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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가는 인연, 마음의 변화

신뢰와 경계 속에서, 인간관계를 재정비하는 과정

by 해피걸

타이틀: 끝나가는 인연, 마음의 변화

부제: 신뢰와 경계 속에서, 인간관계를 재정비하는 과정


독자분들께, 마음의 방 정리: 남길 사람과 떠나보낼 사람Ⅰ편에 대한 2편을 쓰고자 합니다.

continued.


아이샤가 문을 두드렸다.

한 손에는 버섯 한 판이 들려 있었다.

“나 들어가도 돼?”
“아니, 나 지금 바빠.”

실제로 미루는 습관을 고치지 못해서 연재 브런치 글의 마감이 2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 너 버섯 필요해?”
“아니, 안 필요해.”
“너 버섯 먹잖아.”
“먹어. 그런데 지금은 안 먹고 싶어. 먹고 싶으면 내가 가서 살게.”

끝나가는인연마음의변화신뢰와경계속에서인간관계를재정비하는 과정8.jpg 니들 슈퍼마켓에서는 유통기한이 당일인 제품들을 한 판으로 모아 1파운드 50펜스에 판매한다. 아마도 오늘은 버섯을 전부 모아서 한 판으로 만들어 판 것 같다.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계속해서 내가 버섯을 받길 원했다.
“그럼 한 개라도 가져가.”
“한 개도 필요 없어.”

그러자 그녀는 말했다.
“너, 저번에 우리 아들이 학교에서 필요하다고 해서 내가 와서 물어봤을 때, 너 3개 줬잖아. 그러니까 한 개라도 받아.”


하아ㅠㅠ 나는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녀는 꼭 주고받음이 이루어져야 하는 사람이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려는 사람이었다.

“내가 너희 아들이 학교 수업에 필요하다고 해서 준 거야. 그리고 나는 집에 있으니까 그냥 준 거지. 신경 쓰지 말라고도 했잖아. 기억나?”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화제를 돌리기 시작했다.
“어제 너네 집 앞에 봉고차가 있었고, 남자가 계속 왔다 갔다 하더라.”
“응. 키친에 수도꼭지 물 새는 것 때문에 왔어.”
“그럼 내가 저번에 말했던 우리나라 사람한테 다시 이야기해 줄까?”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그 사람 이미 한 달 넘게 계속 거짓말만 하다가 안 왔잖아. 어제 다른 사람 불러서 고쳤어.”
“그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래. 거짓말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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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화제를 바꾼다.
“너 괜찮아?”
“안 괜찮아.”
“나도 허리가 아파.”
“그렇구나.”
“너희 남편은 잘 있어?”
“잘 있어.”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계속 무언가를 말했다.

사실, 나는 이전에도 그녀에게 우리가 친구가 아닌 ‘좋은 이웃’ 관계로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거짓말을 싫어한다고 분명히 말했고, 자신의 집을 수리하던 방글라데시 출신 배관공이 거짓말을 반복해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알고 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타고난 성향, 자라온 환경, 그리고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인간관계에서 생각하는 방법과 소통하는 방법을 바꾸기가 어렵다. 간혹 있기는 있다.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사람의 경우에는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이 바뀌면 죽는다”는 말처럼 사람은 쉽게 변할 수 없다. 변하기가 어렵다.


나는 결심했다. 그리고 말했다.

“휴우ㅠㅠ그래서 그랬구나. 너는 내가 너희 아들에게 도움을 준 게 고마워서 버섯으로 갚고 싶었구나.

그렇구나. 그런데, 다시 말할게, 너는 그럴 필요 없어. 나는 너한테 뭘 바라서 그런 게 아니야. 그냥 준 거야. 너랑 나랑 만난 지 벌써 1년 6개월이잖아. 내가 너한테 너는 내 친구라고 했잖아.”

“그랬지"

"그런데 어제 왜 배관공이 왔어? 뭐가 문제였어?”

그녀는 또다시 화제를 돌리려 했다.

“수도꼭지 고쳤어. 어제 돈 주고 해결했어.”
“그래. 잘됐네.”


나는 또다시 그녀에게 천천히 설명했다.
“너는 늘 돌려 말하잖아.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바로 말하지 않고 다른 얘기를 꺼내고, 그 의도를 나중에야 알게 돼. 그런데 나는 그런 방식이 너무 힘들어. 나는 늘 직접적으로 말하려고 노력해. 다른 의도도 없고.”

