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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보일러 수리, 돈도 중요하지만 신뢰는 더 중요하다

비싼 수리비보다 더 큰 문제, 신뢰가 깨지는 순간

by 해피걸

타이틀: 영국 보일러 수리, 돈도 중요하지만 신뢰는 더 중요하다.

부제:비싼 수리비보다 더 큰 문제, 신뢰가 깨지는 순간


일주일 전, 보일러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았지만, 당장 작동에는 문제가 없어서 그냥 두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겨울철 보일러 수리를 요청하면 최소 일주일, 길게는 2주 이상 걸릴 때가 많다. 게다가 수리비는 한국보다 4~5배 비싸고, 부가가치세도 20%나 붙는다.


그러던 중, 일주일 전 보일러의 압력이 떨어져 물을 채우려 했는데, 레버가 뒤로 열리지 않았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밀 수가 없어 결국 지인의 남편에게 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도구를 사용해 힘껏 밀자 보일러가 열렸고, 물을 채우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인의 남편이 실수로 물을 너무 많이 채워버린 것이었다. 본인의 보일러도 같은 방식으로 사용 중이라 괜찮을 거라고 했고, 에러 메시지도 뜨지 않았다. 또한, 요즘 보일러는 자체적으로 안전장치가 있어 일정 이상 압력이 올라가면 자동으로 막아준다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계속 마음이 쓰였다. 보일러 내부 안내서에는 게이지가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업체에 연락해야 한다고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3월 이후에 전체 점검을 받을 계획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버렸다.


하아...ㅠㅠ 남편이 있었으면 이런 일도 덜 힘들었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곁에 없다. 차라리 한국이었다면, 제주 영어교육도시의 친절한 귀뚜라미 전담 기사님께 전화 한 통이면 금방 해결될 텐데…ㅠㅠ


결국 보일러 수리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이 업체는 우리 집 보일러를 설치한 곳이자, 오랫동안 정기 점검과 수리를 맡아온 곳이었다. 임대인의 집을 관리하는 부동산 업체와 계약을 맺고 렌트한 집들의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회사라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가격이 비싸긴 해도, 그래도 신뢰할 수 있는 곳이니까.


업체 측에서는 라디에이터에서 물만 빼는 아주 간단한 작업이라며, 직접 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보일러나 라디에이터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제가 잘할 자신이 없는데, 출장비를 내면 와주실 수 있나요?"

65파운드에 부가가치세 20%를 추가로 내야 한다고 했다.

역시 돈이 최고다.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은 없다.

결국, "그럼 비용을 드릴 테니 와주세요." 라고 요청했다. 단순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고, 대입을 앞둔 딸이 보일러 문제로 신경 쓰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리 기사가 도착해 물을 빼던 중, 내부에서 누수가 발생하고 있다며 부품을 주문해 수리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설프게 내가 시도했다가 누수를 놓치는 것보다, 미리 문제를 발견하고 고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후 또 이틀을 기다린 끝에, 고장 난 부위의 수리와 이전 출장비 결제, 키친에 있는 라디에이터 점검, 그리고 보일러를 분해해 전체 기기의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점검 서비스를 요청했다.

그리고 마침내, 총 507파운드(한화 약 93만 원)의 견적서를 받았다.

제기랄!


그래도 어쩌겠나. 결국 수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고, 다시 이틀 뒤 기사가 와서 본격적인 수리와 점검을 시작했다.

참고로, 보일러 전체 점검 서비스 비용은 부가세 포함 약 20만 원 정도다. 이 서비스는 부품의 수명을 점검하고, 앞으로 교체가 필요한 부품까지 미리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점검을 마친 후, 수리 기사는 추가로 270파운드(한화 약 50만 원)가 더 들 거라고 했다. 당장 교체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1년 안에는 교체를 고려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93만 원의 수리비를 지불해야 하고, 추후 또 50만 원을 들여야 한다면, 차라리 새 보일러를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일러 가격은 모델에 따라 다르지만 140만~200만 원 선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단 전체 새롭게 보일러를 교체하려면 설치비가 약 2백이 넘는다. 결국 보일러 1개 설치하는데 최소 5백은 잡아야 한다. 살인적인 영국 수리비와 인건비 그리고 부가가치세다.


하지만 나를 정말 실망시킨 것은 비용보다도 업체의 태도였다. 보일러 온도 조절 손잡이가 고장 났다며 교체해야 한다고 했는데, 왜 멀쩡한 손잡이를 바꿔야 하냐고 묻자 기술자는 "그냥 돌렸더니 뚝 하고 부러졌다."라고 답했다.

