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병이 나타났다.

왜?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의 이사를 가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by 해피걸

딸은 올해 6월까지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 살았고, 제주국제학교에서 교육받았었다.

물론 영국에서 태어나서 3살까지 살았지만, 너무 어렸기에 이곳의 기억은 없다.

제주도는 딸에게 있어서 고향이자, 평범한 삶이었다. 한국의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 속에서 평범한 딸은 그런 삶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살았다.

딸의 친구들과 그들의 부모님들은 재력과 교양을 갖추셨고, 지혜로웠으며, 여유로움을 지니고 계셨다.

그런 한 환경 속에 자란 딸 역시, 그런 모습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환경을 떠나서, 가장 평범한 사람들, 아니 영국에서는 저소득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삶으로 들어왔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지 않고 살고 있는 우리 딸의 삶이 지금 있는 학교에서는 특별한 케이스로 비추어진다.

심지어, 학생들 중에는 아픈 학생들(ADHD, 자폐성장애, 난독증, 신체적 장애)들이 많고, 명문대를 진학하기보다는 도시 내에 있는 평범한 대학교에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일반적인 친구들 속에서 공부하고 있다.


영국에 역이민이 결정된 후, 작년부터 나는 딸과 함께, 도시 내에 있는 3개의 공립학교 중에 어떤 곳을 갈지를 고르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중에서 학구열이 높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갔으면 바랐고, 그곳에서도 딸이 오기를 원했다.


참고로 그 학교의 학부모님들의 교육 수준과 경제 수준은 영국의 중류층과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고, 또한 그곳은 중고등학교 내에 있는 대학입시반이 아닌 단독으로 2년제 대학입시만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공립학교였기 때문이다.

다른 공립학교들과의 차이는 이곳의 선생님들은 중고등학교가 함께 있는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덜 피곤하시기도 하고, 집중적으로 대학입시 공부만 가르치시면 된다.

그곳에서는 자신들의 학교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학생들을 선발할 때에도 꼼꼼한 편이며, 공부도 많이 시킨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딸이 추후 전공하려는 대학전공과목이 있었다. 사실, 이 과목은 보통은 사립학교 A레벨에만 있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미리 2년 동안 대학에서 공부해야 하는 과목을 고등학교 2년 동안 하고, A레벨시험(한국의 수능시험)까지 본다면, 실제 대학에서 공부할 때에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여 월등히 앞서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과목은 지금 딸이 다니고 있는 일반공립학교에서는 개설하지 않는다. 왜, 그 공부를 하려는 학생들이 거의 없으니까...

나는 생각했다.

아싸~이곳에 가면 내가 신경 쓸 것이 없겠군!


그렇게, 학교에 지원하고 과목을 정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 학교는 모든 학생들에게 3과목만 공부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대부분의 영국의 입시반학생 들은 대부분 아니 거의 3과목을 듣고 추가로 EPQ를 한다.

그리고 대학에서도 3과목의 성적을 요구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굳이 힘들게 4과목을 가르칠 필요도 없고, 학생들도 4 과목 하기가 벅차다고 생각해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딸이 반드시 4과목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물리를 포기하더라도, 반드시 역사를 공부해야만 하겠다고... 고집을 부릴 때는 그 누구도 못 말린다. 마치 자신의 아빠처럼 ㅠㅠ.


제기랄! 결국 내가 졌다.

남편은 딸이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딸의 의견을 존중했다. 결국 나는 2:1로 졌다.

지금껏 사교육을 심지어 구문조차도 못했었다. 그 대신 어려움은 있었지만, 딸은 자신의 힘으로 지금까지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점은 좋은 일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공립고등학교는 3곳의 학교 선택지 중에 가장 별로였던 영국에서도 저소득층의 학생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학교이다. 중고등학교가 함께 있어서, 수업을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은 신체적으로 많이 힘드시실 것이며, 부모님들이 저소득층이라서 생업에 바쁘시다 보면, 정작 자신들의 자녀의 학업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실 가능성이 높은 곳이었기에 나는 반대했었다.


그러한 나의 걱정과는 별개로, 딸은 심성이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잘 적응하고 있다.

그렇게 서서히 마음이 놓여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복병이 나타났다.

"남자친구"


딸이 학교에 들어온 후, 남학생들로부터 관심을 많이 받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쭉 남녀가 함께 다녔고, 심지어 유치원도 함께 다녔던 친구들이 있다. 결국 이들에게는 남사친이나 여사친 그리고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갑자기 한국에서 온 딸은 머리색깔도 다르고, 얼굴도 조금은 다른, 어쩔 수 없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남학생들로부터...


그렇게 그들로부터 관심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딸이 좋다며 남자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것들이 언급될 때마다, 나도 딸도 대학에 가서 만나지라고 넘겼는데,

어떤 적극적인 남학생이 나타났다.

두 과목이나 딸과 함께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딸이 봉사를 나가는 동물보호소에서 토요일에 일을 하는 친구였다.


영국의 A레벨학생들은 만 16세가 넘었기 때문에 예비성인으로 받아들여져서 대부분의 저소득층 학생들은 집에서 용돈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주말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용돈을 벌어서 써야 한다.


나의 남편은 저소득층 출신으로서 만 14세부터 자신의 용돈을 직접 벌어서 썼다.