“예를 들어, 네 막내아들은 참 지혜롭고 속이 깊어서 내가 정말 예뻐해. 그리고 그것을 나는 너에게 아주 자세히 몇 번이고 설명해 주었잖아. 기억나?

그래서 우리 딸 간식 살 때 너희 아들이 좋아할 만한 걸 사다 줬어.

그런데 너는 내가 아들이 없어서, 네 아들을 통해 무언가를 채우려 한다고 생각하더라.

그런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도 네 방식대로 받아들이더라ㅠㅠ"


"이런 식으로 내가 너에게 아무리 자세히 모든 것을 설명해 주어도, 자꾸만 네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소통한다면, 나는 너의 의도를 오해하게 되고, 그리고 네 말이나 행동을 계속 의심하게 돼.

나는 그것이 너무 힘들어.

그래서 말이야. 저번에도 말했듯이, 이제 우리, 너와 나는 친구가 아닌, 좋은 이웃으로 지내는 것이 좋겠어."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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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가 깨질 때 드러나는 나의 진짜 모습: 프로이트 이론으로 본 내 안의 심리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아는 거냐'는 질문을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농담처럼 '신기가 있나?'라고 묻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 웃어넘기곤 한다. 사실 그저 살아오면서 다양한 삶의 경험을 쌓아왔고, 그 경험 위에 타고난 뛰어난 직관력이 더해진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상담사들은 이를 두고 '민감도가 높다'고 표현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능력은 단순히 관찰을 넘어선다. 사람을 딱 보면 그 본질을 직관적으로 꿰뚫어보는 힘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대할 때는, 내가 배워온 종교적 믿음 속의 사랑과 수용의 태도를 실천하려 노력한다. 덕분에 나는 사람을 판단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각자의 장점에 집중하려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내 삶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선이 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신뢰가 깨지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변한다. 평소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던 모습과 달리, 나는 본능적으로 상대를 분석하고, 관계를 정리하는 쪽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이는 마치 내 안에서 억눌려 있던 다른 자아가 튀어나오는 듯한 경험이다. 이러한 나의 행동은 프로이트의 자아와 초자아 이론을 통해 흥미롭게 설명될 수 있다.


프로이트의 자아, 초자아, 그리고 나의 행동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 구조를 이드(Id), 자아(Ego), 그리고 초자아(Superego)로 나누어 설명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우리의 무의식과 의식을 조율하며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내 이야기를 이 관점에서 분석해 보면, 내 행동과 선택이 이 세 가지 요소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초자아(Superego): 나를 인도하는 종교적 믿음

초자아는 사회적 규범과 도덕적 기준을 내면화한 부분이다. 나에게 초자아는 종교적 믿음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들이신다는 신념은,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판단을 멈추고 사랑으로 대하려는 태도를 이끌어준다.

평소에는 초자아가 내 행동의 큰 축이 된다. 상대방의 단점보다 장점을 보려 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관계를 유지하려는 태도가 바로 초자아의 영향이다.


2. 자아(Ego): 현실과 초자아 사이에서의 조율

자아는 초자아와 이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초자아가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라고 명령하더라도, 자아는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한다. 나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 신뢰가 유지되는 한 초자아의 지침에 따라 사랑과 수용의 태도를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신뢰가 깨지는 순간, 초자아가 억눌렀던 자아의 현실적 판단이 드러난다. 상대방의 행동과 본질을 직관적으로 분석하고, 내 에너지를 보호하기 위해 관계를 정리하는 선택을 한다. 이는 초자아가 이상적으로 요구하는 "무조건적인 사랑"과는 다른 현실적 대응이다.


3. 이드(Id): 직관과 본능

내가 "직관적으로 사람을 꿰뚫어 본다"는 경험은 프로이트의 이드와 연결될 수 있다. 이드는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욕구와 직관의 근원이다. 신뢰가 깨졌을 때, 초자아가 잠시 물러나고 이드의 직관적인 통찰력이 드러나며 사람을 냉철하게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이 순간, 내 안에서 평소 억눌렸던 감정과 본능이 활발히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끝나가는인연마음의변화신뢰와경계속에서인간관계를재정비하는과정3.jpg 출처: 독서심리치료지도사 2단계 1강: 느루독서심리연구센터 이재연 교육학 박사(상담전공/고려대학교 대학원 아동코칭학과강의전담교수


신뢰가 깨질 때, 자아는 어떻게 작용하는가?

