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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라이브러리 Feb 08. 2024

김, 깨, 다대기 빼고.

ISFP 동생 이야기 #5


죽음에 대해 별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어리석게도 그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만약 가족을 잃는다면 그 후의 일상은 어떻게 흘러갈까, 그냥 궁금했던 적만 있다.


일상이 계속 흘러가는 것이 무척 잔인하다고 느껴진다.

내 곁의 모든 것이 그냥 멈춰있었으면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 중간중간 생각한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의, 특히 나이 든 부모의 상에 

그저 의례적으로 조의를 건넨 것이 매우 미안하다.

이렇게까지 슬픈 일인 줄 몰랐다.


아무튼 내 마음이 어떻든지 간에

하루가 무섭게 먼지는 쌓이고 쓰레기는 안 버리면 늘어가니 

애써 집 정리를 하고

집을 나서기 직전까지 울다 만 꼴로 

학교로 아이들을 데리러 가고

아이들이 나오면 급히 집으로 들어온다.

그새 눈물이 터질 것 같으니까.



아빠가 이렇게나 예쁘다 예쁘다 하시던 손녀 

굶길 수는 없으니 끼니 챙겨 먹이고,

그것마저 좀 힘들어

한 끼 좀 쉽게 때워보려고 맥도널드를 픽업한 어느 날,


햄버거가 든 쇼핑백을 보자마자

시큰둥하던 아이의 반응은 역시나


“맛이 별로네. 그만 먹어도 되지?”




내가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아빠였던 만큼 

첫 아이를 가졌을 때 

'뱃속의 아가야, 할아버지를 닮으렴.'

이라고 여러 번 얘기했었다.


그런데 내 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할아버지와 똑 닮은 것은 바로 입맛.


아빠는 음식에 무척 까다로우셨다.

사람이 살면서 잘 먹고 잘 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아빠의 뜻은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 였던 것 같다.


자라면서 우리 집에는 금지된 음식이 엄청 많았다.

아빠는 집 냉장고에 탄산음료가 들어있는 꼴을 절대로 못 보셨고

햄버거 패티와 너겟을 무슨 고기로 만드는지에 대해 장시간 설명을 하곤 하셨다.

피자 한 번 시켜 먹었다가 온 집안에 나쁜 재료 냄새가 진동을 한다며

한 겨울에 문을 활짝 열고 한참 환기를 시켜야 했다.


은퇴 후 10년여간 아빠는

시골집에서 먹거리를 키우고

최소한의 재료로 맛을 내 음식을 직접 하는 것을 재미있어하셨다.



그리고 꼭 지켜야 하는 아빠만의 원칙이 무척이나 많았다.


아침 식사는 늘 같은 메뉴로. 삶은 달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야채, 보이차.

음식에 후추는 절대 넣지 말고. 

콩나물무침에는 들기름.

삼겹살 수육은 보이찻잎만 넣고 삶아야 하고,

닭은 꼭 하나로마트의 토종닭을 사야 하고 등등.



그러다 보니 외식도 매우 어려운 문제였는데,

아빠 마음에 쏙 드는 음식점을 정해놓고 그곳에서만 사 드셨다.


아빠의 엄격한 기준에 통과한 단 두 곳은

시골집 근처 두부 요리 집과

서울 집 근처 막국수 잘하는 집.


막국수 집에서도 평범하게 주문을 하지 않으셨다.


"물막국수 한 그릇, 그런데 김, 깨, 다대기는 빼고."


그건 그냥 국물에 면인 건데, 그러려면 물과 면이 얼마나 맛있어야 하는지…


솔직히 나는 동네 밥집에서의 저런 커스텀 오더가 부끄럽곤 했다.

아빠가 한 곳만 정해놓고 다니셔서 워낙 금방 단골이 되다 보니

사장님이 반갑게 나와 주문을 받아주실 때야 괜찮았지만,

지친 알바생이 

"네? 김, 깨, 다대기를 다 빼라고요????"

라며 의아한 얼굴을 할 때엔 

‘그냥 대충 메뉴에 있는 대로 시키시지...’ 싶었다.


나는 괜한 반항심에 일부러 내 걸로는 다대기 잔뜩 들어간 비빔막국수를 시키기도 하고

아빠에게 “오늘은 그냥 평범하게 시켜요. 위에만 숟가락으로 건져내면 되잖아요.”라고 말해 보기도 했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빠는 특유의 큰 목소리로 "김, 깨, 다대기 빼고."를 매번 또박또박 외치셨고,

그 옆에서 내 아이는 할아버지가 덜어주는 막국수를 참 맛있게도 받아먹었다.



아이가 막국수를 워낙 잘 먹길래

남편과 아이와 강원도 여행 중 막국수 맛집에 일부러 들린 적이 있었다.

국물에서 후추 냄새가 난다며 손도 안대는 아이를 보고

아빠와 함께 여행 온 줄 알았다.


아빠의 깊은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나는 햄버거도 피자도 좋아하는 어른으로 커버렸는데,

그런 엄마 옆에서 햄버거와 피자는 아무리 먹어봐도 영 별로라며 

콩나물무침 얹은 밥 한 숟가락을 먹는 내 아이.



2023년 12월의 마지막 날 아침에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들은 내 아이는



할아버지 손잡고 산책한 다음에 막국수 먹으러 가는 게

내가 한국 가서 유일하게 하고 싶은 일이었는데



라며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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