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나마 남편에게 의지했었던 마음에 긴장의 끝을 다시 매려고 한다.
제기랄, 12월 초의 무지막지한 한파처럼, 또다시 10년 만에 2번째로 역대급 토네이도급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역시 피해지역은 스코틀랜드지역과 웨일스지방에 많이 발생했다.
월요일밤부터 시작된 소형급 토네이도는 집 앞에 세워두었던 1미터가 넘는 쓰레기통을 날려버릴 정도였다.
새벽에는 정원용 브라운쓰레기통이(비어있는)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심해져서 눕혀놓았을 정도였다.
이번 겨울 날씨는 역대급으로 기상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기상센터에서는 연신 떠들어 대고 있다.
이번 주말에도 시작된다고 했는데, 또 얼마나 심할지...
원래 영국은 겨울장마와 겨울폭풍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는 곳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때문인지, 그 정도가 심하고 피해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에 도착한 남편은 시차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90년 된 집(70년 된 것인 줄 알았는데, 정확한 것은 90년 된 집이라고 했음)의 집수리에 돌입했었다.
가장 먼저 손을 본 것은 6개월 동안 쓰지 못한 목욕탕의 세면대였다.
사실, 처음에 세면대가 고장 났을 때(세면대누수) 6개월 동안이나 쓰지 못할 줄 몰랐었다.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고, 견뎌본 적이 없다 보니, 처음에는 죽을 것만 같았다.
임시방편으로 욕조에 있는 낮은 수도꼭지를 사용하여, 세수를 하거나 양치질을 하다 보니, 가뜩이나 심한 목디스크와 등통증이 심해졌다.
그런데,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점점 포기하 되더니, 어느 순간 원래부터 세면대가 없었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아주 가끔씩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여유 많은 지인은 왜 고치지 않느냐고 물으셔서, 그때마다 나는 몇십만 원이 들면, 이미 고쳤죠 라며 다시 조목조목 이야기 해주었다. 인간은 남의 말을 잘 귀담아듣지 않는 경우가 있다.
제기랄, 또다시 한국의 편리했던 삶이 그리워지고 있다.
남편은 가장 먼저 세면대를 뜯어냈다.
그 후 파이프와 연결된 부분들을 일일이 떼어낸 후, 세척하고 다시 조립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한번 조립했었던 것을 풀어서 다시 조립하게 되면, 맞지 않게 되고, 그러면 다시 누수가 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부품을 구입해서 설치하려고 하면, 현재 있는 구제품과 신제품의 규격차이로 그것도 아주 미세한 차이로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부품별로 수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저번에 견적 받은 배관공이 말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90년 된 우리 집의 문제는 그렇게 하려고 해도 밖에서 들어오는 파이브와 새 제품의 규격과도 맞지 않는 문제가 또다시 발생했다. 그런 문제는 어느 정도 숙련된 배관공의 기술이 필요한 부분인 것처럼 보였다.
마치 오래된 전자제품이 고장 나서 수리를 하려고 맡기면, 업체에서 수리하지 마시고, 그냥 새것 하나 사는 것이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세면대 고치는 문제로 한창 골머리를 썩고 있을 때, 욕조가 누수되기 시작했다.
산 넘어 산, 바다 건너 바다, 산산산산산, 도대체 언제 끝날수 있을지ㅠㅠ. 끝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ㅠㅠ.
노년의 몸으로 되어가는 남편도 본인이 힘들었는지, 집을 팔아버리자고까지 했다.
그런 남편이 안쓰러워서 "우리 호주로 이민 갈래? 호주에서는 기술자들에게 예전부터 비자를 가장 잘 내주는 곳이잖아. 특히 배관공이나 전기기술자들 "어서 오십시오"라며 두 팔 벌려서 환영하잖아"
그런 나에게 남편은 "내가 이일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이일로 먹고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잖아. 나보고 이런 일 하면서 먹고살라고 하면 못할 것 같은데!???. 라며 답한다.
요즘 영국이 너무 춥다 보니 별 생각을 다 하고 있다.
남편은 진중하면서도 치밀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세면대와 욕조를 고쳐나가는 동시에 사소한 문제들까지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우렁각시처럼... 혼자서...
그렇게 우리 가족은 2023년 크리스마스를 맞았고, 새해를 맞았다.
남편이 처음 크리스마스에 영국으로 잠시 왔다가 간다고 했을 때, 굳이 뭐 하러 돈도 없는데, 게다가 겨우 2주도 안 되는 시간을 보내려고 오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었다.
