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이놈의 90년 된 삭정이 집수리로 인하여, 남편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시차적응을 할 시간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전날까지 집수리를 해야만 했다.
제기랄! 돈 안 벌고 뭐 했지ㅠㅠ.
그놈의 소명이고 뭐고 간에 나부터 살았어야 했는데ㅠㅠ. 당장 지극히 높으신 그분으로부터 천둥번개 맞을 소리 하고 앉았다.
남편은 집 근처에 있는 공항으로 입국했다.
3번의 비행기를 갈아타고서ㅠㅠ.
비행기 시간이 오후 5시였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공항 근처에 있는 늦은 점심을 먹은 후, 비행기에 오르라고 했다.
나와 남편은 연애기간을 합치면 족히 25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한 탓에, 서로에 대한 애틋함은 오래전에 사라지고, 마치 동지애 같은 뭐 그런 감정만 남아 있는 늦은 중년의 부부로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날에는 극 T인 나도 감성적으로 변했다.
식사를 마친 후, 음식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 마음도 우중충한데, 공항 가는 길은 더 심란했다.
도대체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녀의 교육 때문에 가족이 떨어져 지낼 것이라고는 평생 꿈꾼 적도 없었는데... 도대체 경제관념이 얼마나 없는지, 심지어 나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사업가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뭔 정신으로 살았는지... 속으로 나 자신을 엄청 탓하고 있었다.
남편은 말 많은 내가 입을 다물고 묵묵히 옆에서 걷고 있자, 조금 불편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남편: "당신 왜? 아무 말 안 해?"
나: " 나 생각 중이야."
남편: "아~ "
한마디만 한 후, 평소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도 내가 말을 하지 않자, 그제야 묻는다.
남편: "당신 왜? 그러는데?"
나는 숨을 한번 크게 쉰 후,
나:"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고ㅠㅠ. 당신은 한국에 나는 딸과 이곳에ㅠㅠ. 이게 말이 되냐?"
남편: "그래도 당신은 괜찮잖아. 딸과 함께 여기 있으니까?"
나:"뭔 소리야?"
남편:"당신은 딸과 함께 있으니까, 외롭지 않잖아"
나:"당신 외로워?
나:"당신은 일중독자잖아. 외로울 틈이 없는 사람이잖아?"
남편: "응, 가끔 외로워. 주말에는"
나: "힘들어?"
나:"이렇게 가족이 떨어져 있는 것은 상상도 못 했는데, 도대체 뭔 짓을 하고 있는 건지ㅠㅠ"
남편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몇 분 간의 침묵이 지난 후,
남편:"근데, 가끔씩 외로운데, 그래도 같이 있으면서 돈돈돈 거리면서 싸우는 것보다는 나아."
갑자기, 누군가 망치로 머리를 때린 것 같다고나 할까?
뭐지?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마음 같으면 "야, 네가 하자는 대로 했잖아. 내가 번번이 경제적으로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할 때마다, 도움은커녕 황소고집부리면서 하지 않겠다고 버틴 사람은 누군데? 만일에 내가 하자는 대로만 했어도, 내가 너에게 돈돈돈 거렸겠니? 내가 돈돈돈 거리는 사람이었다면, 내가 너를 선택해서 결혼을 했겠니? 너 바보니?"
하려다가 조금 있으면 떠날 남편에게 굳이 그런 말까지 하고 싶지 않아서 참았다.
또다시 입을 다문 나를 보며, 남편은 불편했는가 보다.
공항에 도착한 후, 보딩시간이 아주 한참 남았는데도, 조금은 어색한 인사를 나눈 후,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마치 무슨 잘못을 한 사람처럼.
그를 보낸 후, 의자에 잠시 앉아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뭐지? 왜 이렇게 되었지? 또다시 왜왜왜 병이 도졌다.
