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넘어 다시 만난 인연
Continued...
타이틀: 10년 만에 Ly와 Lily를 만나게 되었다.
부제:시간을 넘어 다시 만난 인연
Ly와의 인연, 그 시작
10년 만에 Ly와 그녀의 딸 Lily를 드디어 만났게 되었다.
Ly는 크리스마스 이후에 만나자고 했고, 나는 크리스마스와 새해 연휴가 끝나는 2주 후에 만나자고 제안을 했다. 영국에서는 보통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정규직 직원들이 약 2주간의 휴가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은 주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1년 동안 열심히 살아온 일상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갖는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가족과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영국의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물론 20년이 지나면 구세대는 사라지고, 신세대가 주류를 차지하며 과거의 문화는 자연스럽게 변해간다.
우리는 먼저 한국 음식을 많이 파는 ‘이태원’ 슈퍼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최종 목적지는 만나서 정하기로 했다.
TMI: 이곳의 사장은 중국인인데, 사업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다. 현재 내가 사는 시티 하이스트리 거리에는 10대들이 좋아하는 꽤 근사한 버블티숍을 운영하고 있으며, 쇼핑센터 안에도 또 하나의 작은 버블티숍을 열었다. 게다가 이태원 슈퍼까지 운영하면서 사업을 확장하고, 돈을 끌어모으고 있다. 중국 상인들의 사업 감각은 정말 뛰어난 것 같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중심가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방문했을 때, 중국 상인들이 사업을 운영하는 데 보여주는 뛰어난 감각(Business sense)과 전략적인 능력(Commercial talent)을 엿볼 수 있었다. 이곳의 사장은 아마 나이가 많은 구세대일 것이다. 정확한 나이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다.
이곳 외에도 총 2개의 중국인 슈퍼마켓과 1개의 식당을 상대로 하는 1개의 wholesale supermarket이 있다. 이렇게 작은 시티 안에 이렇게 많은 중국인 운영 슈퍼마켓이 있을 줄은 몰랐다...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그곳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분과 비슷한 연배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분은 터미널 근처에 슈퍼마켓을 열었고, 그 옆에는 그의 여동생이 또 다른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도매상 전문 중국인 슈퍼는 구세대의 지원을 받아 갓 20대 초반인 신세대가 운영하고 있다.
Ly는 나보다 14살 어리다. 그녀는 여전히 찬란한 40대 중반을 맞이하고 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2005년 여름이었다. 당시 그녀는 26살, 동안인 얼굴과 에어로빅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 덕분에 더욱 젊고 활기차게 보였다. 그녀는 우리 부서의 업무량을 덜어주기 위해 단기 임시직으로 고용되었고, 덕분에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모두 베트남의 명문대를 졸업한 후, 영국으로 유학을 온 사람들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컴퓨터공학 박사과정을 하고 있었고, 그녀 또한 정치외교학 석사과정에 있었다.
잠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의 배경에 관하여 말하자면, 두 사람은 베트남 출신으로 그녀의 부모는 모두 교사였고, 남편은 베트남에서 내로라하는 권력과 부를 갖춘 상류층이었다.
그녀의 남편의 집안이 워낙 "대단한 집안"이란 이유로, 리의 시어머님은 그녀를 가문의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뚝심 있고, 똑똑한 그녀의 남편은 이 여자가 아니면 안 되겠다면서 리를 자신의 배우자로 선택했고, 결혼식을 한 후, 자신의 집안과 연을 끊었었다. 그 후, 영국으로 와서 성공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고 결혼생활을 유지한 후, 마침내 그녀의 딸인 Lily를 낳은 후, 시어머님은 두 사람을 받아들여주었다. 역시 그녀도 핏줄 앞에서는 타협을 하는 분이셨다.
내가 그분을 처음 본 것은 릴리가 태어난 후, 영국으로 날아와서 자신의 모습을 아주 많이 닮은 손녀딸을 안았던 날이었다. 그분의 포스가 대단했었던 것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Ly는 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하면서 외국인 학생들의 생활과 비자 관련 업무를 하는 파트타임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대대적인 교직원 규정 변경으로 인해 기존에 하고 있었던 일을 끝내고, 다시 재입사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때 생긴 3개월 동안의 공백기에, 직업소개소를 거쳐 내가 다시는 은행의 임시직으로 파견을 오게 되었다.
그 당시 은행에서는 업무량이 많아질수록 정규직 직원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에이전시를 통해 임시직을 투입하여 처리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부담이 컸다. 업무는 넘쳐나는데 정규직을 추가로 채용하지 않고 그때그때 임시직을 투입하니, 고맙기보다는 짜증이 났다.
은행 업무는 대부분 자체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고객 개인정보와 관련된 중요한 일은 임시직이 맡을 수 없었다. 결국, 아주 사소한 업무만 맡길 수 있었고, 오히려 그들에게 일을 가르치는 동안 내 업무는 계속 밀려갔다. 지금 생각해도 답답한 상황이었다. 대기업 정규직의 복지는 좋지만, 그만큼 업무 강도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러나 그녀가 우리 부서에 배정되었을 때, 사업총괄 부서장은 나에게 특별히 그녀를 잘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외국인에게 호의적인 사람이었고, Ly가 대학원생이자 베트남에서 유학을 온 만큼 나도 같은 외국인으로서 서로 돕고 신경 써주길 바랐다.
결국 나는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고, 어차피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그녀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업무뿐만 아니라 일상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나는 점점 그녀의 깊은 사고력과 지혜에 매료되었다. 그녀는 단순히 지적이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따뜻하고 진실된 사람이었다.
또한 함께 일하면서 그녀의 뛰어난 영어 실력을 알게 되었다. 특히 글쓰기 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다.
