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
Contiued.
타이틀: 잘 키웠고, 잘 자랐네.
부제: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
뛰어가는 릴리의 뒷모습을 보면서, 리가 묻는다.
리: 어디 갈까?
나: 주차는 어디에 했니?
리: 존루이스백화점에 했어.
나:나와의 시간을 얼마동안 가질 예정이니?
리: 나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오늘 날씨가 너무 추워서, 나중에 릴리가 공부 끝나면 나에게 전화한다고 하더라. 집에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아. 있잖아, 나는 우리 집에서 마치 라이더 같아. 이리 오라고 하면 갔다가, 다시 가라고 하면 또 가고, 그런 존재 말이야.
문득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 들었던 몇몇 학부모들의 말처럼, 리도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자녀 교육에 필요한 리서치나 진로 상담을 위한 컨설팅 업체 모임, 이미 졸업한 선배 학부모들과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모임 등을 가지다가, 아이들이 하교하면 집으로 데려와 저녁을 먹인 후, 다시 사교육 현장으로 데려다주는 일들이 반복된다. 물론 국제학교의 학업량이 많아서 평일에는 그다지 할 시간이 없고, 주로 주말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 주중에는 주로 온라인을 통해 교육을 받는 방법도 새롭게 생겼던 것 같다. 물론 나도 우리 집에서 사교육이 허용되었거나 그만큼의 여유가 있었다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 알겠어. 너는 어디 가고 싶은데?
리: 나는 상관없어. 너 가고 싶은 대로가.
나: 이렇게 하자. 릴리도 찾아오기 쉽고, 어차피 주차도 거기에 했으니까. 우리 그곳으로 가자.
존 루이스 백화점은 도시에서 30~40대가 선호하는 곳으로, 주로 중류층 이상의 사람들이 이용한다. 나 역시 이곳을 좋아하는데, 카페가 넓고 테이블 간 간격이 충분해서 대화에 방해받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쟈랄드백화점보다 현대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릴리는 백화점 고객에게 제공되는 포인트가 있다며 오늘은 자기가 사고 싶다고 했다.
카푸치노를 주문하자, 먹고 싶은 조각 케이크도 고르라고 권했다.
나는 점심을 먹고 와서 배가 고프지 않았기에, 네가 먹고 싶은 걸 고르라고 했더니, 역시나 슬림한 체형의 리는 달콤한 케이크보다는 계핏가루가 솔솔 뿌려진 커다란 패스트리를 선택했다.
그녀의 의견대로 햇살이 따스하게 스며드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오후에는 커피를 피해야 하는데, 밤에 잠이 안 와서 늘 문제다. 하지만 어차피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따뜻하고 달콤한 계핏가루가 뿌려진 진한 카푸치노 한 모금이 얼어붙었던 마음을 살며시 녹인다.
‘좋다.’
인연이 있는 사람과 다시 마주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나마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 너는 그때도 지금도 돈을 참 지혜롭게 쓰는 것 같아.
리: 아이고, 절약해야지. 이번에 릴리 등록금이 2,000파운드 더 늘어서 총 22,000파운드를 내야 하거든. 올해부터 영국 정부가 사립학교 등록금에 세금 20%를 부과하고 있어서 더 부담이 커졌어.
나: 그래도 다행이다. 마지막 등록금이잖아. 지금부터 학교 다니는 학생들은 어떡하냐...
리: 맞아,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나: 큰일은 없었어. 남편은 묵묵히 자기 일을 했고, 나는 멘털과 신체가 약한 딸아이를 돌보느라 대학원 공부를 마친 후, 일을 시작하다가 다시 전업주부로 살았지. 그리고 이 늙은 나이에 딸이 대학을 꼭 가겠다고 해서 영국으로 돌아왔어. 그동안 남편과 나는 돈을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낼 돈을 마련하지 못했어. 그래서 다시 돌아온 거야.
사실 나는 딸이 대학에 가기보다는 기술을 익혔으면 좋겠어.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도 내가 등록금을 못 내주는데, 딸은 최소 1억 이상의 학자금 대출을 지게 될 거야. 게다가 그게 기술직 전공도 아닌 문과 쪽이라서 반대하는데, 본인은 꼭 가겠다고 하네.
