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사람은 막고, 있는 사람은 솎아내자
타이틀:마음의 방 정리:남길 사람과 떠나보낼 사람Ⅰ
부제: 오는 사람은 막고, 있는 사람은 솎아내자
며칠 전,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 알게 된 지인께서 나의 블로그 글에 댓글을 남기셨다. 그분은 2024년 12월 31일부로 제주도를 떠난다고 들었고, 새로운 나라로 떠나 정착한 후 연락이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내가 올린 블로그 글에 댓글을 남기셨다.
1년 6개월 전, 제주영어교육도시를 떠날 때 나는 지인들에게 나의 근황이 궁금하면 블로그를 확인하라고 했다. 6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돌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예상했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 어려웠다. 그래서 당분간 안부 전화를 드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징징거리고 싶지 않았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대신 블로그에 근황을 남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동안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 맺었던 인간관계는 대부분 이득을 챙긴 뒤 태도가 돌변했다. 그래서 남은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1월 15일, 그 지인께서 댓글을 남기셨고, 의외였다. 보통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 거주하던 사람들이 본래의 거주지로 돌아가면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다. 그분과 카톡으로 안부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은, 원래 제주영어교육도시를 떠날 예정이었다가 결국 남기로 하셨고, 딸만 외국으로 보내셨다는 것이다. 성격은 나와 다르지만, 진실된 대화를 나누는 지인과의 시간은 언제나 즐겁고 반갑다.
그 지인은 남편과 성격이 매우 비슷하다. 그래서 가끔, 남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때, 그분에게 문의한다. 마치 감정통역사처럼, 그분은 남편의 마음을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긴 시간 동안 상담사로 일했지만, 정작 내 문제는 잘 해결하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 성격이 정반대인 배우자와 딸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나와 그 지인과의 관계는 겨우 3년이 넘었다. 다시 말해, 나의 마음의 방에 들어온 지인으로서는 아직 새내기다.
소위 한국의 상류층에서 살아가며,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그들과 같은 수준이라고 착각했다. 제주영어교육도시라는 좁은 지역에서, 적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속에 살다 보니, 내가 세상 밖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회적, 경제적 '버블' 속에 갇혀 있던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마치 '대가리가 꽃밭'인 세계에서 살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하나의 여자 사람으로서 노후 준비는 전혀 하지 않았고,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채 살았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노후 빈곤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주독립적인 삶을 살기 위해 더 이상 안일하게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나 자신의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때라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이제라도 해야 한다. 설령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준비하고, 내 삶을 책임지기 위해 나아가야 한다. 더 이상 과거의 착각에 갇히지 않고, 내 미래를 위해 필요한 변화는 지금 시작해야만 한다.
그때, 나는 '이제 무엇부터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우르릉 쿵쾅, 윙윙 덜컥 덜컥' 소리가 들려왔다. 쓰레기 수거날이구나. 쓰레기 차량이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통을 들어 올려 쓰레기를 비우고, 다시 길에 놓고 가는 소리였다.
집주인들은 보통 쓰레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길에 놓인 쓰레기통을 집 쪽으로 가져다 두어야 한다.
그때, 나는 쓰레기통을 안으로 옮기려는 찰나에 우리 집 옆집 여성분이 길을 건너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떡국 떡과 달콤한 떡볶이 양념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시내 이태원 음식점에서 음식을 구입해 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음식을 살펴보니, 자신이 모슬림이라 먹을 수 없는 재료가 있다고 하며, 내가 그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한 번도 그녀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의아스러웠다.
사실 나는 선물이나 음식을 내가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잘 받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대부분 거절하곤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할 수 없었고, 또 굳이 그렇게 해야 할 이유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와의 만남은 또다시 시티의 버스정류장에서 이어졌다.
그녀는 터키 출신의 34살로, 세 아이의 엄마인 젊고 아름다운 이슬람교 신여성이었다.
‘신여성’이라 불리는 그녀는, 엄마 세대가 히잡을 쓰고 가부장적 삶을 살아온 것과 달리, 자신은 목소리를 내고, 히잡을 쓰지 않아도 되는 세대에 속한다고 했다. 또한 남편과의 관계는 수직적이지 않고, 수평적인 대화와 행동을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또 예기치 않게 시티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었고, 그때 그녀의 삶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10살 아들, 8살 아들, 2살 딸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준 선물에 대한 답례로, 나는 딸을 위해 사두었던 사전을 10살 아들에게 주기로 했다. 그 사전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딸이 '주지 말라'라고 해서 영국까지 가져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딸은 유독 책을 아끼는 버릇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마침내 사전을 주기로 결심한 날,
나는 그녀에게 직접 주기보다는 그녀의 남편을 통해 전달하기로 했다.