신뢰가 깨지는 순간, 내 행동이 변화하는 이유는 바로 자아가 자기 보호 메커니즘을 발동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자아가 방어 기제를 통해 스트레스와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고 설명했다. 내 경우, 관계를 정리하거나 거리를 두는 선택은 자아가 나의 에너지를 지키기 위해 취하는 방어적 조치다.

이러한 행동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초자아의 이상과 자아의 현실적 판단이 균형을 이루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초자아가 강조하는 "무조건적인 사랑"도 중요하지만, 자아는 나 자신의 한계와 에너지를 고려해 건강한 경계선을 설정한다. 이 과정에서 직관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사용해 사람을 분석하고, 관계를 재정비한다.


사랑과 경계의 균형

프로이트의 이론은 나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초자아의 도덕적 이상과 자아의 현실적 판단이 상호작용하면서,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나를 지키기 위한 경계를 설정한다. 신뢰가 유지될 때는 초자아의 지침을 따르지만, 신뢰가 깨지면 자아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직관과 본능을 활용해 현실적으로 대응한다.


이제 나는 내가 왜 특정 상황에서 직관적으로 날카로운 판단을 내리고 관계를 정리하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냉정하다"거나 "변했다"는 것이 아니라, 초자아와 자아가 현실과 도덕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초자아와 자아, 그리고 이드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심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고 성장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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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물건을 다루는 방식에서 그 사람의 인간관계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물건을 선택할 때 가성비를 중시하는 사람은 인간관계에서도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효율성을 따지고, 필요할 때만 사람과 교류하며,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쉽게 관계를 끊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인간관계를 필요에 따라 소비하고, 상황에 따라 쉽게 바꿀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인다. 반면, 신중하게 물건을 고르고 오랫동안 잘 사용하는 사람은 인간관계에서도 깊이 있는 신뢰와 지속적인 관계를 중시한다. 이러한 사람은 관계를 잘 다듬고 오래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건에 대한 선택이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에 단서를 제공하는 셈이다. 이러한 차이는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는 데 있어 소비 패턴이 단지 물질적 선택을 넘어서, 사람에 대한 사고방식과 관계의 태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시 1: 가성비를 중시하는 사람
한 사람은 물건을 구매할 때 항상 가격과 기능을 따진다. 예를 들어, 그는 휴대폰을 살 때 최신 기능보다는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제품을 선택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인간관계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친구 관계에서도 상호 이익을 중시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에게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관계는 쉽게 끊어버린다. 그에게 사람은 필요할 때만 가까워지고, 관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금방 거리를 두고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 물건을 고를 때 ‘가성비’를 따지는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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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2: 신중하게 선택하고 오래 사용하는 사람
반면, 다른 사람은 물건을 살 때 매우 신중하다. 그는 신발을 고를 때, 기능성뿐만 아니라 디자인, 내구성까지 고려하여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한다. 이 사람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깊이 있는 신뢰를 중요시한다. 친구를 사귈 때에도, 관계가 깊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관계가 형성되면 그 친구를 오랫동안 유지하려고 한다. 그는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신뢰와 소통을 중요시한다.

끝나가는인연마음의변화신뢰와경계속에서인간관계를재정비하는과정7.jpg 영어가 서툴지만, 전문 서적을 읽다 보면 번역본과 원서를 함께 볼 때가 있다. 5년 전, 영국에서 어렵게 구해온 책으로, 가끔 번역본이 헷갈릴 때 원서로 확인한다.

나의 경우, 좋은 물건을 제값을 주고 구입한 뒤, 그것을 잘 관리하여 10년, 20년을 사용하는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도 깊이 있고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관계가 점차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낄 때, 그것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겨우 1년 6개월 동안 친구였던 아이샤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이만큼 힘든데, 내가 낳고 키운 외동딸을 이제 더 이상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으로서 세상에 내보내고, 간섭하지 않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사랑과 '정'까지 끊어내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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