남편도 딸이 빚을 지게 될지라도 본인이 꼭 대학에 가고 싶어 하니까, 응원해 주자고만 하네.
리: 그렇구나. 그런데, 왜 너희 딸은 한국에서 영국으로 왔잖아. 딸은 영국 학교에 잘 적응했어?
나: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 특히 교육 환경의 차이로 인해. 영국 공립학교는 공부를 거의 안 하잖아. 시끄럽고, 가정환경이 열악해서 인종차별도 있었고, 극과 극인 교육 환경이 정말 힘들었지. 다행히도 인성이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잘 적응했어.
리: 다행이다. 딸은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할 예정이야?
나: 법학.
리: 전공을 잘 고른 것 같네.
나: 아니야. 사실 딸은 법학보다는 다른 재능이 있는데, 그걸 굳이 법학으로 가겠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그렇게 하라고 했어. 나는 딸이 인생을 조금 더 돌아갈 것 같아. 직진할 길이 있는데, 자칭 진로전문가라는 내 말을 안 들어. 아마도 딸에게는 전업주부로서 나를 인식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어. 밥 하는 전업주부...
리: 제발, 그렇게 생각하지 마.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ㅠㅠ.
나: 너무 우울한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네 얘기를 듣고 싶어. 릴리는 저번에 네가 나에게 간단하게 말한 것처럼 엔지니어링을 전공한다고 했지? 학교는 영국의 공대중 엔지니어링으로 최상위권 대학 두 곳에서 오퍼를 받았다고 했었지? 어디로 갈 거라고 하니?
리: 나는 조금 학문적인 곳으로 갔으면 하는데, 딸은 런던에 가까운 곳으로 가겠다고 해.
나: 그렇구나. 엄마와 딸의 마음이 다를 수도 있지.
가만히 다시 생각해 보니까, 아무래도 런던과 가까운 곳이 더 좋지 않을까?
그 도시는 다양한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고, 역동적인 도시잖아. 그리고 런던과 가까우니까 대학 공부하면서 방학 때 짧은 인턴을 하면서 실무 기술도 더 익힐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을 것 같고...
나: 쓸데없는 말을 했군. 미안해.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도시는 어쩌면 노는 문화가 있다 보니까, 어쩌면 학문에만 매진할 때 조금은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군.
리는 나의 말에 빙그레 웃는다. 나는 그런 그녀의 얼굴이 좋다.
또다시 화제를 돌려, 리와 그녀의 남편의 삶에 대해서 물었다. 리의 남편은 컴퓨터공학 박사 과정을 마친 후, 런던의 소프트웨어 회사에 입사했다고 한다. 몇 번의 이직을 거쳐 최고의 개발자로 올라섰고, 지금은 개발자이자 관리자로서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아일랜드를 오가며 시스템 구축을 위한 출장을 다닌다고 했다. 코로나 시기에는 모두 재택근무를 했지만, 팬데믹이 끝난 후에는 일주일에 두 번 런던에 내려가서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재택근무를 한다고 한다.
리 역시 대학교에서 풀타임으로 일을 하다가, 남편이 개발자로서 가족과 딸아이의 사립학교 학비까지 다 부담할 만큼 수입을 벌어들이게 된 후에는 파트타임으로 전환했다. 승진도 하고, 이제는 일주일에 두 번만 일을 다니고 나머지 시간에는 취미생활과 집안일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남편도 성공했고, 자신도 성공했고, 딸 역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조화롭게 각자의 커리어를 쌓으면서도, 가족 모두가 함께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그리던 삶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나이 40대 중반도 되기 전에 완벽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오며, 그 목표를 이루어냈다.
10년이 지나, 그녀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마치 이모가 성공한 조카딸의 삶을 듣는 그런 기분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리의 전화기가 울렸다.
릴리로부터 온 전화였다. 릴리는 공부를 다 마쳤고, 이제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리는 어차피 백화점 주차장에 주차해 놓았으니, 우리가 있는 카페로 오라고 말했다.
10분쯤 지나서였을까? 릴리는 차가운 바깥바람 냄새를 풀풀 날리며, 바쁘게 카페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우리가 먹다 남긴 시나몬 패스트리를 북 찢어 한입에 쑤셔 넣고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배가 많이 고팠냐고 물었더니, 릴리는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인지, 당이 떨어진 것 같아요"라며 귀엽게 말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나: 그래. 공부 많이 했니?
