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꼴딱 새웠다.
오늘은 딸이 학교에서 2시에 온다고 하면서, 학교에서 점심을 먹지 않고, 집에서 먹겠다고 했다.
딸의 침은 10일이 지나도 여전하다. 대신 어젯밤부터 조금 잦아들었다.
이럴 때일수록 고기를 먹여야 할 것 같아서 밖을 나섰다.
밖은 의외로 따듯했다. 대신 비는 을씨년스럽게 흩날리고 있었다.
슈퍼에서 삼겹살과 상추만 사가지고서 빠르게 셀프체크로 가격을 치른 후, 영수증을 보았다.
성격상 영수증을 꼼꼼히 보는 타입이 아닌데, 왠지 느낌상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나온 것 같았다.
그래서 영수증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Are you O.K?"라는 말이 들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집 근처에 살고 있는 일본인 토모코였다.
양손에 물건을 잔뜩 들고서.
"Yes, I am O.K"라고 답하자,
곧이어 그녀는 묻는다.
"Can I give you a life home?"
나는 속으로 짐도 많지 않은데, 굳이?이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왠지 그녀가 내민 친절을 거절하는 것이 조금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Yes"라고 대답했고,
그렇게 그녀와 나는 2번째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와의 첫 번째 만남은 약 두 달 전이었다.
나의 70년 된 허름한 집이 하루를 멀지 않고 여기저기 고장이 났고, 그로 인해 나의 멘털이 붕괴될 시점에
나는 그녀와 만났다.
슈퍼마켓 안에서...
그때도 얼굴 인식을 잘하지 못하는 나를 대신하여
13년이 지난 후에도 그녀는 나를 알아보았다.
그렇게 만난 그녀와 나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슈퍼마켓 안에서 그동안의 삶을 나누었다.
그녀의 나이 46살, 찬란한 제2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고, 아들 또한 잘 자라서 대학에서 곧 의학을 전공할 것이라는 아주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차를 처음 탔다.
그녀의 작고 아담한 차량은 연식이 그리 되지 않은 중고차였다.
의외로 내향적인 그녀의 성격과는 반대로 차량의 색깔은 빨간색이었다.
아무래도 중고차 구입 시, 그 색깔 외에는 없었을 것이리라...
두 달 전에 이미 그녀의 삶에 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굳이 따로 물어볼 이야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생각난 것이 고3아들의 근황을 물었다.
나: "너네 아들은 잘 있지?"
그녀: "응, 그런데, 조금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어?
나: "무슨 충격적인 사건"
그녀 "내가 아파서"
나: "어디가 아픈데?"
그녀: "나 암 이래"
나: "뭐?"
그녀 "유방암 이래"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나: "너 두 달 전에는 괜찮았잖아?"
그녀: "그랬지, 그런데 Life suddenly Changed"
나: "상태는 어때"
그녀: "27일, 1시간가량 조직을 떼어내는 검사를 할 거래"
나: "그러고 나서?"
그녀: "1월에 유방을 절제하고, 동시에 아랫배에 있는 내 살을 떼어서 복원수술까지 동시에 이루어질 거래"
나: "괜찮아?"
그녀: "아니, 나도 놀랬고, 아들도 놀랬어. 어쩔 수 없지"
나: "27일에 병원에 갈 때는 어떻게 가?
그녀:"직장동료가 데려다준데"
나: "너 일본인 친구 있니?"
그녀: "응, 있어"
나는 왜 생뚱맞게 일본인 친구가 있느냐고 물었을까?
13년 전 그녀가 그녀와의 마약 하던 영국인 남편과의 분쟁이 있었을 때, 내가 그녀를 도와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곁에는 정기적으로 친목을 도모하고 만났던 자국민 친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 이민자로 살게 되면, 주위에 믿을만한 자국민 친구, 그것도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는 자국민 친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정서적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하여. 그러나, 이런 행운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집 앞 길거리에 잠시 차를 멈추었다.
그녀: "너도 꼭 유방암 검사를 받아"
나: "나는 호르몬치료 때문에 한국에서도 받았고, 이번에 영국에 와서도 받으라고 하더라 그래서 받았어"
그녀: "잘했네"
나: "그런데, 딸이 걱정이야. 엊그제 GP에 다녀왔어. 딸의 가슴에 멍울이 생겼어. 의사가 말하기를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breasts disk 같다고 하는데, 4주 동안 지켜보고, 없어지지 않으면 다시 오래"
"한국이었다면, 바로 초음파까지 검사할 수 있을 텐데ㅠㅠ. 속상해"
그녀: "영국이 그렇지 뭐"
나: "도움이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라도 말해, 차는 없지만 내가 도와줄게"
그녀: "고마워"
나는 집으로 그녀는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온 딸과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자리에 앉았다.
갑작스럽게 알게 된 그녀의 유방암 소식은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오후 3시, 그녀의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나의 방문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의 집안이 어지럽혀져 있는데, 어지러운 집안이 상관없다면 들어오라고 했다.
난장판인 나는 나의 집에 사람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는 반면, 그녀는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향성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말과는 달리 그녀의 거실은 단정했으며, 온기가 없었고, 나이트가운을 입은 채, Hot Water Bottle을 껴안고 있었다.
To be contin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