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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NHS 물리치료 서비스

Unexpected day-예상 밖의 하루

by 해피걸

타이틀: 영국 NHS 물리치료 서비스
부제: Unexpected Day – 예상 밖의 하루


예상치 못한 하루, NHS 물리치료 상담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목디스크 통증으로 NHS 물리치료 상담을 받게 되었다. 이 과정이 참 길었다. 처음 GP와 상담한 후, 물리치료사와의 이니셜 상담까지 약 2개월, 그리고 오늘 대면 상담까지 총 6개월이 걸렸다. 드디어 중요한 날이 왔다.


병원까지 가려면 왕복 네 번의 버스를 타야 했다. 한 번에 편도 2.40~2.80파운드, 하루 종일 이용할 수 있는 원데이 티켓이 6.50파운드. 당연히 원데이 티켓을 선택했다. 느긋한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시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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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버스는 평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알고 보니 전기 회사에서 주요 도로에서 광선 작업을 진행 중이었고, 공사 구역이 하필이면 시티 중심 버스 정류장 앞이었다. 그곳은 대부분의 버스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핵심 정류장이었는데, 갑작스러운 공사로 인해 모든 버스가 우회하게 된 것이다.


요즘 내가 사는 도시는 5G 광선케이블을 깔기 위해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고, 이 공사는 대부분 학생들이 방학하는 기간에 진행된다. 물론 다른 곳도 있지만, 시티의 가장 중심점인 이곳은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알고 보니 벌써 3일째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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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다

정류장을 놓쳤다. 원래 내려야 할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내려버린 것이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급히 구글 지도를 켜서 새로운 정류장을 찾아봤지만, 이상하게도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보통 버스정류장은 한 줄로 쭉 늘어서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여기는 그 정류장이 보이지 않았다.


정류장을 찾아 헤매며,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때 형광색 조끼를 입고 걸어가는 기사님이 보였다. 공사장에 자주 볼 법한 그 조끼를 입고 계셨다. 나는 급히 구글지도를 보여드리며 물어봤다. "이 버스정류장이 어디인가요?" 그분은 막스앤스맨스 옆에 있는 정류장을 알려주셨고, 그제야 지도를 자세히 보니 그곳이 보였다.


정류장을 찾긴 했지만, 문제는 버스의 배차 시간이었다. 이 버스는 30분 간격으로만 운행되기 때문에, 그때부터 걱정이 밀려왔다. "이러다 예약 시간에 늦겠네..." 마음속으로 계속 불안한 생각이 들었고, 그때 택시정류장에서 택시기사님을 만났다.


기사님께 병원까지 가는 비용을 물었더니, "그 병원이 어디에 있냐?"라고 되물으셨다. "이곳을 모를 리가 없는데..." 생각해 보니 그는 동유럽 출신처럼 보였다. 영국에선 동유럽과 서유럽에서 온 이민 노동자들이 많다. 기사님은 "병원까지 겨우 4분 정도인데, 10파운드"라고 했다. 잠깐 고민했다. 원데이 티켓을 사지 않았다면 아마 택시를 탔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잠깐 생각해 보고 올게요"라고 말하고, 다시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부디 버스를 놓치지 않기를!’ 간발의 차로 버스를 탈 수 있었고, 무사히 병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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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원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 가족은 시아버님께서 말기 췌장암 진단 및 이에 대해 향후, 어떻게 남을 생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의논하던 곳이었다.


우리는 그로부터 3개월 만에 60세의 시아버님을 잃었다. 그날의 기억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아픔으로 남아 있다.


영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이 병원을 두 번째로 찾았다. 이번엔 물리치료 상담을 받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 방문은 피검사를 받기 위해서였기에, 병원에 들어설 때마다 떠오르는 복잡한 감정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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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셉션 앞에 서자, 아프리카계 중년 여성이 리셉션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직원은 70대 가까운 봉사자였고, 대화는 어딘지 어색하고 매끄럽지 않아 보였다. "병원에 오셔야 할 날짜는 어제였어요. 그런데 오늘 오셨군요." 직원의 말에 아프리카 여성은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입구를 자꾸만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나는 속으로 그 여성을 도와줘야 할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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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여성의 남편이 입구로 들어왔다. 그는 아내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조용히 말을 건넸고, 중년 여인은 그 말에 순순히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그들의 상황이 내 상황과 겹쳐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이 여성은 영국에 이민 와서 아기들을 키우느라 영어를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남편에게 의지하며 살고 있을 터. 그 모습이, 내게도 낯설지 않은 감정으로 다가왔다. 나는 언어적으로는 독립적이지만, 경제적으로 여전히 남편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내 마음 한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여성의 모습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나는 잠시 그들만의 이야기에 고요히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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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치료사 Dan과의 상담

