 친정집으로 가고

아빠는 엄마와 우리 집으로 출동해 아이들을 돌보셨다.


일하려고 앉은 친정집 책상 앞에는 늘

아빠가 써두신 그날의 간식 메모가 있었다.



어느 날은 커피가

어느 날은 붕어빵이

어느 날은 만두가 있었다.


38살 된 딸

좋아하는 거 먹으며 일하라고

간식을 챙겨두던 78살의 다정한 아빠.


나는 아빠의 손글씨가 참 좋았다.

가볍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정자도 아닌

힘을 빼고 썼는데 무게감이 있는

특이해서 다른 사람 글씨와 헷갈릴 일 없는


글씨체는 꼭 아빠 같았다.


아빠는

여자 남자의 역할을 떠나

사람으로서 살아갈 때

가족에 대한 사랑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함을 보여주셨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도 일은 꼭 하라고 하셨지만

일에 치어 아이와 제대로 눈 마주치지 않고 따뜻한 엄마가 되지 못할 땐 몹시 안타까워하셨다.

아빠는 사십 년간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으셨었으니까.

아빠에게 가족이 다른 것에 밀려 뒷전이라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일해가며 어떻게 매번 애들한테 잘해요, 그러려면 둘 중 하나 포기할 수밖에 없어요라고

볼멘소리나 해대는 딸에게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하는 거다 잔소리 대신에,


그래, 너 얼마나 힘드냐


라며 아빠가 더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매 순간 내 몫까지 내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게 바라봐 주셨다.



아이가 안아달라면 번쩍 들어 올려 내려달라고 할 때까지 안고 다녀주고

아이의 끝없는 유치한 장난에도 함께 진심으로 웃어주고

방금 다녀왔는데도 또다시 가자는 산책 놀이터 수영장을

엄마인 내가 짜증 내는 동안

할아버지는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즐거운 얼굴로 아이와 늘 함께 해주셨다.



"할아버지, 벽난로 궁금해요."


하면 잘 준비를 마치셨다가도

얼른 나서서 아이들에게 벽난로 떼는 것을 보여주셨고


"해먹에 누워보면 어떨지 궁금해요."


하면 바로 집에 해먹이 배달되어 있었다.



아빠는 은퇴해서 시간이 많으시니까

아빠는 잠이 없으시니까

아빠는 워낙 움직이는 걸 좋아하시니까

아빠는 아이 안고 다니는 거 근력운동 된다고 괜찮다시니까


그냥 쉽게 생각했었는데,


아빠가 내 곁을 떠나고 나서야 이런 생각이 든다.

딸이 덜 힘들라고, 손녀딸 덜 상처받으라고,

아빠 본인이 고단해도 부단히 노력해 주셨던 거였다.



"할아버지는 절대로 화를 안 내는 사람이잖아."


"할아버지는 안 화내."


가끔 보는 것도 아니고

할아버지와 같이 붙어살며 일상을 함께 해온

10세와 4세 아이가

할아버지를 저렇게 생각하기까지,


아빠는 그저 맞춰주셨던 거다.

아빠가 그렇게 한없는 사랑을 주시면 느끼게 될


'나는 이렇게 큰 사랑을 받는 사람이야.'


라는 생각의 든든한 힘을 아빠는 잘 알고 계셨던 거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늘 아빠였다.


아빠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세상을 보는 시각이 가장 균형 잡혀 있고

가장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었다.


아빠를 조금이라도 따라가 보고 싶어 박사 공부까지 해보았지만

박사학위 취득이 꼭 혜안으로 연결되진 않는다는 것만 느꼈다.


그래도 아빠와 비슷한 직업을 가져서 참 재미났다.

아빠에게 정말 많이 물어봤다.


아빠는


갓 태어난 내 아이도 봐주고

갓 박사를 딴 어리숙한 나의 강의 내용과 논문도 봐주셨다.


어떻게 하면 까다로운 부분을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지,

아빠가 쌓아둔 수십 년의 노하우를

저녁 식탁에서 쏙쏙 빼가

신나게 강의했다.


"아빠 말대로 했더니 다들 잘 알아들었어요."

라고 하면

"네가 가르치는 데 참 재능이 있구나!"

하셨다.


자동차 검사나 중고차 판매 같은 일도


"아빠 이거 어떻게 해요?"


하면 아빠가 함께 가서 해 주셨다.


그러다가

나의 30대 끝무렵에

둘째 아이를 낳고 분가를 하게 되면서,


아빠에게 뭔가를 물어보는 일이 좀 적어졌었다.


참 웃기고 사소하게도


자동차 검사를

아빠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한 2022년 겨울 어느 날

‘이 쉬운 걸 왜 예전에는 아빠랑 같이 가자고 했지..’

라고,

얄팍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계속 아빠한테 물어보고 할걸.

더 오래 아빠가 필요하다고 할걸.

더 이것저것 캐물어볼걸.


그럼 아빠는 그렇게 훌쩍 떠나지는 않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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