릴리: 그럼요. 거의 다 끝냈어요. 거의 완벽하게 끝내 가는 중이에요.
나: A레벨 시험까지 아직 4달이나 남았는데, 벌써 다 끝냈다고? 정말 대단하네.
릴리: 아니에요. 우리 학교 애들이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지 모르시죠. 저는 보통이에요.
나: 그렇구나. 이미 오퍼도 받아 놓았다고 했잖아. 지금 실력이라면 당연히 들어갈 수 있고, 그런데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
릴리: A레벨 점수가 잘 나오면, 캠브리지 대학에 지원하거나, 아니면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서요.
릴리의 얼굴이 상기됐다. 차가운 바깥공기에서 벗어나 따뜻한 실내에 들어오면서 얼굴에 묻은 추위가 녹아내린 것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그녀가 자신의 찬란한 미래를 떠올리며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기대감에 얼굴이 붉어졌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 어떤 이유든, 릴리의 얼굴에는 건강한 청춘의 자신감과 포부가 묻어났다.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그렇게 내성적이었던 릴리가 어쩌면 이렇게 활발하고 외향적이며 진취적인 모습으로 변했을까?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나: 릴리, 너 어렸을 때 굉장히 차분한 아이였잖아? 뭐가 너를 이렇게 바꾸게 만든 거야?
릴리: 맞아요. 그때는 정말 내성적이었고, 부끄러움도 많이 탔죠. 그런데 제가 남녀공학이었던 Norwich School에 다니면서 많이 달라졌어요. 그곳의 분위기가 그런 영향을 주었죠. 확실히 여자학교가 아닌 남녀공학을 선택한 게 잘한 일인 것 같아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의 얼굴에는 딸을 향한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집까지 데려다준다는 리의 제안을 거절한 후, 나는 몇 가지 한국음식을 구입해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생각에 잠겼다.
뚜벅이로서 무거운 구입한 한국음식을 배낭에 잔뜩 메고 오는 초라한 노인여자의 모습이 처량할 때가 대부분인데, 그 대신 버스를 타면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나와 딸이 릴리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녀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한국에서 모처럼 영국으로 시어머님을 보러 온 우리들이 자신들을 보러 왔다면서, 리는 우리에게 손수 베트남 음식인 스프링롤(Spring Roll)을 만들어 주겠다며 집으로 초대했다.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릴리는 옆에서 구몬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인 나의 딸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릴리는 거실 한쪽에서 차분히 집중하며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때, 영국에서는 교육열이 높은 부모들은 심지어 5살부터 구몬수학학습지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가격이 한국보다 약 4배는 비쌌던 것 같다.
내 옆에 있던 딸이 릴리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 다가갔고, 말을 건넸다.
그때, 릴리는 단호하게 “지금 이 문제 풀고 있으니까, 다 풀고 이야기하자”라고 말한 후, 계속해서 문제 풀이에 몰입했다.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딸은 조금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나에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딸은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공부를 잠시 내려놓고 친구와 대화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확신했다. ‘애는 뭔가 될 것 같은데...’ 마치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속담처럼. 릴리는 그렇게 잘 자랐고, 리와 남편은 자신들이 부모에게 받았던 지원을 그대로 자녀에게 물려주고 있었다. 부모의 사랑과 헌신이 고스란히 이어지는 모습을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시간은 오후 5시를 막 넘겼지만, 밖은 이미 한밤중처럼 어두웠다. 이런 긴 겨울밤도 봄이 되면 점점 나아지겠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40대 폴란드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 앞을 지나쳤다. 그의 아들도 릴리가 다녔던 사립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수학을 특히 잘한다고 들었는데, 문득 딸의 친구 오빠가 떠올랐다. NLCS 출신의 영재급 학생으로, 그 역시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에서 공부했었다. 아마도 지금쯤은 이미 졸업하고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지도 모른다.
외국인으로서 영국에서 자녀 교육과 본인의 삶을 모두 성공적으로 일궈낸 사람들. 그들의 노력과 성취를 떠올리니, 마치 정교하게 다듬어진 예술작품을 보는 듯한 감탄이 밀려왔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