기계적인 고장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업체 측 실수일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부품을 따로 주문해 추가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일단 지금까지의 수리비 507파운드를 결제하고, 추가로 필요한 부품 교체는 남편과 상의한 후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망가진 손잡이만 먼저 고쳐주실 수 있나요?" 하고 물었더니,

"손잡이 하나만 고치겠다고요? 지금 뜨거운 물 온도를 올려야 할 이유도 없는데?" 굳이 하겠다면 자기네가 부품을 주문해서 와서 끼우기만 하면 되는, 1초면 끝나는 일. 하지만 출장비와 부품비를 포함해 적어도 20만 원 정도가 들 예정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었다.

결국, 아예 다른 부품을 수리할 때 한꺼번에 하라는 뜻이었다. 물론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나는 당장 50만 원을 또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저씨, 저 부자 아니에요ㅠㅠ. 제기랄!"

내가 보기엔 멀쩡했던 손잡이가 고장 났다. 물론, 나는 기사님을 의심한다. 왜냐고? 옆의 손잡이는 멀쩡하니까. 아무래도 손잡이를 돌릴 때 힘이 조금 들어갔고, 그 충격으로 바닥에 떨어지면서 뒷부분이 깨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업체 측은 결국 '그냥 곧 수리를 진행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식으로 말했다. 제기랄!

90만 원이면 한동안 보일러 걱정은 안 해도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산 넘어 산, 바다 건너 바다였다.

아...ㅠㅠ 너무 싫다. 남을 의심하는 것도 싫고, 벌지도 못하는데 돈은 계속 나가고...ㅠㅠ.


그렇게 수리가 끝난 후, 기사님은 다음 날 보일러 점검 확약서와 결제 정보를 담은 인보이스를 이메일로 보내주기로 했지만, 연락이 없었다.


결국, 월요일. 기다리다 못한 나는 다시 전화를 걸어 거듭 결제 의사를 밝혔고, 그제야 인보이스를 보내면서 "추후 교체해야 할 부품 수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물론, 그는 기사님이 아니라 업체 담당자였다.

나는 "지금 당장은 돈도 없고, 급하게 수리할 필요도 없으니 나중에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이번 견적이 즉시 수리를 전제로 산정된 것이며, 나중에는 가격이 더 오를 수도 있다고 압박했다.

듣고 보니, 그는 수리 기사가 아니라 고객 상담을 담당하는 직원 같았다.


정작 돈을 내는 건 나인데, 왜 오히려 저쪽이 더 힘을 주고 있는 거지? 뭐지? 순간, 내가 기계를 잘 모르는 여자라서 이런 대우를 받는 걸까? 남편이 없어서 만만하게 본 걸까? 남편에게 이 업체 이야기를 하자, "원래 이 업체는 수리비가 터무니없이 비싸다"며 실망스러워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혹시 바가지를 쓴 걸까? 믿고 맡겼던 업체였는데, 이번 일로 그 신뢰가 흔들렸다. 나는 원래 여러 업체의 견적을 비교하며 가성비를 따지는 성격이 아니다. 단순히 "전문 업체니까 믿는다"는 생각으로 맡겼지만, 이제는 그 신뢰도 의심하게 됐다.


결정적으로, 인보이스를 받아보니 "즉시 전체 금액을 입금하라"는 문구와 함께 "입금이 늦어질 경우 하루당 5%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보이스였다. 마치 '어차피 돈을 낼 수밖에 없는 고객'으로 취급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영업사원이 고객이 물건을 살 수 없게 되자, 그 순간 관심을 끊어버리는 느낌이랄까?

정작 돈을 내는 건 나인데, 왜 나는 을이 되어야 하지? 평생 이런 식으로 사람들과 맞서야 할 일이 적었던 탓일까? 혹시 나는 너무 순진하게,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온 걸까?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쳤다.


이 사건을 통해 깨달았다. 돈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신뢰할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소비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단순히 "전문 업체니까 믿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강해진다.


참고로, 키친에 있던 라디에이터가 잘 작동되지 않아 점검을 요청했는데, 원인은 단순히 온도 조절 다이얼이 걸려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나는 처음 기사가 왔을 때부터 "작동은 되지만 시원찮다"라고 이야기했었다. 아마도 그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겨우 2분짜리 일이었음을... 물론 직접 묻지는 않았지만. 기사는 "유튜브를 보면 방법이 나온다"며 단 2분 만에 문제를 해결한 후, 75파운드(약 13만 원)를 청구했다. 이번에는 정말 바가지를 확실히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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