여전히 내 일상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내 삶에 더 가까이 들이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직접 주라'고 했고, 결국 나는 그녀의 집 대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대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오후 4시에 출근하는 택시기사 남편을 보낸 뒤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저녁을 준비해야 했기에, 문밖에서 사전만 주고 가려했다. 그런데 그녀는 문을 열고 나를 잠깐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밥을 해야 한다며 사전만 주고 가겠다고 했고, 그녀는 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왜 전화번호를 알려주어야 하냐고 묻자, 나중에 만나서 차를 마시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사전만 건네며 집으로 돌아왔다.
예전 같으면 나는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주었겠지만, 지금은 내면의 방을 정리하는 중이다.
나는 내 마음의 공간을 지키며, 자기 돌봄을 실천하고 있다. 그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겪으며 살아남았고, 천성과 소명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돕는 삶을 살아왔다. 내 본성은 타인을 돕는 것이었고, 환경적으로는 많은 은혜를 받으며 살아왔다. 그 덕분에 나는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는 어느 정도 보장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보장이 있었기에 의미 있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소명에서 은퇴하고 나 자신을 돌보려 한다.
그래서 나는 올해부터 다시 생리적, 안전 욕구를 추구하고자 했다. 마치 책 "당신의 방에 아무나 들이지 마라"처럼, 나는 내 마음의 방에 아무나 들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나는 입구컷을 시행하고,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기로 했다. 강남의 나이트클럽에서 입구에서 사람을 선별하듯, 내 마음의 도어맨을 훈련시키려 한다.
내 본성상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지만, 이제는 심사숙고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 직관을 잠시 내려놓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하며 결정을 내리고자 한다. 강한 추진력은 내 본성의 강점이지만, 이제는 그 강점을 잘 활용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작년에는 이미 몇 번의 입구컷을 했다.
첫 번째는 이곳에서 돌아왔을 때, 지인께서 예전에 나를 알고 지내던 지인이 자신을 통해 내가 돌아온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 지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인이 2년 안에 제주 영어 교육 도시로 갈 계획이라며 그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지인을 통해 들은 바로는, 그 사람은 내가 도움을 주지 않아도 이미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고, 확실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굳이 내가 도와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유튜브에 이미 많이 나와 있는 동영상을 보고, 각 학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정보를 읽어보라고 조언했다. 제주 영어 교육 도시는 설립된 지 벌써 14년이 지나, 그곳에 살았던 주민들이 유튜버 활동을 하고 있고, 그들의 영상을 보면 대부분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잡페어에 갔을 때, 말레이시아계 중국인 엄마와 딸을 만났다. 내가 상담을 끝내고 나오려는데, 엄마가 나를 불러 세웠다. 처음에는 "너도 딸을 위해 직업을 알아보러 왔느냐?"라고 물었다. 사실 그날의 잡페어는 갭이어를 하는 학생이나 20대를 대상으로 한 직업 박람회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국에서 어카운트로 일하며 노후 준비가 완벽히 되어 있던 사람이었고, 그녀의 딸은 런던의 명문대 생명공학과를 졸업한 수재였다. 딸의 학비와 자취비용은 모두 현금으로 치를 수 있을 정도로 재력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게 “딸이 생명공학 쪽으로 취업을 알아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아트 분야로 알아보려고 한다”며, 진로 상담을 부탁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그녀와의 대화 속에서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똑똑했고, 재력도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굳이 내 전화번호를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사실, 나는 종종 타인에게 불필요하게 자세한 설명을 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이 이미 눈치를 챘더라도 말이다. 아마도 이런 설명 욕구 때문에 가끔은 여전히 강단에서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럼에도 그녀의 집요함은 놀라웠다. 그녀는 “내 친구가 케어 센터를 운영하는데, 네가 취업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라고 제안했다. 결국 나는 이렇게 답했다.
“지금 제가 처한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요. 제가 당신에게 전화번호를 드릴 수는 없지만, 대신 당신의 전화번호를 주세요. 집에 가서 생각해 보고, 연락이 필요하다면 제가 드리겠습니다.”
잡페어에서 제대로 된 직업 정보를 얻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씁쓸한 감정이 들었다. 60대가 다 된 나이에 직업을 알아보며 살아가는 내 모습과 조기 은퇴를 준비하며 유럽 여행을 꿈꾸는 그녀의 삶은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이런 현실이 내 마음에 무겁게 다가왔다. 이렇게 나 자신을 돌보는 실천을 통해, 내 마음의 방을 지키고, 내 에너지와 시간을 가치 있는 곳에 쓰려한다. 더 이상 필요 없는 관계에 나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로 했다.
작년에 몇 번 시도해 본 결과, 이제는 어느 정도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의 방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어떻게 입구에서 걸러낼지에 대한 기준이 조금씩 확실해졌고, 책에서 말하는 'Training Your Doorman'의 개념과 실천 방향도 점차 명료해졌다.
이제 다음 단계는, 이미 내 마음의 방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솎아낼지에 대한 문제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