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화건 Jul 09. 2023

주머니 속 열쇠를 찾다

H.N. 소. 우. 주. 지기의 생각을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두울

2021년 6월 7일 SNS 게시글

오늘 여러 자료를 확인하는데 한 블로그의 내용이 저의 눈을 사로잡았죠. 개인적으로 롤모델로 여기는 분의 글이었는데 제 모습 중에 드러내기 싫은 부분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노이로제'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제 모습을 계속 떠올리게 만들었죠. 예전부터 제발 이제 그만했으면 하는 습관 아닌 습관이 있는데요.... 그 행동들을 하면 그런 제 모습이 싫고, 하지 않으면 불안함이 엄습해서 안절부절못하니 답답할 뿐이네요. 강박의 습성에 휘둘리는 저 자신을 보고 있으면 왜 이리 꼴 보기 싫은지요


지긋지긋한 강박의 시작은 9살 정도였던 걸로 기억되네요. 지금에야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때는 여러 학교에서 저학년의 경우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했었습니다. 제가 서울 외곽의 학교에 다닐 때는 경험할 일이 없었는데, 도심으로 전학 오니 당연한 것이 되더군요

그렇게 격주로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번갈아서 등교를 했죠. 어머니께서 전업주부 셨기에 평소에는 등하교를 신경 써주셨는데, 하루는 볼 일이 있으셔서 외출을 하셨기에 등교를 혼자 알아서 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 살던 집 문은 지금의 도어록처럼 자동으로 잠기는 형식이었죠. 열쇠가 없으면 낭패를 당하는 구조였는데, 바로 그날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을 일이 벌어졌네요.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잠시 집 밖으로 나왔다가 그만 문이 잠겨버렸습니다. 학교에 가야 하는데... 시간은 계속 다가오는데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죠. 가까이 지내던 동네 이웃 어른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지각을 했거나 아예 등교를 못 할 수도 있었는데, 덕분에 간신히 늦지 않게 등교할 수 있었네요


어려운 일이 잘 해결되었는데,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된 걸로 기억되네요. 불안에 따른 강박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죠. 집을 나설 때 문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는데 시간을 들이기 시작하더니, 문 밖으로 나오기 전에 확인하는 게 하나씩 늘기 시작하더군요. 저 자신 그런 모습이 싫으면서도 계속 더 깊은 늪에 빠지듯 나날이 심해졌죠. 시간이 지나면서는 걷다가도 무언가를 놓치지 않았나 싶어서 계속 뒤를 돌아보는 습관까지 생기더군요

시간이 지날수록 강박의 강도가 세지는 것뿐 아니라 종류도 많아지며 점점 절정으로 치달았습니다. 이 즈음부터는 어머니께서도 눈치를 채시고 말리려고 고생하셨죠. 강박에 따른 행동을 떨쳐버리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불안감은 계속 저의 발목을 점점 세게 잡아채더군요


어떤 곳에서는 루틴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기도 한다는 걸 안 건 나이가 좀 들어서입니다. 나만이 이런 강박에 따른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지는 않았지만 안심은 되더군요. 개인적인 노력에 더해서 마음에 안심이 조금은 자리를 잡으면서 강박 행동은 조금씩 줄어들었죠. 여전히 강박 행동과 싸움 중이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불편함은 가고 불만족이 그 자리를 대체했죠. 아무리 긍정적인 모습으로 포장해서 보려 해도 도저히 안되네요.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나도 꼴 보기 싫다는 생각은 변하진 않더군요