내가 비결을 물어보자, 그녀는 어릴 적부터 교육자인 부모님 덕분에 철저한 영어 교육을 받았고, 대학 시절에는 영국 교수에게 4년 동안 꾸준히 개인 지도를 받았다고 했다. 그녀의 실력은 결코 노력 없이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Ly는 임시직을 마친 후 다시 대학교로 돌아갔다. 나는 그렇게 그녀와의 인연이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듯이, 그녀는 또다시 나와 연락을 하게 되었다. 아직 공부도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 전혀 계획에 없던 임신이 부부를 다소 당황하게 했지만,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하며 자신보다 내가 먼저 아기를 낳았기에 그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TMI: 이곳을 올 때마다 다짐하게 된다. 결국,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맞다는 걸 새삼 느낀다. 최근에 새로운 미용실을 찾았는데, 거기 미용사님께서 머리카락이 원래 상태로 돌아오려면 1년 이상 걸릴 것 같다고 하셨다. 아무리 급하고 돈이 부족해도, 아무거나 덥석 물어서는 안 된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다.
시간을 넘어 다시 만난 인연:마침내, 10년 만에 Ly와 그의 딸 Lily를 만나게 되었다.
이태원 근처에 다다랐을 때,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약 30분 늦는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원래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인데, 교통이 막힐 리도 없고. 아무튼 나는 시티에 와 있으니까, 좋아하는 워터스톤 서점에서 책이나 읽으며 기다리겠다고 답했다.
그 후, 30분이 지나 마침내 이태원 슈퍼마켓 앞에서 우리는 만났다.
처음 그녀가 나를 알아봤을 때, 나는 8년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줄 알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벌써 10년이 지난 거였다. 물론 내가 사람을 잘 못 알아보기도 하지만, 나도, 그녀도 많이 달라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칭 ‘봐줄 만했던’ 내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초췌해진 노인의 얼굴로 변한 나의 모습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었을까? 그게 조금 의아하게 느껴졌다.
여자의 얼굴은 50대 중반을 넘기면, 큰 변화를 겪는 것 같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 든다. 그나마 어렸을 때부터 사진을 찍어놓았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나의 젊었을 때 그나마 아름다웠던 모습을...
나는 궁금해서 Ly에게 물어보았다. 나의 변한 모습을 너는 어떻게 알아보았느냐고, 그녀는 답했다.
“그동안 네가 많이 보고 싶었어. 그래서 딸과 나는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하곤 했지. 오죽하면 몇 달 전엔 너를 그리워해서 꿈까지 꿨었어."그제야 나는 그녀가 나를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렇구나. 많이 보고 싶었구나.”
내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나를 그리워했을까?
Ly는 은행에서 임시직이 끝나고, 본업으로 돌아갔다.
그 후, 간혹 가다 안부인사를 나누었는데,
어느 날, 알게 되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계획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릴리를 임신했을 때, 그녀는 겨우 26살이었다. 아직 석사 과정을 하고 있었고, 아기를 가질 계획은 전혀 없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아기가 찾아왔다.
대학원공부도 아직 안 끝나서 명확한 직업이 없는 가운데, 그것도 아기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주거환경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기가 찾아왔다니... 참 당황스러웠던 심정을 가끔씩 나에게 토로하며, 조언을 구했다.
그때마다 아기를 먼저 낳은 경험자로서, 그녀에게 출산 및 아기 돌보기, 그리고 nursery와 child minder 등에 관해 나의 실패담을 이야기해 주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녀에게 조언을 해준 정도였는데, 그녀는 그것을 굉장히 큰 의미로 받아들였고 고마워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속담처럼 그녀는 나보다 성숙했고, 지혜로웠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 빨간색 고급스러운 겨울용 레인코트를 입고,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이쁘네~"라는 말이 나왔고, 자연스럽게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미안해, 릴리랑 함께 오느라 늦었어. 내가 주차장에서 주차를 하고 내려주었는데, 어? 어디 갔지? 개가 먼저 와 있어야 하는데?"
"릴리도 우리랑 만나는 거야?"
"아니, 릴리는 원래 자전거로 시티에 와서 공부할 계획이었는데, 오늘은 너무 춥다면서 차를 태워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출발이 좀 늦었어. 그리고 릴리가 공부하러 가기 전에 꼭 너의 얼굴을 보고 가겠다고 했어. 그래서 늦었어. 정말 미안해."
그녀는 둥근 얼굴에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4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젊고 생기 넘쳤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쁘다. 정말 여전히 이쁘다.'
Ly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딸을 찾았다. 그때 1층에서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Lily를 보며, Ly는 '저기 있다!'라고 말하며 팔을 휘저었다. 나는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슬림하고 키가 큰 Lily가 Ly처럼 팔을 휘저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Lily의 얼굴은 태어났을 때, 3살, 7살 때의 모습이 그대로였다. 큰 변화 없이 그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자라난 그녀. 다만 키는 170cm 가까이 자라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 세대보다 더 큰 것 같다. 내 앞에 다가온 릴리는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안겼다.
그녀는 눈에 띄게 크고 슬림한 체형에 어깨에 큰 배낭을 메고 있었다. 그 배낭 속에는 아마도 교과서와 노트들이 가득할 테고, 말간 얼굴에 교정기를 낀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모습은 그녀의 자신감과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17세의 예비 성인으로서, 그녀는 눈앞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달려가며, 앞으로 공학도를 꿈꾸는 열정적인 학생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엇! 릴리는 원래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뭐지? 성격이 바뀌었나? 그리고 이 느낌은 뭐지? 과거 초창기 제주국제학교 NLCS 학생들에게서 느꼈던 그런 느낌이 나는데?
To Be Conti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