물리치료사와의 상담은 예상보다 훨씬 부드럽고, 깔끔하게 진행되었다. 그는 먼저 통역 서비스가 필요한지 물었고, 나는 이전 상담에서 한국어 통역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실상은 전화통역이었다. 그래서 굳이 통역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대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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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리 영어로 정리해 간 디스크로 인한 증상과 통증 정도를 적은 메모 덕분에, 그는 나와의 소통이 훨씬 원활해졌다. 그는 내 메모를 빠르게 읽고, 시스템에 저장된 정보를 확인하며 치료 계획에 대해 논의했다.

나는 그에게 상담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고, 그는 상담 시간이 45분이라고 답해주었다.

그는 내가 한국에서 받았던 치료는 NHS에서는 제공되지 않는다고 했다. 만약 내가 원한다면, 비용을 지불하고 프라이빗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오늘은 어떤 치료를 받나요?"

그는 오늘은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고, MRI 결과를 바탕으로 통증 완화 방법을 논의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치료는 사람마다 다르게 진행되지만, 오늘은 첫 번째 단계라고 말했다. 원래는 1~2회에 걸쳐 진행될 상담이었지만, 내가 미리 증상을 정리해 온 덕분에 빠르게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역이민 생활을 1년 6개월 했더니, 나만의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는 몇 가지 기본적인 검사를 진행한 후(대부분 머리를 왼쪽, 오른쪽, 뒤로, 앞으로 돌리며 어느 정도의 통증이 느껴지는지 확인하는 정도였다), 나의 통증 원인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오랫동안 목디스크로 왼쪽 근육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근육이 굳어지고, 그로 인해 통증이 심해졌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회기에는 간단한 마사지를 시연한 후, 그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예약을 잡아야 했지만, 본인이 휴가를 가야 해서 3주 후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만약 더 일찍 상담을 받고 싶다면, 그때는 다른 물리치료사를 소개해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굳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설명하는 것보다, 이미 나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 그와 계속 치료를 받는 게 더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고마워하며 내 말을 받아들였고, 3주 후에 다시 만나자며 그때까지 매일 조금씩 오늘 가르쳐준 목 돌리기, 어깨 돌리기 등의 간단한 체조를 꾸준히 하라고 당부했다.


Dan은 30대 초반의 친절하고,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문적으로 설명해 주는 물리치료사였다. 덕분에 우리는 45분이라는 상담 시간을 서로 협력하며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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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치료 상담을 마친 후, 나는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구내 카페에 잠시 들러 요즘 읽고 다시 읽고 있는 소설 The Devil and Miss Prym의 마지막 부분을 읽은 후, 집으로 돌아오는 이층 버스에 올랐다.


어릴 적 경험, 그리고 오늘의 깨달음.

이날의 경험은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중요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던 때였다. 시험 장소를 미리 확인하지 않았고, 결국 시험을 보지 못했다.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이었기에, 그날의 실수는 큰 후회로 남았다. 그 사건 이후로 중요한 약속이나 일정이 있을 땐 항상 철저하게 준비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오늘 나는 철저하게 준비했었는데...


오늘도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 우왕좌왕했지만, 중요한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중요한 약속이 있을 땐 장소와 교통 상황을 사전에 체크할 것

공사나 돌발 상황에 대비해 여유 있게 출발할 것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침착함을 유지할 것

비록 오늘은 당황스러운 순간이 많았지만, 덕분에 나는 또 한 번 배웠다. 삶은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도 준비하고 적응하는 또 다른 방법들을 익혀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준비하고 적응하더라도, 여전히 삶의 여정 속에서는 또다시 예기치 않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길을 잃고, 허둥대고,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운 좋게 버스를 가까스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또한,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영국의 NHS 물리치료 서비스일지라도, 그 안에서 Dan과 같은 좋은 물리치료사를 만나 그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나의 노력으로 아마도 목디스크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이 지독히도 고되고, 모든 것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그리고 진심을 담아 나아간다면, 결국에는 어두운 밤하늘 속에서 작은 별 하나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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