나의 그런 속도 모르는 딸은 아빠가 온다는 것에 설렌다며, 엄마도 좋지라고 묻는 소리에 "그다지... 아빠랑 일요일마다 영상통화하잖아?"라고 답했더니, "엄마! 영상통화랑은 다르잖아"라고 맞받아쳤다.
그런 딸에게 "너도 한번 한 사람과 25년을 알고 살아봐, 그러면 알게 될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차라리 집수리를 할 수 있는 돈이 충분히 있어서 수리하는 것이 좋지, 몸과 정신을 갈아 넣어서 돈을 아낀다는 이유로 시간을 쓰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인간은 유한한 시간 속에 살고 있으므로, 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시간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어렸을 적에 깨달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게 남편의 끝도 없는 집수리가 마무리되는 2023년의 마지막날이 되었다.
남편은 처음으로 자신이 집수리를 한 것에 대해 네가 그리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생뚱맞은 소리를 했다.
나는 속으로, "어이구, 멍청이야, 그동안 칭찬해 준 것은 다 까먹었냐???"라고 하고 싶었지만^^
마음을 가라앉힌 후, 또다시 조목조목 이야기 해주었다.
아무튼간에 남편은 내가 이야기할 때는 듣는 척만 하거나, 아니면 대충 들은 후, 내가 자신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하며 우기는 황당한 경우가 종종 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은 자신이 한 것 중에 1개가 빠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라고 했다.
제기랄, 어렸을 적에도 학교소풍이나 교회에서 하는 수련회등에서 보물 찾기를 하면, 보물은커녕 보물을 담은 포장지도 못 찾은 나에게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지...
6개월 동안, 삭정이 90년 된 집은 하루를 멀다 하지 않고, 망가졌고, 그로 인하여 정신이 붕괴되기 일보직전이다 보니, 수리할 것들은 종이에 적는 것도 하기 싫어서 하지 않았다.
아주 많았다.
원래 계획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나는 하루에 해야 할 일을 To Do List에 적어놓고 한 개씩 지워나가면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인데, 이번 경우는 그렇게 하기 조차 싫었다.
결국, 나는 2층부터 샅샅이 뒤져서 내려오면서 남편이 수리한 것을 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주방에서 찾아낸 후에야 나의 보물 찾기는 끝낼 수 있었다.
2023년 12월 30일.
나는 모처럼 숙면을 취했다.
6개월 동안 속을 썩였던 집수리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남편의 존재로 인한 심리적인 안정감 때문일 것이다.
tmi: 2년 동안, 나는 남편과 치열하게 싸웠다.
가정보다는 자신의 일을, 타인을 우선순위에 두는 남편의 모든 것이 미웠다.
배우자로 선택할 때, 그의 가치관이 마음에 들어서 이해하고 살았던 나의 숭고한 삶의 방식(어쩌면 가면일 수도 있었을)은 갱년기의 우울감으로 인하여 폭발해 버린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남편이 있었던 짧은 기간은, 마치 나에게 있어서 든든한 존재였다고나 할까.
집안에 나 말고 성인이 한 명 더 있다는 그런 의미.
마치 오래된 쓸모도 없는 컨서버터리가 있어서 주방의 온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또한 밖에서 불어내는 추위가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주는 뭐 그런 기능이라고나 할까? 특히 외국생활이라는 힘든 삶에 있어서 외부의 침입을 막아주는 울타리 같은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몇 달 전에 근처 슈퍼에 가서 물건을 구입하면서, 대화하다가 그만 기러기가족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었다. 원래 외향적인 성격과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야기해 버린 것이었다. 16살 된 딸과 나만 있다는 소리를 아무 생각 없이...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가족은 한 번도 기러기가족으로 살았던 적이 없어서 이런 이야기를 외부에서 만난 사람들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없어서 일수도 있고...
나는 왜 제주영어교육도시 내 학부모님들의 대부분 CCTV가 많고, 걸어서 학교에 등교하는 곳에 거주하기를 원하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역지사지"라는 말처럼.
남편은 한국으로 출국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잠시나마 남편에게 의지했었던 마음에 긴장의 끈을 다시 매려고 한다.
tmi:
나는 6개월 정도면 영국의 역이민생활에 적응할 줄 았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다시 6개월이 걸릴 것 같다.
6개월 후에는 다운그레이드된 영국의 역이민생활이 어느 정도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2024년 새해 첫날,
나는 지금 생각이 너무 많다.
"잡생각대신 시도하고, 행동하고, 실패하라, 그리도 또다시 실패해서 배운 것을 토대로 다시 시도하고 행동하라, 성공시켜라. 지금도 늦지 않았다. 절대로 절대로 미루지 말자"를 다짐하며 2024년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