강박의 행동이 저에게 주는 부정적 영향이 많이 있지만... 우선 저 자신의 행동 하나 고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떨어지더군요. 못났다 생각하는 모습이 들킬까 봐 신경을 쓰다 보니 피곤함을 많이 느끼게 되었죠. 정말 중요한 걸 위해서 써도 모자랄 에너지를 불필요한 곳에 쓰다 보니 아쉬운 결과를 맞게 된 적도 여러 번 생기더군요. 나답게 살 시간을 낭비한 것 같아 저 자신 정말 마음에 안 들었죠. 솔직히 강박을 일으킨 걱정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염려일 뿐인데도 휘둘리니 말입니다. 물론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도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요. 살다가 몇 번 되지 않는 실수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를 허비하는 게 얼마나 싫은 일인지는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분들은 충분히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불필요한 행동을 계속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게 되더군요. 사람은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사는데 그중 한축인 행동에서 제약이 생기니 자신감이 떨어졌죠. 상대에게 오해를 일으킬 소지를 만들고 싶지 않다 보니 더 부자연스러워지더군요. 몸에서 느끼는 불편은 결국 마음의 불편함으로 이어졌고요. 일에 따라 성격이 다르기에 필요한 집중도 역시 달라지는데, 진짜로 집중해야 할 때에 온전히 쏟아붓지 못하니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게 힘들 수밖에 없었죠. 더 큰 문제는 강박적 행동으로 타인과의 교류에도 지장을 받게 되더군요. 다른 사람이 신경을 쓸지 안 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제 발이 저리다고 방어적 자세를 갖다 보니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데 써야 할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었죠. 좋은 관계를 맺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는데,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니 삶의 질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솔직히 이 글을 쓰면서 머리가 좀 복잡해졌습니다. 아니 아차 싶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강박의 습성이 너무너무 싫다고 하며 살아왔는데 아니 저 자신마저 싫어질 정도로 마음 고생했는데도 제대로 고치려 했던 적이 있나 싶어서요.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내가 지금까지 뭘 하고 산 거지?'싶더군요

강박의 행동을 눈치챈 누군가의 지적이 있으면 잠시 고치는 척은 했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노력은 하지 않았더라고요.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노력은 했어도 근본적으로 강박적 행동 자체를 고치려 하지는 않았지요. 아니 엄두를 못 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지레 겁먹고 포기인지도 모른 채 체념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 회피하다 보니 결국엔 적응해서 불편이 없다는 착각 속에 안주했던 게 분명하네요




갑자기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여러 생각에 혼란스러웠습니다. 지금까지 무얼 하고 살았는지 또 무얼 위해 살았는지 헷갈리더군요. 머리는 복잡하다가 멍해지다가를 반복했죠. 감정은 밑도 끝도 없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티를 안 내려고 하니 더 힘들더군요

그래서 저 자신한테 시간을 주기로 했습니다. 며칠간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독였더니 이제 힘이 좀 나네요. 그 덕으로 다시 글을 쓸 용기를 내고 있고요


지금까지 나름 좋은 습관은 만들고, 나쁜 건 제게서 떨쳐내며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요. 그렇다고 넋 놓고 지내는 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아니해야 한다는 마음에 조바심이 났죠. 간신히 진정시키고 무얼 해야 할지 찾아봤습니다. 두 번 세 번 생각해도 한 가지 만이 떠오르더군요. 딱 하나

저 자신을 조금 더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이요. 지금까지 마음공부도 하면서 나름 저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헛똑똑이 행각을 하며 착각 속에 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알아보자고요. 그러려면 솔직해야겠더라고요. 좋은 건만 보려다 놓친 게 너무 많다는 걸 이제야 인정하게 되었으니까요. 놓친 것들이 많은 것뿐 아니라 중요한 것들이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니


제 문제를 풀 열쇠는 제게 있고 그걸 쓸 수 있는 방법도 저 자신이 알고 있음을 더 늦기 전에 인정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요. 용기가 없어 인정하지 않던 걸 이제야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받아들였으니요

이제부터 눈에 불을 켜고 열쇠 찾아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사용해 봐야겠습니다


지금부터 저 자신에게로의 탐험을 떠나야겠습니다




2021년도에 떠오르는 생각을 끄적여 보았죠

"눈앞이 캄캄해지고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바깥에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말아요

당신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당신의 주머니 속에 있으니까요"


1년이 지나 생각을 다시 생각했고요

"행복을 원한다면서 먼 곳 만 바라보며 바람을 남발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서 남만 바라보며 탓만 찾아서는 얻거나 이룰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쉽지 않으니... 그렇게 오늘도 아는데 그치지 않고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숙제를 하고 있습니다

시작이 늦다고 실패한 건 아니니까요"


생각을 다시 생각해 보며 저 자신의 의식 흐름 변화를 느껴보는 게 즐거움을 주는 색다른 습관이 되었네요




오늘은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네요. 맑은 날도 좋지만, 오늘 같은 하늘도 운치가 있어 좋습니다

하늘은 어떤 모습이어도 다 좋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오르막 오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