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식이 희소식
한 달 전, 대상포진의 재발로 인한 통증이 나아지지 않아서 의사를 만났다.
그때, 그녀는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통증이 있을 때마다 진통제(약국에서 구입해서)를 먹거나,
아니면, 자신이 처방해 주는 크림이 도움은 안 되겠지만, 통증이 있는 부위에 바르라고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통증이 개선되지 않으므로(극단적으로 말해서 이곳은 2~3달 넘게 증상으로 시달려야만 피검사를 받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음) 지속적인 통증의 원인을 알아보자며, 피검사를 하도록 조치해 주었다.
영국에서는 일반동네의 의사가 허락을 해야만 간단한 피검사도 받을 수 있다.
나는 피검사를 하기 위하여 리셉션에 가서 예약 날짜를 잡았다.
보통 2주 후에 예약을 해주는데, 일주일 후에 오라고 하였다.
웬일로 빨리 잡아주지? 하면서도 운이 좋은가 싶어서 예약한 날짜에 갔더니,
제기랄, 리셉션리스트가 말하기를,
피 뽑는 간호사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피검사날짜를 2주 후로 미루어버렸다고 했다.
제기랄! 이유를 물었더니, 컴퓨터 스크린을 본 리셉션니스트는 이유는 적혀 있지 않다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2주 후로 밀리면, 의사가 오더를 내린 후 총 3주를 기다려서 피검사를 하게 되는 꼴이라며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받을 수 없느냐고 간청했다.
착하고 예쁜 리셉션니스트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일주일 후에 오라고 한다. 단 시간은 2시 10분에만 자리가 빈다면서 올 수 있느냐고 했다.
아마도 일하는 사람들이 이 시간대에는 예약시간이 되어도 올 수 없기 때문에 한자리가 비었는가 보다.
그래서 GP는 의사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집 가까운 곳에 등록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피검사를 하러 올 때, 주의사항이 있는지, 예를 들면 금식이나 복용하는 약을 먹고 오지 말아야 한다는 등등... 리셉션사무실 안에 계시는 간호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영국의 경우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굳이 말해주지 않는다고... 그냥 오라고, 금식도 필요 없고, 먹는 약도 그냥 먹고 오라고 했다.
영국에서는 한국의 병원시스템처럼, 의사가 오더 내리면, 즉시 피검사 예약을 잡고, 하루이틀 만에(금식이 필없는경우에는 바로 그날 ) 피검사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혹시라도 금식이 필요할 때에는 피검사를 하기 전에 주의해야 하는 것과 음식, 금식상황들을 친절하게 말해주고, 그것도 모자라서 상세한 내용이 적힌 종이까지 손에 쥐어주곤 하는데...
그동안 나는 한국에서 너무 편하게 살았었다.
이른바 1st Class Service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이곳의 방식이 아주 불편하고 생소하다.
물론, 한국은 돈을 내야 하고, 이곳은 무료이므로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라며 마음을 다스리지만, 번번이 성질 급한 성격 때문에 속에서 열불이 날 때도 많다.
어렸을 때부터, 성치 않은 몸으로 여기까지 살아오다 보니, 병원은 이름만 들어도 벌써 우울하게 만드는 뭐 그런 곳이다. 그런데, 서비스까지 형편없으면, 그놈의 짜증을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혹시라도 예약날짜를 놓칠까 봐서, 큰 글씨로 벽에 붙여 두기까지 했다.
자칫 예약날짜를 놓치면, 또다시 2주를 걸려서 피검사를 받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나는 GP(동네의원이라고 부르겠음)에 가서 간호사를 만났다.
간호사방에 들어서자, 그녀는 자신의 이름은 "레슬리"라며 소개를 했고, 오늘은 평안한 지 물었다.
9월에 본 의사는 ㅅ젊은 여성이었는데, 이번에는 50이 다 되어가는 성숙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간기능부터 시작해서 약 10개 정도의 검사를 시행하기 위한 피검사라며, 무슨 검사를 하느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진료 보는 의사가 이야기해 주는데, 저번에 의사에게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간호사에게 물었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고, 차분했으며(이곳은 의사만큼 간호사도 바쁨) 그녀의 목소리는 안정적이었고, 얼굴 역시 온화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전에 본 다른 간호사와는 달리(아무래도 그녀는 40대였던 것 같음), 그녀의 목소리와 얼굴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뭐 그런 특별한 무언가가 깃들어 있었다고나 할까???
나는 속으로 간호사라는 직업이 참 좋을 것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보통 한국의 종합병원에 가면,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간호사들이 주로 피를 뽑는 경향이 있다.
그런 모습에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 마치 삶의 연륜이 느껴지는 간호사를 만나게 되자, 나의 불안하고 불편하고 짜증 나는 뭐 그런 힘듬으로 떨고 있는 나에게 마치 괜찮아질 것이라는 듯한 위안을 안겨주었다고나 할까?
영국의 역이민 생활이 너무 힘들다 보니, 주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전쟁터 같은 치열했었던 6개월 동안의 영국역이민생활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여전히 되고 있다 보니, 자꾸만 과거로 회귀하는 습관이 생겼다. 심리적으로 안정적이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않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렇게 피를 뽑은 후, 그녀는 이야기했다.
결과는 다음 주에 나오게 될 것이다.
만일 다음 주에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하면, 문제가 없는 것이니까, 좋은 일이라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것이다.
보통 영국에서는 피검사를 한 후, 결과는 일주일~이주일사이에 나온다.
만일 결과에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만 동네의원(GP)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다.
그러나 연락이 없으면, 좋은 소식인 셈이다.
단, 나와 같은 경우에는 아직 문제의 원일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만일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피검사 결과가 궁금하면, 내가 직접 동네의원에 가서 물어보아야 한다.
아이쿠 ㅠㅠ 글을 쓰다 보니까, 이제야 내가 가서 물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두었는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