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림의 왕 수니 Jul 10. 2024

어서 와, 뒤집기 지옥은 처음이지?

4개월 - 지옥의 입구에서 임종체험을 외치다.

  2022. 11.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기 시작한 어느 날.


  어느덧 생후 4개월 차가 된 아이의 일상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대개의 시간을 모빌만 보던 아이는 자신의 몸을 탐색하기에 흥미를 붙인 듯 보였다. 먹을 것이 없을 텐데 경쾌한 쩝쩝 소리가 나서 쳐다보면, 손가락이나 주먹고기를 먹기에 바빴고 나아가 엄지발가락까지 입으로 탐색했다. 그럼에도 종일 누워만 있는 게 지루했던지 점점 더 역동적인 활동과 함께 스스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1단계 : 제자리 운동!

처음에는 누운 상태에서 이따금씩 복근 운동이라도 하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내가 잘못 봤나 싶었다가도 하루에도 몇 번을 그러니 나름의 운동을 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갈수록 자세를 유지하는 시간도 길어졌고, 나중에는 한쪽 다리까지 들며 연습했다. 마치 성인이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날 때 모습처럼...


  2단계 : 등으로 미끄럼틀 타기!

어느 날부터는 가만히 누워있던 쿠션 위에서 등으로 미끄럼틀을 타기 시작했다. 안전을 위해 허리춤에 밴드를 묶어 두었지만, 힘이 붙은 아이가 위아래로 발을 힘껏 구르니 등으로 미끄러지며 몸이 움직였다. 그런 뒤엔 허리를 활처럼 꺾으며 방석을 탈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답답하다는 칭얼거림보다는 늘 해맑게 웃는 아이를 보며, 나는 '내내 누워만 있었으니, 등짝이 불편했나 보네'라고 생각했다.


  3단계 : 인간팽이!

1,2단계의 콜라보로 빌드업된 작전인데, 이를 처음 본 날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은 홈카메라의 동작감지 알림이 잠든(줄 알았던) 아이의 평소 움직임과는 사뭇 달랐다. 이에 놀라 재빨리 다가가니, 내 인기척에 흠칫 놀랐던 아이는 이내 배시시 웃는 것이었다. 그 예쁜 입가에는 수유한 것을 게운 채 침대 방향의 수직으로 누워서...^^ 그때를 시작으로 아이는 침대에만 누우면 빙빙 돌았고, 몇 번을 해보니 요령이 생겼는지 나중엔 더 빠르게 돌며 인간팽이가 되었다. 그때서야 나는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재미추구 이상의ㅡ 즉 '뒤집기 시도의 신호'였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병원에서 출산할 때 눈치까지 낳고 온 것이 분명했다.


반 시계 방향으로 그녀의 1~3단계 작전들



  집 나간 나의 눈치를 잡아 온 며칠 뒤.

부랴부랴 신생아 침대를 정리 후 매트를 겸한 범퍼 침대를 설치하니 아이에게 더 넓은 보금자리가 마련됐다. 아이도 바뀐 곳이 마음에 드는지 고맙다는 듯 생긋- 웃었고, 한결 편안한 움직임과 경쾌한 발길질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동안 이날만을 기다려 온 듯, 스스로 온 힘을 다해 낑낑거리며 뒤집기에 성공했다. 아이는 다르게 보이는 시선이 신기했던지 커다래진 눈으로 두리번거렸고, 그 모습은 너무나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뒤집기 성공과 함께 벅찬 나날을 보낼 줄 알았던 나는 새로운 난관에 부딪혔다. 뒤집었으니 되집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아이는 이를 동시에 해낼 수 없었다. (발달 단계에 따르면 이후 되집기까지 빠르면 한 달여 정도가 걸린다.) 까짓것 곁에서 해주는 게 뭐 어렵나 싶었지만, 문제는 아이의 뒤집기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놀다가 쓱- 뒤집고 다시 되집어 달라며 울기를 반복하는 것은 그래도 귀여웠다. 하지만 정말 힘든 두 가지 상황이 있었으니 하나는 대변을 본 후 기저귀를 갈을 때였다. 얌전히 누워 있던 아이는 늘 '대변'이 가득한 기저귀를 여는 동시에 몸을 휙! 뒤집었다. 때문에 아이의 몸을 포함해 주변까지 범벅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물론 내 자식은 '이것'도 예쁘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차례 아이가 보내는 '강제 눈치게임'의 도전장과 여기서 패배하면 열리는 '대변 파티'는 썩 달갑지 않았다.


  또 다른 하나는 잘 때였다. 통잠을 잘 자던 아이가 잠결에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꾸 뒤집어지니, 깨는 횟수가 늘며 심한 짜증이 섞인 잠투정을 부렸다. 덤으로 평소보다 더 크게 울면서 말이다. 아이와 분리수면을 했던 나는 이럴 때 생길 비상 상황에 대한 염려로 다시 곁에서 잤다. 그런데 또 다른 걱정은 잠버릇이 험한 내가 도리어 아이에게 위험 요소가 될까 싶은 것이었다. 걱정도 1+1이었다. 겨우 찾은 '안전을 위한 교집합'의 위치는 너무나 협소했고, 긴장까지 더하여 잔뜩 웅크린 채 쪽잠을 잤다. 매일밤 좁은 관속에 누워 임종체험을 하는 것만 같았다. 이에 매일 아침을 온몸이 뻐근해 죽을 것 같다는 앓는 소리를 내며, 그것이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모순으로 시작했다. 역시 '뒤집기 지옥'이라는 육아 선배들의 말은 여러모로 일리가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한 달 만에 되집기에 성공했고, 나는 이 모든 과정이 아이가 스스로 방법을 터득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무렵 친정엄마와 통화를 하며, 기쁜 소식을 전했다. 알려주지 않아도 혼자서 해내다니 똑똑한 아이임에 틀림없다는 '도치맘 인증 멘트'와 함께...


어이구~ 우리 손녀 기특하네! 그동안 마음 편히 못 자고 고생 많았어~!
그래서 차라리 누워 있을 때가 편하다는 말이 있는 거야.
그리고 쟈니가 스스로 한 것도 있지만, 늘 부모가 신경 썼으니까 더 잘한 거지~! ^^


  정말이다. 흔히들 말하는 사람 구실을 하도록 성장하기까지 때에 맞추어 '촉매제'와 같은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온전히 해낼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되집기의 촉매는 밤새 보초를 섰던 '나의 노고와 심적 지지'였는지 아니면, 매일 아침 엄마의 앓는 소리가 가스라이팅만큼 무서운 '골골라이팅'으로 작용한 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이 세상에는 혼자서 그리고 당연하게 해내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




*사진 출처 : https://ent.sbs.co.kr/amp/article.do?article_id=E10003926488

이전 06화 엄마는 연쇄사진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