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 가득했던 내 상상에 날개를 달아준 책
나의 첫 SF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다.
책을 좋아하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지만 SF 장르는 뭔가 거리감이 느껴져 읽을 생각을 안 했었다. 말 그대로 공상 같고 허무맹랑한 소리를 시간 들여 읽는 기분이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 이 책을 접하게 된 건 나에게 ‘서툴지만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을 선물해 준 지인이 이 책에 대한 인스타 스토리를 올렸고 어떤 지 묻는 질문에 재밌다며 추천을 해주었다. 나에겐 지인 추천이 직빵인 것 같다. 아, 제목이랑 표지가 예쁜 것도 한몫을 했지만 말이다.
이 책은 우주와 과학기술에 대한 7가지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저 먼 어딘가의 있을 법한 이야기를 현실적이고 실제적으로, 정말 그럴듯하게 그려냈다. 디테일에 대한 묘사가 좋아 몰입감이 들면서 동시에 풍부한 표현력에 우주와 기술에 대한 경이감이 일으켜지는 소설이었다.
도입부부터 우선 지구가 아닌 곳에서 시작한다는 점이 재밌었다. 외계인이 바라보는 지구는 어떨까, 왜 얘는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또 쟤는 왜 긍정적으로 바라볼까 생각해 보게 되고, 새로운 행성들의 묘사들을 읽으면서는 상상 속의 흰 도화지에 작가님이 표현한 행성을 그려보기도 했다. 또 로봇이라든가 웜홀 이론에 대한 내용, 작중 프리징 기술이라고 표현되는 냉동인간에 대한 내용들 등 현재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내용들이 있어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있었다.
참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는데 그중 가장 재밌게 읽은 공생 가설 이야기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보겠다. 이 이후론 내용이 드러나니 혹시 읽을까 고려 중인 사람이라면 읽은 후에 같이 공감했으면 좋겠다.
난 항상 그 실험 결과가 의심스러웠어.
인간 보육자야말로 감정과 상황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는 불완전한 보육자란 말야.
인간을 비인간동물과 구분하는 명백한 특질들이 사실은 인간 밖에서 온 것들이라면.
“우리가 인간성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실은 외계성이었군요.”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의 생각을 읽고 싶다는 생각.
막연하게 연금술이나 초능력으로 여겨왔던 이 능력을 이 책에선 기술로 가능하게 만들었다. 초기 연구는 개와 고양이부터였고 인간, 마침내 신생아에 대한 연구까지 이어졌다. 이 기술은 언어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소수언어 연구자들에게도 엄청난 도움이 될 수 있었고 이제 신생아의 생각까지 표현된다면 부모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막연히 초능력처럼 생각했던, 생각을 읽는 능력을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게 기술한 것이 놀라웠고 ‘이런 기술이 생긴다면 좋겠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이 기술이 우리에게 어떤 세계를 열어줄지를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또 신생아들의 생각을 읽는 실험에서 ‘어떻게 하면 더 윤리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와 같은 복잡하고 심오하고 철학적인 생각들이 결괏값으로 나오는 설정은 내 궁금증을 무수히 자극했다. 철학적인 신생아라… 이 말도 안 되는 실험결과의 원인을 한 실험에서 찾게 되는데 바로 보육 로봇을 이용한 육아 실험 일명 ‘상자 속의 아이들’ 실험이었다. 이는 보육자의 접촉이 아기에게 필수적일지를 확인해 보기 위한 실험이었다.
보육자의 접촉이 아기에게 필수적 일지에 대한 의문은 사실 생각자체를 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아기에겐 부모 혹은 누군가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 또한 로봇이 아기를 키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고 그저 안 되지라고 생각해 그 이상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로봇이 창궐하는 세상이 오면 그땐 이런 움직임들이 나타날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다.
또 위에 책갈피처럼 보육 로봇과 비교하며 감정과 상황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는 인간의 부모를 슬쩍 비판하는 부분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다. 최근에 챗GPT를 활용하여 코드리뷰의 어투를 부드럽게 바꿔주는 크롬 익스텐션을 봤는데 이걸 보면서 로봇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육아 방식으로 비슷하게 한 번 테스트해 보았다. 테스트할 대사는 금쪽같은 내새끼에서 영감을 받았다.
자녀에게 부모가 내뱉는 말이 얼마만큼의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저만큼 이해하고 말하는 인간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 저런 식으로 대화하는 로봇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가 과연 인간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보다 반드시 행복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오히려 더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됐다.
이 실험은 윤리적으로도 논란이 있었지만 결과가 밝혀지자 더 큰 비난을 받았다. 아기들이 보육 로봇에서 길러지는 동안 인간성이나 선한 영향이 전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상자 밖에서 자라면서 괜찮아졌지만 말이다.
여기서 수빈은 생각한 것이다. 만약 뇌 속의 ‘그들’이 인간에게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유입되는 것이라면 어떨까? 기생충이나 미생물이 전염되듯 말이다. 그래서 상자 속의 아이들 또한 단지 ‘그들’을 받아들일 접촉의 기회가 없던 것이라면?
2차 무릎 탁.
인간성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사실은 외계성이라니. 그렇다면 사실 인간성은 악하고 욕구에 따라 움직이는 성질인 것이다. 이 사실이 세상에 밝혀지게 되면 인간적이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칭찬이 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도 해봤다. 이러한 설정들이 나는 너무 흥미롭고 재밌었다.
이 밖에도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몇몇 문장들을 소개한다.
나도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뭐 단순하게 지금 당장 지진이 난다면?부터 외계인이 있다면 어떻게 생겼을까?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생겼을까? 다른 모습이라면, 우리는 귀가 두 갠데 걔네는 한 개일까? 그러면 우리는 더 잘 들으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을까? 이런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져 보이는 생각들.
이 책은 이런 물음표가 가득했던 내 상상에 날개를 달아준 것 같았다.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가서 이런 세계도 있구나 깨닫는 느낌이었고, 작가님이 생각하신 상상의 세계를 맘껏 누리는 기분이었다.
이때 상상을 이렇게 글로 잘 표현하려면 이 생각의 깊이, 생각의 넓이가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할까 싶으면서 작가님에 대한 내적박수가 정말 절로 쳐졌다. 실제로도 쳤다. 동시에 내가 하는 생각을 이렇게 글로 잘 적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겠다 반성도 하게 됐다.
아무튼 결론은 너무 재밌었다. 특히, 나 같은 쓸데없는 생각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매우 만족해할 듯싶다. 그럼 추천을 마지막으로 책 리뷰를 마무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