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 아닌 밤중에 누가 누가 더 우울했나?
2022. 08. 무더운 여름날
조리원 퇴소 후 가정 산후 관리사의 도움까지 도합 한 달을 보내고 나니, 드디어 우리 부부만의 실전육아가 시작됐다. 이쯤이면 셋이 된 일상에 적응하리라 생각했지만, 대체 우리의 한 달은 어디로 공중분해 된 건지
익숙은커녕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여전히 아이를 안는 것이 어색했고, 남편을 닮아 목청이 큰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뇌 속까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마치 멘털이 탈곡기에 탈탈 털리는 것같이..
부족한 수면 탓에 꾸벅꾸벅 졸면서도 수유를 했지만 아이는 뒤돌아서면 게우기를 반복했다. 때문에 틈만 나면 휴식보다는 유튜브를 통해 케어법을 다시 익혔다. 하지만 어떤 방법에도 또다시 왈칵! 분수처럼 게우는 아이를 보노라면, 기본적인 것도 해결 못하는 것 같아 한심했다. 신생아의 신체 구조상 자주 게우는 게 당연했고,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결코 태연할 수 없었다.
이외에도 상수보다는 변수에 가까운 아이의 행동과 반응을 마주하며, 깔린 긴장감에 더한 미숙한 대처는 죄책감마저 불러왔다. 무엇보다 이 작은 아이에게 '엄마'로서 취하는 모든 행동에 확신이 없으니, 늘 무용한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신생아 육아법을 미리 항목별로 익혀두면 나았을 텐데 대체 난 무엇을 했을까? 설명에 약간의 변명을 더하자면 막달쯤 이사준비로 바빴고, 무엇보다 첫아이라 모든 것이 생소하니 출산 후 상황에 맞게 익히는 게 더 효율적일 것이라 자신했다.
그렇게 평소처럼 미루고 미루어 밀림의 왕으로서 맞이한 그 시기는ㅡ 새로운 형태의 사랑, 행복이라는 아름다운 감정과 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불안, 공포라는 감정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혼란의 줄다리기를 경험하게 했다. 그리고 그 줄의 끝에는 우울감까지 끌고 왔다.
맑은 날엔 이런 날은 나와 다른 세상 같아 눈물이 났고, 비 오는 날엔 이런 날은 내 마음 같아 눈물이 났다.
아기가 울면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우는 것 같았고, 그런 아이를 못 달래면 엄마답게 잘 못해서 또 눈물이 났다.
그렇게 아이와 나의 울음이 뒤섞인 채로 하루를 보내고 나면, 퇴근한 남편을 향해 이 모든 감정을 터트렸다. 평소와 같은 그의 말도 배배 꼬아 들었고, 뾰족하게 반응했다. 나름의 최선을 다하던 남편은 내게 계속해서 서운함이 쌓이자, 이는 억울함으로 변했고 그것이 그의 임계치를 넘자 분노와 함께 폭발했다.
여보, 그만해. 나도 산후우울증 같아.
인간 꽈배기였던 그때의 난, 남편의 말에 그저 기가 찼다. 그렇게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자기가 더 우울하다는 배틀과 함께 ‘우울증 대첩'이 열렸다. 팔뚝만 한 갓난아이를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뱉어서는 안 될 험한 말과 괴성으로 으르렁댔던 그날의 우리는, 부모로서 너무나 형편없었고, 내가 절대로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모습 그 자체였다.
큰소리에 놀란 아이도 울부짖었고, 이에 우리는 밀려오는 죄책감과 앞으로의 막막함에 휘청였다. 그러다 마주친 서로의 핼쑥한 얼굴과 텅 빈 두 눈을 보고, 누가먼저랄 것도 없이 꺽꺽 울음을 터트린 채 주저앉았다. 그렇게 그 대첩은 ‘승자를 가리지 못한 채’ 끝이 났다.
대첩 후 며칠 뒤.
'띵!'
연락이 올 곳은 스팸문자밖에 없던 휴대폰이 왠지 반갑게 울렸다.
보건소에 등록한 임산부 정보를 토대로 발송된 '서울아기 건강첫걸음 사업' 관련 안내 문자였다.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어 신청법을 안내받았다. 신청 시 실시한 산후 우울증 검사 결과는 생각보다 더 심각한 수치였고, 이에 담당 간호사 선생님은 빠르게 일정을 조율해 집으로 방문했다.
이후 아이 건강상태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과 우리 부부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나니 그것만으로도 한결 편안해졌다. 선생님은 내게 다른 산모들도 유사하게 겪는ㅡ 어쩌면 일반적인 감정이라며, 괜찮다는 위로와 함께 한마디를 더했다.
정말 남편들도 산후우울증을 겪을 수 있어요.
이 체크리스트 한번 확인해 보시라고 하세요. 그리고 지속방문 서비스가 있어요.
도움이 더 필요하시면, 아이 두 돌 때까지 도와드릴게요.
'도와준다는 말이 이렇게나 반가운 말이었구나!.. '
양가 부모님은 물리적으로 멀었고, 각자의 상황으로 바쁜 친구들은 정신적으로 멀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새 육아동지를 사귈 용기도 나지 않았기에… 스스로를 외롭게 가두며 벼랑 끝에 서있던 내게 이 손길은 하늘에서 내려준 금동아줄처럼 느껴졌다. 무조건 잡아야 했다. 이에 우리는 주저 없이 지속방문을 신청했고, 다시 제자리를 찾기 위한 발걸음을 한 발씩 시작했다.
* 서울아기 건강첫걸음 사업 링크 : 서울시 임신·출산 정보센터 (seoul.go.kr)
* 2024년에 전하는 여담.
얼마 전 아이의 두 돌을 지나며, 간호방문서비스를 졸업했다. 가슴에 새긴 빛나는 졸업장 덕에 나는 더욱 단단해졌다. 부디 이 도움의 손길이 더 많은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