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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남 Jan 24. 2024

뻔한 PT(D-66)

  제목 그대로 뻔하게 PT를 끊었다. 내 인생 첫 PT다. 30회를 끊었고, 거금 1,350,000원을 투자했다. 생각도 정리할 겸, 의지도 다질 겸 글을 끄적여본다.     


  내가 최근에 읽고 있는 『역행자』라는 책의 저자는 ‘유전자 오류’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거부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내용이다. 사냥을 통해 먹고 살던 시절, 인간에게 있어 사냥의 실패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인류는 매머드나 커다란 맹수 등 도저히 잡을 엄두가 나지 않는 동물 대신, 실패 확률이 낮은 고만고만한 동물들을 사냥하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그 시절 인류의 유전자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남아있기에, 실패 확률이 높은 ‘도전’보다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선택을 할 때 마음이 편한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떠한가.     


  21세기의 실패는 곧 죽음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물론 익스트림 스포츠나 에베레스트 등반과 같이 위험을 동반하는 활동은 예외지만. 1년 동안 준비한 시험에서 떨어진다고 죽지는 않는다. 예약한 날짜에 만족스러운 바디프로필을 찍지 못해도 그것이 사망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업이 망해서 빚더미에 앉게 되더라도 사형을 선고받지는 않는다. 우리는 실패하더라도 죽을 걱정이 없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 ‘유전자 오류’로 인해 시도조차 망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며칠 전 내가 다니는 헬스장에서 트레이너가 PT를 권유했을 때, 처음에는 금전적인 이유로 거의 거절에 가깝게 보류했었다. 뻔한 상술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실패했을 때 도망칠 수 있는 핑계를 찾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아마 바디프로필 촬영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댈 수 있었을 것이다. 혼자 준비했기 때문에, 운동과 식단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몸을 만들기에는 유전자가 좋지 않아서, 100일도 되지 않는 짧은 준비기간 때문에, 기타 등등.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나의 유전자가 벌써 ‘실패’로 인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설령 내가 실패하더라도 누구도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않을 텐데, 나 혼자 실패했을 때를 상상하며 마치 보험처럼 핑계를 찾고 있던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성장도 없다. 내가 PT를 주저했던 건 금전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PT까지 받았는데 실패한 나’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실패를 자양분으로 삼아 발전하도록 설계된 존재 같다. 


  만약 내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나는 새로운 운동을 배우고, 믿을만한 트레이너가 짜주는 식단을 먹어보지도 못하고, 독단적으로 설렁설렁 준비하다가 뻔한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똑같은 실패를 하더라도, 최선의 노력을 쏟아붓고 맞이한 실패는 아름답다. 인생은 길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다채로운 실패를 해본 사람은 그만큼 다가올 시련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높아질 것이다.      


  나 역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남들 다 하는’ 뻔한 PT를 끊었다. 그러나 나와 같은 선택을 했던 ‘남들’ 역시 결코 손쉬운 결정을 했던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나처럼 ‘뻔한’ 도전을 하는 모든 이를 응원한다. 유전자의 오류를 거스르고 어려운 결정을 내린 나 자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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