그런 말을 듣고, 남편이 안쓰러워서 신혼 초부터 잘해주었더니만, 점점 고마움을 잃어가고 있다.

역시 결혼생활에서 남편을 너무 잘해주면 안 된다.


학교에 다녀온 딸이 갑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딸: "엄마, 000가 나 좋아한데"

나: "엥? 그렇구나, 남자도 친구가 될 수 있지, 남사친이 많으면 좋지"

딸: "아니 남사친이 아니라 남자친구가 되고 싶다고 하는 거야"


나는 속으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대학입시에 집중해야 할 때에!!!"라고 쏘아붙이려다가, 심호흡을 한 후, 얼굴에 가면을 쓰고, 이야기했다.

나: "지금은 아니지 않을까? 지금은 A레벨 공부해야지. 나중에 대학에 가서 만나도 되잖아. 너도 지금까지 그렇게 이야기를 했고!"


아니, 이게 무슨 일인지, 지금까지 남자친구는 대학에 가서 만날 것이라는 딸은 어디로 사라지고, 너는 도대체 누구냐???라고 덧붙이려다 꾹 참았다.

딸:"그럼 엄마는 안된다는 거야?"

나: "지금 시내에 있는 아이작학교의 아이들은 벌써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들었어. 지금 남자친구 같은 것에 시간 낭비할 것은 아닌 것 같아!"라며 침착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딸의 모습을 나의 대답에 잔뜩 화가 난 모습을 보였다.


나는 다시 태세를 전환하여,

나:"그런데, 그 애는 어떤 친구야?""얼굴은 잘생겼어?""공부는 잘해?""성격은 어떻고?""부모님은 이혼하지 않으셨어?"라며 쓸데없는 말을 내뱉었다.

딸: "얼굴은 그냥 그래" "머리는 좋은 것 같아""성격은 좋아. 나랑 비슷해" 그리고 "재미있어"

나: "재미있어?"

나: "재미있는 것은 좋지"

나: "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어?"

딸: "생각해 보고, 대답해 준다고 했어"


나는 재차 다시 딸에게 이야기했다.

나: "안돼, 지금은 아니야. 공부에 집중해야 돼.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면, 공부하는 것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야"

딸: "엄마는 내가 공부를 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나: "아니야, 지금까지 네가 잘해 왔는데, 그런데, 남자친구라는 것은 틀리거든. 자꾸 공부를 방해하게 될 거야"

딸:"엄마는 나를 못 믿어?"

나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고, 머릿속으로는 방법을 모색하고 시작했다.

어떡하지ㅠㅠ. 그러다가 순간 남편이 떠올랐다. 구원요청을 해야지!


나: "아직은 네가 미성년 자니까, 아빠한테도 물어봐야 할 것 같아"

딸: "알겠어. 내가 문자 보낼게"라며 기분 좋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런 딸을 보며

나: "너 왜? 기분이 좋아? 아빠가 안된다고 할 수도 있는데? 아빠가 안된다고 하면 어쩔 건데?"

딸:"그럼 많이 슬플 거야" 그러면서 얼굴에 조금 걱정이 올라온다.

나:"그러니까 너무 긍정적인 대답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 안된다고 할 수도 있어"

딸은 남편에게 문자를 보낸 후 자러들어갔다.

나는 속으로 빌었다."남편아, 제발 안된다고 해라"

그래야 내가 남편을 핑계로 딸에게 못하게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이곳에 딸과 함께 와있기 때문에 나는 철저히 딸의 아군이 되어야 한다. 적군이 되면 안 된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문자를 확인했다.

어! 그런데, 남편에게서 답변이 없었다.

뭐지?

남편도 조금 당황하고 황당했겠지...

그래서 딸에게 문자를 아직 보내지 않았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딸은 가족단톡방에 문자를 남긴 것이 아니라, 아빠에게 직접 디렉트로 자신의 계정으로 물어본 것이었다.

그래서 딸에게 물었더니, 딸이 말하기를

"I trust you and study hard, and I will give you a big hug라고 했어"

나: "뭔 소리야!?"

딸: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된대"

제기랄! 역시 남편은 옆에 있을 때나 지구 반대편에 있을 때나 교육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다.

맹자의 어머니는 맹자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하여 3번이나 이사를 상급지로 가는 업그레이드를 취했는데, 나는 오히려 다운그레이드 그것도 몇 단계 낮아진 하급자 교육환경으로 이사를 왔다.

역시, 나는 속물이다.

지금까지 알고 지내는 학부모님들에게 자녀들을 믿어주라는 상담을 한 것은 쓸모없는 조언이었고, 상담이었다. 막상 내가 당하니까, 머리가 하얘졌다.


젠장ㅠㅠ 맹모의 어머니처럼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수도 없고,

도대체 이 나이 먹도록 그놈의 소명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더니만, 손에 쥔 것이 하나도 없다.

마침내, 왜 제주국제학교의 학부모님들께서 딸은 남녀공학이 아닌 여자학교로 입학을 시키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그 심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영국으로 역이민을 온 후로는 산 넘어 산의 연속이다.

도대체 언제쯤 상황이 안정되려나ㅠㅠ.








이전 06화영국의 치과 가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