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 우리가 아이 사진만 찍는 이유
2022.10. 단풍이 예쁘던 어느 날.
아이의 백일을 앞두자 그 유명한 통잠의 기적이란 것이 오는지 조금씩 숨 돌릴 틈이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초췌한 모습과 여기저기 아픈 관절 탓이었을까? 백일잔치는 나와는 먼 얘기 같았고, 이를 생략하는 대신 집에서의 셀프 촬영을 준비했다. 우리 부부와 아이의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순간일 테니.
백일 상차림 대여를 신청하고 며칠 뒤 도착한 상자 안에는 서비스로 받은 아기 한복이 함께 있었다. 앙증맞은 크기에 감탄을 하며, 아이에게 서둘러 옷을 입혀보았더니 역시나!!! 딸은 ‘도치맘’의 기대이상으로 귀여웠고 나는 재빨리 휴대폰을 들었다.
"찰칵! 찰칵! 찰카카가가ㅏㅏㅏㅏㅏㅏㅏ찰칵! 찰칵!!"
처음 입는 옷의 촉감에 신기해하면서 귀찮아하는 표정도, 그러다가 짓는 울상도, 모두 다 예뻤기에..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아이에게 한껏 밀착해 연신 휴대폰을 눌렀고, 그 모습은 '지독한 연쇄사진마'가 따로 없었다.
사실 이 집요한 연쇄사진은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출산 후 아이와의 첫 만남부터 조리원에서 모자동실시간, 뉴본사진과 50일 촬영 날 등등... 그리고 어디 특별한 날만 그랬을까? 목욕할 때, 수유할 때, 잘 때 등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여 수없이 찍었고, 그 덕에 나의 휴대폰 앨범은 아이사진으로 도배된 지 오래였다.
이런 엄마 덕에 아이는 피곤했던지 금세 낮잠에 빠졌고, 나는 상차림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방치했던 이삿짐을 하나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큰 존재감을 자랑하던 상자! 돌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싶어 열어보니 앨범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한편에 있던 내 성장앨범은 마치 추억열차의 기관사라도 된 듯 어서 자리에 앉으라며 탑승을 재촉했다.
그렇게 시작된 추억여행.
신생아 시절의 목욕사진부터 우는 사진, 저지레 한 사진, 돌 사진, 나들이 사진, 입학과 졸업, 방학숙제 등...
얼마 전의 나와, 앞으로의 내가 담아낼 딸의 모습처럼 보이는 것들이 가득했다. 묘한 감정과 함께 페이지를 넘기던 나의 손길은 초등학교 1학년 때쯤으로 보이는 사진에서 멈추었다.
"어머! 인화해야 하는데 필름이 5장이나 남았네. 수니야! 저번에 사준 원피스 좀 입고 베란다 앞에 서봐."
"아~ 싫어~~ 집에서 왜 그걸 입고 찍어~~~ ㅡ_ㅡ"
"남은 필름 버리고 인화하기는 아까워서 그래~!!"
"아~~ 귀찮아~~!! 내가 엄마 찍어줄게!!"
"뭐? -_-^ 엄마는 지금 잠옷 입고 있잖아!! 얼른 가서 갈아입고 와!!!"
"아~~ 왜~~!! 엄마도 옷 갈아입으면 되잖아! 나 찍기 싫다니까?..ㅠ_ㅠ"
"어휴~! 긴말 말고!! 자 여깄다! 그리고 이 머리띠도 하고!!!! 얼른 서봐!!!"
결국 엄마의 등쌀에 패배자가 된 나는 알록달록한 원피스와 액세서리의 도움으로 인간 꽃밭으로 변신했다. 그리고는 그녀의 열정적인 포즈 지시도 성실하게 따랐지만, 생각보다 피사체가 별로였던 걸까? 갑자기 자리에 앉아 다리를 나란히 뻗어보란 것이었다. 그렇게 수차례 앉고 서길 반복하며 찍힌(?) 후 며칠 뒤, 받아본 사진에는 잔뜩 내려간 내 입꼬리마저 고스란히 인화되어 있었다. 이에 사실은 포즈보단 표정이 문제였다는 것을
나는 단박에 알아챘다. 하지만 이를 본 엄마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이것 봐~! 필름 안 버리고 찍기를 잘했네~! 얼마나 이쁘니? ^^
역시 '대왕 고슴도치 맘'다웠다. 더불어 아주 흡족한 미소와 함께 이런 것도 다 추억이라며, 그 사진들을 앨범에 꼭꼭 눌러 넣으셨다.
이후 몇 번의 이사를 다녔지만 정성스레 보관해 준 엄마 덕에 그 앨범은 무사히 우리 집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장성한 고슴도치가 된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저 남은 필름이 아까워서 찍은 줄 알았던 사진이 추억이라던 이유를.
더불어 내 자식은 얼마나 함함한지도..^^
* 2024년에 전하는 여담.
나는 여전히 검거되지 않았다. 후후후
I'm a 파파파파라치 파파라치 매일 널 따라다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