나는 원래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결혼 후, 딸을 출산했고, 시부모님께서 중병에 걸리셨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둘 중에 가장 수입이 많은 사람이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기로 했고, 나는 그때부터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직업인 전업주부의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오랜 시간 살아오다 보니, 어느새 나는 정신적으로 의지박약자가 되어 있었다.
요즘 사회적으로 듣기 좋은 소리로 100세 시대라지만(평균수명은 여자가 81세였던 것 같은데?) 생물학적 나이로는 분명히 나는 노인이다. 제아무리 의료기술이 발전하고, 관리한다고 해도, 출산을 한 여성의 몸은 현실적으로 노인의 몸이 될 확률이 높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채, "같이 있으면서 돈돈돈 거리는 것보다는 나아"라는 말을 곱씹으며, 공항대기실을 떠나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 나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테스코익스프레스가 있었다.
딸을 위하여 귤을 사려고 잠시 들렸는데, 귤을 산후, 나도 모르게 GUINNESS맥주를 꺼내 들었다.
영국에서 딸과 지낸 후로는 술 한 모금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남편이 와 있는 동안, 남편이 맥주를 마실 때마다, 나에게도 조금씩 주다 보니, 또다시 잊고 있었던 맥주맛에 들려서. 나도 모르게 남편과 마셨던 맥주를 꺼내 들었다.
*GUNNESS맥주는 영국에서 임산부들에게도 한잔은 안전하니까, 마실 수 있다고 하는 맥주임.
나는 맥주를 사들고, 버스를 기다리다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대신 걷기를 결정했다.
나는 생각이 복잡하면, 입을 닫고, 걷는다.
걸으면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이라고나 할까?
집까지 오려면, 족히 40분은 걸리고, 주변도 깜깜하고, 날씨도 추운데... 그냥 걸었다.
채 6시가 되지 않은 공항 근처의 인터스트리단지는 체감상 저녁 9시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그곳을 걸으면서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따로 또 같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남편과 나의 관계는 어쩌면 한집에서 살고는 있었지만, 심리적으로는 "같이 또 따로"였던 것이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지난 2년 동안, 나는 갱년기로 인한 심한 감정기복으로 인하여 남편이 하자는 대로 다 해주지 않았고, 남편이 무조건 맞다고 하며 넘어가지 않았으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을 이해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했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힘듬의 시간이, 오히려 남편의 입장에서는 25년 가깝게 살아오면서, 자신에게 맞추어주던 여자가 한순간에 돈돈돈 거리는 여자로 전락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결혼초, 나와 남편은 돈이 없어서, 2년 동안 시어머님집의 방 한 칸을 빌려서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었다.
남편은 어렸을 적부터 집안의 골칫덩어리였던(시누이는 4살부터 집을 나가서 경찰이 오는 등 아주 망나니였음. 시어머님께서는 자신의 딸이 고모를 닮아서 지랄 맞다고 나에게 한탄하셨던 것을 기억함.)
t시부모님들께서는 그런 시누이를 챙기느라고, 정작 심성이 착한 아들을 정서적, 경제적으로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셨다.
그런 남편이 안쓰러워서 친정으로부터 돈은 받지 못했지만, 무한사랑을 받았던 나는 남편에게 사랑을 퍼다 주었는데... 정작 돌아온 것은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형상이라니...
그렇게 며칠 동안 나는 고심했고, 생각했고, 또 결심했다.
그래! 이제부터는 나답게 살아야겠다. 아름답게 살아야겠다.
*아름답다의 의미가 나답게 산다는 의미라고 함.
나의 삶에서 딸을 낳기로 자발적으로 결정하고, 남편의 아내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 써야만 했었던 가면을 벗고, 2024년에는 나 자신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첫발을 내딛어야겠다고...
물론,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고도 5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역치를 거스르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겠지만... 어쩌면 너무 늦어버렸을 수도 있지만,
일단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혔으므로, 일단 첫발은 내디뎌 볼만한 것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